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타페
장맛비에 물새는 산타페…문제 제기했으나 해결 안돼
미국에선 리콜 사안…현대차 “일부만 불량인 줄 알았다”
미국에선 리콜 사안…현대차 “일부만 불량인 줄 알았다”
“비오는 날에 시동을 끄고 30초만 있다가 내려보세요. 누수 현상을 뒤(트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싼타페는 원래 그렇게 타는 차입니다.” 지난 7월 이후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다. 현대자동차 쏘나타의 ‘감성 광고’를 패러디해, 국내 스포츠실용차량(SUV) 판매 1위 싼타페(프로젝트명 디엠)의 누수 현상을 비판한 것이다.
굵은 장맛비가 그칠줄 모르고 계속되던 지난 6월, 출시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싼타페 트렁크와 뒷좌석에 물이 줄줄 샌다는 글이 인터넷 동호회 게시판을 달궜다. 들끓던 불만들은 지난 7월 초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현대차의 효자 상품인 싼타페는 단숨에 ‘수(水)타페’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8월1일, 현대차가 사상 처음으로 국내 고객들에게 공식 사과문까지 발표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넉달 된 새 차 뒷좌석 매트 젖어
여섯 차례나 수리했지만 계속 누수 동회회 차원 문제 제기 이어져도
‘원인 파악중’이라는 말만 반복
언론 보도 뒤 ‘리콜 아닌 무상수리’
“어차피 무상수리 기간인데” 반발 사
뒤늦게 공식 사과 내놨지만
‘소송도 불사’ 소비자 분노 여전 “‘흉기차’(현대기아차의 줄임말. 품질이 형편 없어 흉기나 다름없는 차라는 뜻)는 원래 그렇게 타는 차다” “미국에서라면 바로 리콜을 했을 사안인데, 역시 현대차는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안다”는 악성 여론이 인터넷 기사 댓글 등을 통해 확산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을 “실패 사례”라고 규정했다. 현대차 내부에선 그동안 쌓아온 ‘품질’에 대한 신뢰도를 해치고, 해외 판매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개인’이 얘기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올해 집중호우가 이렇게 오래 가지 않았더라면, 또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더라면, 현대차가 누수 문제가 있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하긴 했을까요?” 인터넷 싼타페 동호회 ‘디엠 러브’의 운영자 강신석씨는 말한다. 언론을 통해 싼타페 누수 문제가 불거진 게 7월이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일부 차주들이 간헐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해왔다는 게 그의 얘기다.
이 동호회 회원 박민수씨는 일찌감치 지난해 말부터 싼타페의 누수 문제를 제기해온 이들 중 한 명이다. 박씨는 현대차 서비스센터를 드나들며 몇 차례나 차를 뜯었다 붙였다를 반복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고 했다. 그가 지난해 8월에 뽑은 새 차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12월께였다. “아침에 차를 탔는데 뒷좌석 2열 시트 쪽 매트가 젖은 채 얼어 있더라고요.”
서비스센터에서는 처음엔 “뒷 범퍼 안 쪽에 실리콘이 제대로 칠해져 있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수리한 차량에서 두어달 만에 또 문제가 생겼다. 이번엔 테일 램프(후미등) 쪽에서 물이 샜다. 또 수리. 하지만 고압 세차를 했더니 또 물이 샜다. 지난 5월, 동호회를 통해 현대차 남양연구소에 차를 가져가 테스트를 하고, 그 곳 전문가들이 일러준대로 3차례나 수리를 더 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자동차 제작 결함 연구소’ 쪽으로 문의를 했더니 “차 한 대만으로는 결함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동호회 사람들에게 점검을 해보자는 글도 올렸어요. 내 차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박씨가 문제 제기를 한 이후, 게시판에는 “내 차도 물이 샌다”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박씨가 현대차와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던 그 시간, 다른 이들도 박씨처럼 서비스비센터와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물이 새는 차를 갖고 가면, 서비스센터에선 ‘블랙박스랑 내비게이션을 설치하면서 실링 처리를 잘못해 문제가 생긴 거다’ ‘세차 할 때 문을 잘 안 닫아서 그런 거다’ 하면서 차주의 잘못을 탓한다는 얘기들이 잇따랐어요. 차주들이야 차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으니 회사 쪽에서 하자는대로 하면서 속만 끓이고 있었던 거죠.” 또다른 인터넷 싼타페 동호회 ‘클럽 디엠’의 운영자 박주석씨가 전한 얘기다.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개인이 홀로 문제를 제기할 땐 늘 이런 ‘정보 부족’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2만개 이상의 부품으로 이뤄진 자동차. 자동차 제작사는 차에 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알 수 있는 건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로서는 ‘내가 재수 없게 ‘뽑기’를 잘못한 건지, 차량 자체에 결함이 있는 건지’ 밝혀낼 재간이 없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다른 산업에 비해 정보의 비대칭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커요. 소비자의 과실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자동차 회사에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해버리면, 소비자로서는 입증 방법이 없거든요. 억울해도 보상을 받을 방법을 찾기 어렵지요. 대개 자동차 회사들은 법적 기준이 모호한 경우엔 보상을 잘 안 하려들거든요. 결국 법정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소비자 입장에선 비용도 시간도 만만치 않죠. 그런 가운데 대기업에 대한 불신은 높아져 가는 거죠.” 녹색소비자연대 이주홍 국장의 지적이다.
