온라인 식품몰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가 애초 목표로 삼은 미국이 아닌 국내 시장에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기로 했다. 향후 성장성 둔화에 대한 우려와 국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규정이 완화된 요인이 겹치면서 국내 상장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컬리는 2254억원 규모의 여섯번째(시리즈F) 투자유치를 완료하고 국내 상장을 추진한다고 9일 밝혔다. 컬리는 이번 투자로 2조5천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해 5월 9천억원으로 평가받은 것을 고려하면, 1년 만에 기업가치가 2.6배 올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 마켓컬리 매출액이 9531억원으로 1년새 124%나 증가한 영향이 컸다. 하지만, 컬리 쪽이 장외 시가총액 등을 근거로 원했던 기업가치 수준(3조원)에는 미치지 못했다.
컬리가 국내 시장 상장으로 방향을 튼 배경에는 향후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진 뒤 매출 성장률 둔화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에 상장한 뒤 기업가치를 유지하려면 적자를 지속적으로 내더라도 가파른 성장률을 유지해야 하는 게 관건이라서다. 컬리 관계자는 “마켓컬리는 올해 상반기 실적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견줘 매출이 50% 성장해 지표가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으나, 실제 시장에서는 ‘코로나 이후’ 컬리의 향후 성장성과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마켓컬리가 주력하는 온라인 식품 시장이 이커머스 업계 다른 유통 대기업 등과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컬리가 얼마나 경쟁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컬리 매출은 1년 전보다 2배 넘게 늘었으나, 영업손실 규모도 1163억원으로 1년 전(1012억)보다 확대됐다. 이에 대해 컬리 쪽은 “지금껏 쌓은 데이터베이스와 기술을 기반으로 마케팅, 물류비가 지속적으로 효율화되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컬리가 규모의 경제를 이룬 특정 시점에는 확실하게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투자를 단행했다”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가 쿠팡의 뒤를 이어 미국 증시 상장을 타진하는 국내 유니콘 기업들을 붙잡기 위해 상장 규정을 완화한 점도 컬리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지난 3월 한국거래소는 시가총액이 1조원만 넘으면 다른 재무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증시에 상장할 수 있도록 유가증권시장 상장 규정을 개정했다. 거래소에서도 적극적으로 컬리의 국내 상장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컬리가 창업자 김슬아 대표의 경영권 방어 관점에서도 차등의결권 제도가 있는 미국 상장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었으나, 이에 컬리는 “전혀 관련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 시장이 1주당 복수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차등의결권을 보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장 주체 법인이 미국 안에 있을 때 가능한 얘기라서다. 쿠팡도 상장 당시 국내에서만 사업을 했지만, 미국 델라웨어에 있는 지주사격인 쿠팡,Inc가 상장한 탓에 김범석 쿠팡 창업자의 차등의결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컬리는 국내 법인만 두고 있다. 컬리 관계자는 “김 대표는 컬리를 창업했지만 자신의 회사가 아니라 ‘주주의 회사’라는 생각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 성과에 따라 언제든 대표가 교체될 수 있다고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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