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보다는 실리!’
2일(현지시각) 개막한 ‘2018 파리모터쇼’를 수식하는 말로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듯하다. 스포츠실용차(SUV)의 인기와 탈내연기관 흐름에 올라탄 친환경차들의 약진이 두드러진 가운데, 안방에서 전시회를 여는 프랑스 완성차 업체들을 중심으로 판매를 앞둔 중·소형급 신차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파리모터쇼가 열리는 베르사유 전시장으로 가는 파리 시내 도로에선 ‘시(C)세그먼트’로 불리는 준중형급 소형차들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파리에서 여행가이드 일을 하는 윤영일(46)씨는 “소형차 좋아하는 것은 실용적인 생활습관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복잡한 도심에서의 주차나 세금·보험 문제로 굳이 덩치 큰 차를 소유할 필요성을 못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8만㎡ 규모의 전시장에선 경차에서 대형 스포츠실용차(SUV)까지, 신차에서부터 파생차·개조차에 이르기까지 유럽 시장을 노리는 다양한 차종과 신차 모델들이 대거 공개됐다. 슈퍼카를 앞세운 제네바모터쇼와 신기술 위주의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비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퇴색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유럽 브랜드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 시장에 내놓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양산차를 앞세워 치고 나왔다.
르노는 ‘카자르’와 ‘트윙고’의 부분변경 모델을 선보였다. 카자르는 2015년 출시된 준중형급 스포츠실용차다. 2014년 등장한 경차 ‘트윙고’는 디자인과 사양을 보강해 올 연말쯤 출시된다. 푸조는 2014년 출시한 경차 ‘108’의 새 버전을 내놨다. 전면부의 디자인을 바꾸고 성능을 개선한 부분변경 모델이다. 왜건형인 ‘508 SW’과 함께 내년 초 출시된다. 푸조는 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엔진’을 이번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했다. 시트로엥은 ‘뉴 시트로엥 C5 에어크로스 하이브리드 콘셉트’를 처음 선보였다. 이 브랜드의 첫번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차로, 2020년 상용화될 예정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브랜드 ‘EQ’의 첫 순수전기차 ‘더 뉴 EQC’. 벤츠 제공
120년 역사의 파리모터쇼는 한때 세계 5대 모터쇼의 하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미래차 기술 경쟁이 자율주행과 커넥티드카 등 정보기술(IT) 영토로 이동하면서 전통 모터쇼의 위상은 예전만 못해졌다. 파리모터쇼가 판매 위주 전시회로 변해가는 것은 같은 유럽에서 열리는 제네바모터쇼와 프랑크푸르트모터쇼 사이의 어정쩡한 위상 탓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푸조·시트로엥·르노의 나라 프랑스의 자동차산업은 저력이 만만찮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저변에는 유럽인들의 실용적인 소비 풍토가 깔려있다. 산업적 측면에선 저평가되곤 하지만, 탄탄한 수요를 바탕으로 유럽 시장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번 모터쇼에선 전기차를 주축으로 한 친환경차 라인업도 눈길을 끌었다. 푸조는 콘셉트카 ‘e-레전드’를 공개했다. 기존 ‘504 쿠페’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음성인식 서비스를 채택했고, 100㎾h 배터리를 장착해 한번 충전으로 600㎞를 달리도록 설계됐다. 시트로엥은 2023년까지 80%, 2025년까지 100% 전동화 라인업을 구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전기차 브랜드 ‘EQ’에서 진화한 순수전기차 ‘EQC’를 출품했다. 각 차축에 탑재된 2개의 모터는 최고 출력 408마력, 최대토크 78.0㎏·m의 성능을 낸다. 아우디도 첫 순수전기차인 ‘e-트론’을 선보였다. 연말 유럽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에밀리오 에레라 기아차 유럽권역본부 최고운영책임자(COO)와 그레고리 기욤 기아차 유럽디자인센터 수석 디자이너가 신형 프로씨드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제공
현대차는 고성능차 ‘i30 패스트백 N’과 ‘i30N N옵션 쇼카’를 세계 처음으로 공개하고, 수소전기차 ‘넥쏘’와 아이오닉 일렉트릭, 아이오닉 하이브리드, 아이오닉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아이오닉 시리즈도 선보였다. 기아차는 신형 ‘프로씨드’와 함께 니로 전기차와 니로 하이브리드, 니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출품했다.
‘2018 파리모터쇼’에서 세계 처음 공개된 현대차 고성능 ‘i30 패스트백 N’. 현대자동차 제공
파리모터쇼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와 2년마다 번갈아가며 열린다. 이번 모터쇼에는 세계 20개 나라에서 부품업체를 포함해 200여개 업체가 참가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인 폴크스바겐을 비롯해 포드·크라이슬러·닛산 등은 참가하지 않았다. 세계 자동차산업의 신기술과 새로운 스타일, 미래 방향성을 보여주는 콘셉트카가 많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공개된 신차들은 대부분 올해 말 또는 내년 상반기 유럽 시장에 출시된다. 이번 모터쇼는 2~3일 프레스데이(언론 사전공개)를 시작으로 오는 14일까지 열린다.
파리/홍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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