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항에서 수출을 위해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완성차들. 한겨레 자료 사진
현대자동차가 미국 경기 회복세와 이를 반영하는 ‘슈퍼 달러’(달러 강세-원화 약세 속 한국 수출경쟁력 강화)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채 북미시장에서 수익성과 점유율 양쪽에서 고전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소비시장이 부활하고 있음에도 엔저·유로 절하를 앞세운 일본·유럽차,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세를 타고 다시 치고 나서는 미국차의 공세에 포위되고 있는 형국이다.
현대차의 북미시장 점유율이 뚜렷이 상승하기 시작한 건 역설적이게도 2008년 금융위기 직후부터다. 경제위기가 닥치고 고유가 현상이 맞물리면서 미국 소비자에게 연비 좋은 ‘소형차’가 강점인 현대차 선호가 확연해졌다. 이에 따라 현대차의 미국 판매량은 2007년 46만대(점유율 2.9%), 2008년 40만대(3.3%)에서 위기 직후인 2009년 43만5천대(4.2%)로 크게 늘었다. 덕분에, 2000년대 초 세계 10위권에 머물던 현대차는 2009년 일약 ‘글로벌 톱5’에 올라섰다. 2010년엔 53만8천대(4.6%)로 더 늘었고 2011년엔 64만5천대(5.1%)로 정점을 찍었다. 미국·일본·유럽차의 판매량이 뚝 떨어진 가운데 현대차만 미국시장에서 ‘나홀로’ 성장한 셈이다.
물론 환율 요인 외에 현대차 북미시장 점유율이 오른 배경엔 지엠(GM) 파산위기 같은 미국 토종업체의 약세,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연구개발투자 축소와 대규모 리콜사태로 도요타·닛산이 위축된 탓도 있다. 현대차 고위관계자는 “우리가 운이 좋았던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대적인 달러 양적완화로 미국 경기가 나홀로 회복하기 시작하고, 연방 기준금리 인상 전망 속에 ‘슈퍼달러’(엔·유로 약세)가 가시화하면서 상황은 변했다. 현대차의 미국시장 판매량은 2012년에 70만3천대로 증가했으나 점유율은 4.9%로 낮아졌다. 이후 판매량은 72만대(점유율 4.6%·2013년), 72만5천대(4.4%·2014년)로 갈수록 정체되고 있고, 점유율은 하락추세로 반전됐다. 올 1~2월 판매량은 9만7천대(4.0%)다.
반면, 닛산과 도요타는 초엔저를 바탕으로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각각 11%와 6% 성장했다. 미국시장 호조를 타고 도요타는 2014년(2013년4월~2014년3월) 글로벌 판매량 1013만대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충격 당시 1~2%였던 영업이익률도 2013년 6%, 2014년 8.9%로 치솟아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미국 경기부활과 저유가 현상이 겹치는 국면에서, 엔·유로 양적 완화에 따른 자국 통화가치 절하에 힘입어 일본·유럽차들이 싼 가격을 앞세운 채 무섭게 치고 올라서고 있는 양상이다. 지엠·포드 등 미국차도 저유가 속에 비싼 스포츠실용차와 중대형 픽업트럭 중심으로 자동차 수요 급증에 올라타고 있다.
현대차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국내외 합계) 지표도 ‘슈퍼달러’가 본격화된 2013년께부터 ‘악화’로 돌아섰다. 영업이익률은 2011년 10.3%· 2012년 10%로 2년 연속 두자릿수에 달했다. 그러나 2013년엔 9.5%, 지난해 8.5%로 경향적 하락추세로 흐름이 다시 꺾였다. 사실 지난 몇 년간 현대차가 북미시장에서 구가한 ‘좋았던 시절’은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현대차 고위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이제 글로벌 생산·판매 800만대에 도달했는데, 꼭짓점 같다. 어느 정도 한계에 이른 느낌이 커지고 있다”며 “이제 저성장을 받아들이고 수익성을 확보하는 게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현대차가 나홀로 성장의 상징처럼 북미시장에서 펼친 ‘제값받기’(중간 판매딜러의 인센티브를 줄여 현대차 본사 수익성을 늘린 정책)도 전략 선회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센티브를 줄여도 판매가 증가할 것으로 봤던 현대차의 북미시장 자신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초엔저와 유로 약세를 발판으로 일본·유럽차가 공세적으로 나오면서 현대차로선 이제 수익성 하락을 무릅쓰더라도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다시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차 쪽도 “제값받기 정책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 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시장이 회복돼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현대차는 ‘슈퍼달러’ 속에 오히려 고전하는 판도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의 입지가 돌변한 데는 현대차가 추구해온 현지생산전략이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는 미국 현지공장 생산·판매가 증가하면서 달러강세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는 반면, 해외공장 진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도요타는 엔 약세의 날개를 달고 ‘통화가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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