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이 113엔을 넘었다. 그 영향으로 원-엔 환율 역시 950원 밑으로 떨어졌다. 일본과 경쟁을 치러야 하는 우리 기업으로서는 부담스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금융위기 직전 원-엔 환율이 700원대 중반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 자동차 주식이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다. 종합주가지수가 2000을 넘는 강세를 기록하는 동안 현대차는 6만원대를 벗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자동차 기업들은 700원대 환율을 인정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짰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2년 만에 원-엔 환율이 700원대에서 1500원대로 올라왔다. 최악의 상황에 맞춰 짜놓은 전략에, 가격 경쟁력이 더해지면서 이익이 급증했다. 1300~1500원대의 원-엔 환율이 3년 반이나 계속되는 운까지 따르면서 국내 자동차 기업은 전성기를 누렸다. 결과는 주가에서도 나타났다. 현대차가 금융위기 이전 고점에 비해 세 배 이상 오르는 동안 도요타자동차는 3분의 1로 떨어졌다.
2012년 중반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원-엔 환율이 1400원대에서 950원으로 내려왔다. 상황이 나빠지고 있었지만 이런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국내 기업은 없었다. 5년간 수 십조의 돈을 벌어들인데다, 올 초까지 그 추세가 이어지다 보니 자신감이 생겨 환경 악화를 무시해 버린 것이다. 지금 우리 자동차 기업들은 쏟아지는 악재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에 처해 있다. 흡사 금융위기 직후 일본 자동차 회사의 상황을 보는 것 같다.
지난 2년간 현대차 주가가 40% 가까이 하락했다. 그동안 도요타자동차는 120% 올랐다. 주가 격차가 좁혀졌지만 여전히 현대차 주가가 도요타에 비해 2.7배 높다. 금융위기 직전 양사 주가가 비슷한 수준이었던 걸 감안하면, 가격차가 더 좁혀질 가능성이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 현대차를 팔고 일본 자동차 주식을 사야 하는 좋은 이유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주가가 낮고 엔화 약세 효과를 누리고 있는 기업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자동차 주가가 바닥에 도달했는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엔화 약세가 멈춘다 해도 주가가 빠르게 회복되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환율의 영향이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나타나는데다, 우리 기업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엔화 약세를 딛고 주가가 상승하기 위해서는 여건 개선이 필요하지만, 지난 5년간 발생한 이익의 상당 부분이 운좋게 주어진 것임을 깨닫고, 금융위기 이전 같이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우는 노력도 중요하다. 주가 반전은 이런 기업을 중심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