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요!”
지난 6월, 한 대학의 캠퍼스. ‘왜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고 싶냐’는 허정욱 현대자동차 인재채용팀 과장의 질문을 받은 한 학생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대학생 인식조사를 위한 인터뷰인 줄로만 알았던 학생이 ‘꿈’ ‘희망’ ‘미래’ 따위의 수식어를 뺀 솔직한 속내를 얘기한 것이었다. “자칫 돈만 아는 속물처럼 보일 수도 있는 답변이잖아요. 만약 저와의 대화를 공식 면접 자리라고 생각했다면 과연 그렇게 말을 했을까요?” 날것 그대로의 답변에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추가 질문이 이어졌다. 긴 대화 속에서 허 과장은 ‘월급을 많이 받고 싶다면 나도 반드시 그만큼의 몫을 해내야 한다’는 학생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좀더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허 과장은 이 학생을 현대차의 새 인재 채용 프로그램 중 하나인 ‘더-에이치’(The-H) 참가자로 ‘캐스팅’했다.
‘스펙이 아닌 인성을 갖춘 인재를 직접 찾겠다’는 현대차의 새로운 ‘채용 실험’이 한창이다. 현대차 인재채용팀 직원 13명이 지난 6~7월 전국의 대학가에서 직접 캐스팅한 100명이 석달째 각종 모임에 참가하며 ‘현대차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할 만한 인재’인지 다면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차 직원 2명과 캐스팅 참가자 10명으로 구성된 조는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조별 모임을 하고 있다. 구성원간의 호칭부터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까지 참가자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 “조원들의 성향에 따라 활동 내용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여행 등 아웃도어 활동에 집중하는 조가 있는가 하면 현대차 연구 모임을 꾸린 학구적인 조도 있어요.” 허 과장이 전했다.
아무리 ‘채용’이 걸린 자리라지만 석달 이상을 만나다 보니 직원들과 참가자들이 서로 ‘형, 동생’ 호칭을 하는 등 인간적 관계가 쌓이기도 한다. 그 속에서 감추고 싶은 본모습이 절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도 참가자가 어느 학교 출신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부러 묻지는 않기 때문이다. “참가자 중에 유난히 허세가 심한 친구가 있었어요. 여러번 만나다 보니 그 친구가 왜 그런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단 한번 면접만 봤더라면 그 사람의 다른 면은 보지 못했을 거 아녜요. 이 프로그램의 장점인 것 같아요.” 이번 캐스팅 채용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인재채용팀의 김이연 사원이 말했다.
앞으로 한 달 뒤, 최종면접을 거쳐 100명 중 일부는 현대차 정식 직원으로 입사를 하게 되지만 일부는 고배를 마신 채 떠나야 한다. 허 과장은 “공정하게 잘 선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말했다. “참가자들도 4개월 넘게 현대차 입사에 귀한 시간을 내준 거잖아요. 불합격하는 이들에게도 이 기간이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어떤 것인지 충분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만들고 싶어요.” 김 사원이 덧붙였다.
‘길거리(캠퍼스) 채용’이라는 방식은 현대차가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도전적인 ‘실험’이었다. 따라할 모델이 없는 만큼, 틀에 짜인 기준보다는 많은 부분을 열어두고 평가했다는 허 과장의 얘기다. “‘인재채용팀 직원이 캐주얼 복장을 하고 1인2조가 돼 대학생들이 많은 생활 공간을 찾아간다’는 것 외엔 크게 제한을 두지 않았다. 많은 학생들을 만나보고, 우리와 함께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편견을 갖지 말고 충분히 대화를 해보자’는 것 정도가 원칙이었어요.” 길거리 캐스팅이라고 했지만, 대학가 근처에서 우연히 인재채용팀 직원들 눈에 띄인 학생들만 대상이 된 건 아니었다. 각 대학의 취업상담센터나 학과 교수, 심지어 수위 아저씨가 “참 예의 바르고 성실한 친구”라고 추천한 학생들을 만났다. 또 특정 대학가의 버스, 도서관 등 특정 장소만 정해놓고 돌아다닌 것도 아니다. “전국의 취업 준비생들을 다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하잖아요. 대학생 자작차 경진대회 등 현대차에 필요한 인재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달려갔어요. 그러니 어딜 가야 현대차 직원 눈에 띌까 생각하지 말고 평소 자기가 하던 대로 하면 돼요.” 김 사원이 말했다.
이번 캐스팅 과정을 통해 허 과장이 느낀 아쉬움 하나는 많은 취업지원자들이 언제나 ‘모범정답’을 내놓으려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도전적인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다들 비슷비슷한 답변만 쏟아내요. 이공계생은 대부분 ‘설계 프로젝트 참여’ 경험을, 인문계생들은 공모전이나 국토대장정 참여를 단골 대답으로 내놔요. 남들이 다 하는 동일한 얘기는 크게 변별력이 없는데 말이에요.” 김 사원이 말을 보탰다. “‘현대차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어요. 자신만의 ‘셀링 포인트’는 자기가 제일 잘 알 테니 그걸 잘 살리라는 원론적인 조언밖에 줄 수 없어요. 하지만 그게 정답인걸요.”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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