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섭 상무(외장디자인실장·사진 오른쪽)와 주병철 이사대우(내장디자인실장·왼쪽)
현대차 디자인 책임자들에게 들어보니
정제된 선 현대차 디자인 2.0 반영
과한 곡선 YF쏘나타 등과 차별화
한·미·유럽 디자인센터 직원들 경쟁
“현대차, ‘헥사고닐 그릴’ 최초 사용
명차와 겨루는데 표절하진 않는다”
정제된 선 현대차 디자인 2.0 반영
과한 곡선 YF쏘나타 등과 차별화
한·미·유럽 디자인센터 직원들 경쟁
“현대차, ‘헥사고닐 그릴’ 최초 사용
명차와 겨루는데 표절하진 않는다”
“특정 대상이 아니라 느낌으로 전해지는 자연을 담았습니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프리미엄 헥사고날(육각형) 그릴이 장악한 전면부와 후미등까지 이어지는 ‘한 일’(一)자가 곧게 뻗어나가는 옆 라인, 그리고 수평형 레이아웃 속에 단순함이 강조된 실내 공간.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이 처음으로 적용된 ‘신형 제네시스’에선 ‘직선’의 복원이 도드라진다. 자연의 흔적을 ‘곡선’으로 오롯이 그려냈던 플루이딕 스컬프처의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삼엽충을 닮았다’(와이에프 쏘나타)거나 ‘외계에서 날아온 곤충 같다’(벨로스터)는 비난을 받더니 이름만 남기고 디자인 철학을 바꾸기로 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지난 6일 경기도 화성 남양연구소에서 현대차의 디자인 책임자인 이병섭 상무(외장디자인실장)와 주병철 이사대우(내장디자인실장)를 만났다.
‘난’(와이에프 쏘나타)이나 ‘바람’(아반떼 엠디), ‘폭풍’(싼타페 디엠)의 흔적을 모방했던 플루이딕 스컬프처의 전작들과 달리 신형 제네시스의 선은 ‘닮은꼴 자연’을 표방하지 않았다. 이병섭 실장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자연의 살아있는 아름다움을, 차량의 조형 과정에서 형식이 아닌 느낌으로 풀어가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와이에프 쏘나타 등 초기 플루이딕 스컬프처는 자연의 감성을 곧바로 적용하기 위해 선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등 과한 측면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이제는 그 느낌을 성숙하고 정제된 선으로 다듬겠다는 것이지요.”
주병철 실장은 초기 플루이딕 스컬프처의 강한 곡선이 후발 주자로서 현대차가 할 수 있던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현대차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거든요. 글로벌 시장에 후발 주자 현대차의 디자인을 각인시켜주기 위해선 강조가 필요했던 거죠. 프리미엄 브랜드로 거듭나려는 지금은 티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디자인 만들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품질 대비 값싼 차를 만드는 후발 주자에서 제값 받는 고급 명차로 가기 위한 현대차의 고민이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부연 설명인 셈이다.
이런 변화의 출발선을 끊은 신형 제네시스에 대한 평가는 일단 엇갈린다. 특히 출시 초기,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선 ‘신형 제네시스 그릴을 바꾸면’ 독일 명차들과 무척이나 흡사하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떠돌기도 했다. 이 실장은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제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차를 디자인할 때 늘 독일 명차를 옆에다 두고 참고한다고 했다. “솔직히 옛날엔 ‘어떻게 하면 이걸 비슷하게 만들어볼까’ 싶어, 요샌 ‘어떻게 하면 더 차별화를 할 수 있을까’ 연구하기 위해서”다. 차량 기준은 거의 표준화됐고, 안전 기준 등 강화되는 규제 속 디자이너의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있는 요즘 그는 “디자이너가 요술방망이를 들고 있는 것도 아닌데 동그란 네바퀴를 달았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항변했다.
특히 그는 ‘커다란 헥사고날 그릴이 아우디의 것을 닮았다’는 말엔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대차가 신형 제네시스를 기점으로 윙셰이프(날개모양)와 헥사고날로 이원화돼 있던 그릴을 프리미엄 헥사고날로 단일화한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어서다. “사실 헥사고날 그릴은 2006년 콘셉트카 ‘제너스’를 통해 현대차가 제일 먼저 시작했어요. 그때 우리가 홍보를 많이 했더라면…이런 얘기가 안 나왔겠지요.” 그가 아쉬운 듯 말했다. 주 실장은 “아직 소비자들이 실차를 많이 못 봐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들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이 다른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오히려 적절한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는걸요.”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이 처음 반영된 신형 제네시스에 두 사람이 준 점수는 ‘90점’이다. 완성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엘에프 쏘나타 등 이후 나오게 될 현대차는 변형된 헥살고날 그릴이 반영될 거예요. (이를 통해) 남들 눈에는 한 집안 식구처럼 보여도 저마다 특징(디테일)이 살아있는 현대차만의 ‘패밀리룩’을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곧 나올 엘에프 쏘나타는 “제네시스의 동생이란 느낌이 더 많이 들 거예요.” 두 사람이 귀띔해줬다.
화성/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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