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지엠 이해관계자들에게 조속한 지원과 협조를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한쪽 손에 ‘부도 가능성’을, 또 다른 손에 ‘협상 카드’를 꺼내 들고 정부와 산업은행, 노조를 몰아세우고 있다. 하지만 경영 실사 중인 산은에 일부 핵심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등 ‘이중플레이’를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한국지엠과 산은 등에 따르면, 지엠이 노사협상 데드라인으로 정한 시한은 오는 20일이다. 이때까지 노사가 자구계획에 합의하지 못하면 법원에 한국지엠의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는 것이다.
지엠의 국외사업을 총괄하는 배리 엥글 사장은 지난 13일 산은을 방문해 조속한 경영 실사와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지엠은 실사에 필요한 원가 자료 등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엥글 사장은 본사 차입금 27억달러(약 3조원)의 출자전환 문제와 차등감자, 신규 투자 등을 놓고서도 산은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애초 한국지엠 차입금을 출자전환할 수 있음을 밝혔지만, 지엠 지분 가치만을 떨어뜨리는 차등감자 문제가 나오자 출자전환 계획을 철회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분 17%를 보유한 산은은 출자전환으로 지분율이 1%로 떨어질 수 있어 차등감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엥글 사장은 산은의 자산처분 거부권(비토권) 부활에 대해서도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엠은 불리한 요구는 거절하는 동시에 ‘법정관리 카드’로 압박하고 있다. 댄 암만 지엠 총괄사장은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엥글 사장은 지난달 말 노조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법정관리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지엠은 지엠 본사의 이런 방침에 따라 법정관리 신청을 위한 실무 작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부와 산은은 실사 중인 상황에서 부도 가능성을 흘리는 지엠의 행태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엠이 대주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려면 자료를 성실히 제출해 실사에 협조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산은은 노사가 자구안에 합의해도 실사가 마무리돼야 자금지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미 지엠이 노사 임단협 갈등으로 법정관리 신청을 거론하는 것에 대응책이 있느냐’는 질문에 “(상황을) 예단할 수는 없다. 우리도 플레이어 중의 한 명으로 섣불리 얘기할 문제는 아니고 지켜보겠다. 상황에 따라 대처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사 임단협 갈등에 대해선 “(대주주인) 미 지엠과 노조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법정관리로 압박하는 지엠과 물러서지 않겠다는 노조, 실사가 우선이라는 산은 등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한국지엠 사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업계는 지엠이 노조에 추가 비용절감 동의를, 정부와 산은에는 최대 지원을 끌어내려는 전략을 펼치는 이번 주가 한국지엠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홍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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