■ 때늦은 땜질 처방이 고객 분노 키웠다 동호회 차원의 문제 제기 이후 현대차는 두어달 동안 “원인 파악중”이란 답변만 반복했다. “누수 원인을 찾아내 대책을 세우고, 그 대책으로 인한 부작용은 없는지 영향을 검증한 뒤 현장에 대책을 지시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나종덕 현대차 고객서비스팀장이 설명했다.
기다리다 지친 차주들의 불신은 높아져 갔다. 두 동호회 운영자 모두 “두달이면 짧은 시간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현대차는 무조건 문제가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말만 했지, 뭐가 문제인지 구체적인 정보는 공유하지 않았어요. 혹시 문제를 알면서도 사태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면서 쉬쉬 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죠.” 이런 상황에서 수리를 받은 차에서 여전히 물이 샌다는 불만들이 계속 터져나왔다. 장마철을 맞아 누수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갔다.
하지만 지난 7월5일, 언론을 통해 싼타페 누수 문제가 첫 보도됐을 때까지도 현대차는 내부적으로 대응 방안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처음엔 누수 문제를 고압 세차 등으로 인한 단발성(여러 제품 중 극히 일부) 불량으로 봤고, 장마가 시작된 뒤에야 집단 불량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아래 조사를 시작했거든요. 동호회가 파악한 바로는 문제 차량이 1500대 정도였어요. 판매된 차의 1% 수준이니, 정말 소수에 불과하잖아요. 불량률에 비해 언론에 너무 크게 알려진 측면이 있어요.” 나종덕 팀장의 설명이다.
머뭇거리던 현대차가 대책을 발표한 건 열흘이나 지난 지난달 15일이었다. 그것도, 공중파 방송의 9시 뉴스 끝에 “일부 차종에서 누수가 확인돼 ‘무상수리’를 하겠다”고 입장을 밝히는 형식이었다. “안전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차량의 구조적 결함이 아니어서 리콜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말도 덧붙었다. “현대차의 이 발표가 차주들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고 강신석씨는 전했다. “어차피 출시한 지 1년밖에 안된 차라 당연히 무상수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인데, 이게 무슨 대책이냐는 반응이었던 거죠.”
엎친 데 덮친 격일까. 현대차의 무상 수리 발표 이후 서비스센터를 찾았던 고객들은 또 한차례 분통 터지는 경험을 했다. “싼타페에서 누수 문제가 일어난 줄도 모르는 서비스센터가 태반이더라고요. 수리를 받으려고 해도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요. 물이 새는 것으로 보이는 부위에 대충 실런트를 덕지덕지 흉하게 발라놓은 경우도 있었고요. 누수로 인해 차량 내부 부품이 녹이 슬거나 전기 부품이 누전되는 등 차량의 치명적인 고장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고, 중고차 가격도 떨어질텐데…. 과연 똑같은 문제가 미국에서 발생했더라도 리콜을 안 했을까요?” 박주석씨가 말했다.
고객들의 불만이 쌓이면서 ‘자동차 결함 신고센터’ 등을 통해 지난달 16일 이후 접수된 싼타페 누수 관련 신고 건수는 240건을 넘어섰다. “단일 차종으로서는 꽤 많은 건수”라는 게 국토교통부 관계자 얘기다. 국토교통부도 리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급기야 지난 1일, 현대차는 싼타페 등에서 발생한 누수 건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차량의 품질 문제로 현대차가 국내 소비자에게 고개를 숙인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현대차는 “고객들의 불편함을 신속히 해결하고, 무상 보증수리 기한을 5년으로 늘려 적극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객들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았다. 인터넷 싼타페 동호회에선 리콜과 보상을 요구하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클럽 디엠’은 오는 9월7~8일 전국 차원의 정기모임을 열어, 누수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회원들로부터 소송 요구를 접한 두 동호회 운영자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강신석씨가 승소 가능성을 물으며 얘기했다. “차에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눈치를 채는 사람은 매일 차를 모는 차주들 아닐까요? 현대차가 처음부터 그런 차주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처럼 상황이 나빠지진 않았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원하는 건 안심하고 차를 타게 해달라는 거지, 현대차가 망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현대차가 문제를 덮기에만 급급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동호회 차원의 집단적 문제 제기가 없었거나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과연 현대차가 우리 얘기를 들어주기나 했을까요? 결국 소비자의 힘을 보여줘야만 하는 걸까요?”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여섯 차례나 수리했지만 계속 누수 동회회 차원 문제 제기 이어져도
‘원인 파악중’이라는 말만 반복
언론 보도 뒤 ‘리콜 아닌 무상수리’
“어차피 무상수리 기간인데” 반발 사
뒤늦게 공식 사과 내놨지만
‘소송도 불사’ 소비자 분노 여전 “‘흉기차’(현대기아차의 줄임말. 품질이 형편 없어 흉기나 다름없는 차라는 뜻)는 원래 그렇게 타는 차다” “미국에서라면 바로 리콜을 했을 사안인데, 역시 현대차는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안다”는 악성 여론이 인터넷 기사 댓글 등을 통해 확산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을 “실패 사례”라고 규정했다. 현대차 내부에선 그동안 쌓아온 ‘품질’에 대한 신뢰도를 해치고, 해외 판매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 싼타페 동호회 회원들이 지난 16일 모여 싼타페 차량의 누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네이버 카페 ‘싼타페 디엠러브’ 제공
현대차 싼타페 동호회 회원들이 지난 16일 모여 싼타페 차량의 누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네이버 카페 ‘싼타페 디엠러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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