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각) 수입 자동차에 최고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대미 수출 물량이 많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의 뜻대로 고율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대미 수출을 사실상 중단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4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집계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출한 자동차 253만대 가운데 대미 수출 물량은 84만5천대로 전체의 33%를 차지한다. 업체별로는 현대차 30만7천대, 기아차 28만4천대, 한국지엠(GM) 13만1천대, 르노삼성 12만3천대다. 쌍용차는 미국 수출 물량이 없다. 우리나라 자동차는 대미 수출 1위 품목이지만 3년째 수출이 줄어들 정도로 미국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올 1분기 대미 수출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2%나 줄었다. 여기에 관세 폭탄은 ‘엎친 데 덮치는 격’이다.
국내 업체들은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 움직임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기아차가 미국시장에 판매한 자동차는 127만5천대이고, 이 가운데 국내 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한 물량은 60만대에 이른다. 나머지는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 등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한 차량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단일 규모로는 미국시장이 가장 크기 때문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가격 경쟁력이 약화하고 수익성이 악화돼 수출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물리는 관세는 승용차가 2%, 픽업트럭은 25%다. 한국산 자동차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수출해왔다. 전문가들은 철강과 달리 생활필수품인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자동차 가격 상승에 따라 소비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데다 멕시코·캐나다 등지에 해외공장이 많아 부메랑을 맞을 지엠과 포드 등 ‘빅3’의 반대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철강과 달리 자동차는 유럽·일본 대 미국이 갈등·대결·보복하는 구조로 돼 있어 또다른 통상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미국 내 반발도 만만찮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무역협회는 이날 “자동차에 대한 232조 조사는 현재 난항을 겪고 있는 나프타 재협상 상대국인 캐나다·멕시코, 그리고 유럽연합(EU)에 대한 압박용 카드이며, 실제 타깃은 자동차 무역수지 적자폭이 큰 일본도 포함된 것으로 해석된다”며 “나프타 재협상이 타결된 이후에 자동차 232조 추가관세 부과 조처가 취해진다면 미국의 빅3 해외공장과 연계돼 있는 캐나다·멕시코는 관세 면제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고율 관세가 현실화한다면 미국 수출 물량이 많은 한국지엠의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제너럴모터스(GM)의 자회사인 한국지엠은 지난해 39만2천여대를 국외로 수출했는데, 이 중 미국 수출 물량이 30%인 13만대에 이른다. 정부 협조로 한국지엠의 ‘경영 정상화 방안’을 마련한 지엠이 기존에 약속한 투자 계획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수출 타격도 타격이지만 앞으로 배정될 신차도 미국시장을 겨냥한 만큼 한국 사업장에 대한 지엠의 장기투자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자동차 고율 관세 카드를 향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철강처럼 관세 폭탄을 면제해주는 대신 개별 협상을 통해 수입 쿼터를 설정하고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협상 전략을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 분야가 워낙 큰 시장이고 고율 관세가 전세계를 상대로 강력한 제재 효과를 발휘하는 만큼 지지부진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에서 협상력을 높이는 압박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대선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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