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동안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 지난해 말에 퇴직한 박아무개(49·서울 동대문구)씨는 요즈음 소형 트럭 구입을 생각하고 있다. 통신망 설치업을 하는 대기업의 자회사에서 일하다 지난해 구조조정 때 동료 30여명과 함께 퇴직했다. 박씨는 “앞서 회사를 떠났던 동료 3명이 각자 1톤 트럭을 구입해 개인사업자로 택배 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가격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의 경우처럼 소형 트럭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 현대자동차 1t 소형 트럭 ‘포터’가 10만대 이상 팔렸다. 3일 현대자동차가 집계한 지난해 판매 현황을 보면, 포터 판매량은 10만1423대로 출시 31년 만에 처음으로 10만대를 돌파했다. 국내서 팔린 자동차 가운데 단일 차종으로는 그랜저에 이어 2위였고, 트럭·버스 등 상용차 가운데는 으뜸이었다. 지난해 10만대 넘게 판매된 차량은 그랜저와 포터뿐이다. 또 기아차의 1t 소형 트럭 ‘봉고’도 지난해 6만2184대가 팔려 2015년에 이어 최고 판매량을 갈아치웠다.
소형 트럭의 판매 증가가 눈길을 끄는 것은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 대표 차종이기 때문이다. 포터나 봉고는 길거리에서 채소나 과일을 팔거나 이삿짐, 택배, 푸드트럭 등으로 주로 쓰인다. 자영업자들이 생계형 수단으로 많이 사용해 자동차 업계에선 대표적인 경기 불황 지표로 꼽힌다. 경기가 나빠지면 자영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아져 소형 트럭 수요가 늘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뜻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가뜩이나 거시경제 지표와 서민경제 간의 괴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실물 경제는 여전히 차갑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최근 증시 활황과도 대조된다.
소형 트럭은 이동거리가 긴 데다 사용 빈도가 많아 다른 차종보다 교체 수요가 많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최근의 판매 증가세는 서민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손석균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수석위원은 “경기부진으로 지난해 푸드트럭이 많이 늘었고 조기퇴직해 자영업에 뛰어든 직장인들도 많아졌다”며 “베이비부머의 명퇴 시기까지 도래하면서 생계형 소형 트럭의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가격마저 올랐는데도 수요는 더 늘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9월부터 유럽의 강화된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6’를 충족시킨 신형 포터와 봉고를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질소산화물 등 배출가스를 줄이려고 저감장치를 달아 기존 1440만원(기본형 기준)에서 1520만원(봉고), 1530만원(포터)으로 80만∼90만원이 올랐다. 출고가가 올라 수요가 위축될 수 있지만, 포터의 지난해 12월 판매량은 전달보다 오히려 30% 넘게 급증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포터의 활용성이 뛰어나고 상품성도 강화돼 유로6 적용 이후에도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당분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대선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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