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망원동 뉴현대자동차공업사 전성표 사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손님을 기다리며 빈 가게를 지키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30년 정비공’ 전성표씨 흔들리는 꿈
‘부품액 465만8000원, 공임 173만5500원, 부가세 17만3250원, 합계 656만6750원.’
서울 마포구 망원동 ‘뉴현대자동차공업사’ 사장 전성표(46)씨가 지난달 30일 기자에게 보여준 ‘4월 매출액’ 기록이다. 부품 업체에 줘야 할 돈(465만8000원)을 빼고 나니 손에 들어오는 돈은 190만8750원이다. “가게세 내고, 세금 내고 하면…생각해 볼 것도 없이 마이너스에요.”
쿠폰·할인혜택 대기업 정비소는 ‘북적’
전씨 가게 손님 한명 없을때 ‘부지기수’
매달 적자에 허덕…아이들 보험도 해지
‘요일제 이용 차량 할인’ 제시했지만 허사
“무상수리기간 끝나면 단골 돌아올까요” 매달 5일이 임대료 주는 날인데, 3월치도 4월29일에야 줬다. 전씨는 얼마 전 아이들 학자금 보험 2개를 깼다. 중3·중1짜리 아이들 영어·수학 학원은 이미 지난해 끊었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요, 한숨 쉬면 뭘 해요.” 전씨가 애써 웃어 보였다. 기름때 낀 손톱, 두 손에 갈색 흉터로 남은 기름 독은 전씨의 삶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던 1982년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뒤 줄곧 자동차와 함께 해왔다. “비포장 도로에 퍼져있던 버스를 척척 고쳐내는 정비사가 그렇게 멋져보이더라고요.” 자동차 엔진보링 공장 근무를 시작으로, 군대 자동차 정비병을 거쳐, 제대한 뒤 곧장 카센터 종업원으로 취직했다. 전씨가 어엿한 카센터 사장님이 된 건 1997년이었다. 고향인 강원도 횡성을 떠난 지 16년 만이었다. “이름이 카센터지, 서울 은평구 신사동 빈 공터에 지은 보증금 1000만원짜리 허름한 가건물이었어요. 거저나 다름 없이 인수했죠.” 가게 한켠에서 밥을 끓여먹고 살았지만 전씨에겐 그저 “재밌던 시절”이었다. “하루에 열댓명씩 손님이 들었어요. 부품값을 다 주고서도 한 달에 500만원은 벌었으니까요.” 전씨는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렸다. “장사가 좀 된다 싶으니까 (땅)주인이 직접 카센터를 하겠다고 나가라더군요.” 신사동 시절을 접고 마포구 연남동을 거쳐 지금의 망원동으로 옮겨 온 이유다. 전씨는 이후 가게 주변 연세대학교 등을 직접 발품을 팔며 고객을 유치했고, 단골이 된 교수·교직원들과 “형, 동생 할 정도”로 가까워지기도 했다. 오랜 단골 중 한 사람은 성실한 전씨가 마음에 든다며, 자기집 한 켠을 시세보다 훨씬 싸게 내주기도 했다.
“그런 좋은 시절도 이젠 다 옛날 얘기에요.” 요즘 전씨의 가게엔 손님이 들지 않는 날이 더 많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전씨는 워크베이(수리 공간) 하나짜리 가게를 홀로 지키고 있었다. “어제도 엔진오일 하나, 에어컨 필터 하나 교환한 게 다예요. 타이밍벨트(엔진에서 생기는 힘을 다른 기관으로 전달하는 장치)나 디스크 삼발이(엔진과 미션의 동력차단 장치) 교체를 해야 공임이라도 좀 받는데, 손님 자체가 없는 걸요.” 마포구청과 협조해 요일제 이용 차량에 대해 2% 이용료 할인 혜택을 주고, 장애인 차량 무상점검 캠페인에 참여하며 고객 기반을 넓히려고 애써봤으나 허사였다.
일감이 없는 날이면 전씨는 동네를 한바퀴 돌곤 한다. 전씨의 가게 반경 1㎞ 안엔 현대차 블루핸즈 등 대기업과 손잡은 자동차 정비업소가 9개나 된다. 그들 간판 아래엔 20명이 넘는 손님들이 대기하는 날도 많다. “새 차 뽑은 사람들은 전부 그리 간다고 보면 돼요. 엔진오일 무료 교환 쿠폰 주고 제휴카드 할인되죠, 게다가 무상 수리 기간까지 길어졌는데 누가 다른 데 가겠어요?” 단골마저 떨어져 나간다. “성표야 미안하다. 쿠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그 말을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단다. “보증기간이 끝나면 그 손님이 돌아올까요?” 전씨는 속이 끓는다.
그가 ‘뉴현대자동차공업사’로 간판을 바꿔 단 것도 혹시나 ‘현대 효과’를 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솔직히 대기업 가맹점으로 전환하면 나아질까 싶어 알아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일정 규모가 안 돼 그것도 안 된다더군요.” 전씨의 동료는 이달 15일 카센터 문을 닫는다. “맘 같아선 저도 가게 문을 닫고 싶죠. 하지만 애들은 한창 클 나이고…다른 재주도 없으니 별 수 있나요.” 한 때 전씨의 꿈은 알뜰살뜰 돈을 모아 3층짜리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1층엔 카센터, 2층은 사무실 임대 내주고, 3층은 살림집으로 쓰면 더 바랄 게 없을 것만 같았죠.” 전씨는 오늘도 꿈에서 또 한 발자국 멀어지고 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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