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에 하이브리드차 샀지만
9개월째 ‘한자릿수 연비’ 못벗어
‘뻥연비에 속은 것 아냐’ 의심 일어 현대차 고객서비스 팀장과 나선 거리
“운전습관만 바꿔도 연비 좋아져요”
가속페달·브레이크 적게 쓰는 등
‘비법’ 전수받으며 27㎞ 달려보니
연비 계기창에 19.2㎞/ℓ‘오 놀라워’ 운전 경력 14년. 새 차를 뽑은 지 한달 만에 반파 사고 낸 걸 제외하면, 이렇다 할 큰 사고를 낸 적 없는, 나는 ‘모범 운전자’(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간 나에게 자동차는 ‘시동을 걸면 달리는 물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자동차를 보는 가장 큰 기준은 ‘예쁘다’ ‘안 예쁘다’였을 뿐이었고, 고속도로 위에 뱀이 벗어놓은 허물처럼 널브러져 있는 펑크 난 타이어 잔해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정작 타이어 하나 내 손으로 갈 줄도 몰랐다. 그러니 나 ‘이 여사’는 ‘빵점짜리 운전자’였다고 해야겠다. 그런 내가 지난해 7월 국산 하이브리드차를 구매했던 건, 오로지 “경제성”을 강조한 영업사원의 적극적인 판촉 공세 때문이었다. “취득세액 140만원까진 등록비 면제되죠, 서울시 공영 주차장에선 주차료가 50% 할인되고요. 남산 1·3호 터널에선 통행료가 공짜예요. 무엇보다 연비가 좋으니 동급 차량보다 값이 조금 비싸도 3년 이상 몰면 본전이고요….” 경제성을 따지는 현명한 소비자에,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자도 될 수 있겠구나, 귀가 팔랑거렸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쏘나타 하이브리드차 구매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경제성(연비) 때문에 구입했다”는 응답이 87%나 됐다. 어, 그런데 재밌는 사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013년형 쏘나타 하이브리드 출시를 앞둔 조사에서 상당수의 고객들이 ‘골프백 4개를 한꺼번에 실을 수 있도록 트렁크 용량을 늘려달라’고 요구했다는 점이다. 에엣, 웬 골프백 4개? “서울 근교 골프장은 그린피가 비싸잖아요. 대개 쏘나타급 차를 모는 고객들이 저렴한 값으로 골프를 치기 위해 좀더 외곽으로 나가거든요. 4명이 한 차를 타고 기름값을 나눠 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요구가 나오는 거죠.” 주홍철 현대차 국내판매전략팀 과장이 귀띔했다. 현대차는 이에 트렁크 용량을 304ℓ(골프백 3개)에서 344ℓ(4개)로 발빠르게 늘렸다고 했다. ‘실속파’들 덕분인지 하이브리드차 판매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전세계 시장에서 153만여대가 판매된 가운데, 국내에서도 3만6106대가 팔렸다. 2011년(2만43대)보다 80% 늘어난 수치다. 올해 1분기, 국내에선 수입 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1335대)보다 19.4%나 줄었지만, 쏘나타 하이브리드차의 선전(20% 판매 증가) 등 국산 하이브리드차 판매 증가(4.8%)로 전체적으론 전년도 수준은 유지했다.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플러스 성장을 한 거죠.” 주 과장이 말했다. 하이브리드차가 많이 팔리면서 ‘뻥연비’ 논란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구매 이후 9개월, 솔직히 나도 속은 기분이 들곤 했다. 출퇴근 시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회사에서 창전동 집까지 10여분 거리를 오가는 길, 연비 계기판에 찍힌 숫자는 대부분 한자릿대였다. 간혹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공인연비에 한참 못 미치니 속이 터질 지경이다. “오죽 차가 안 나가면 심장이 2개(엔진과 전기모터)나 필요하겠냐.” 주위 사람들은 하이브리드는 시기상조라며 내 선택을 비웃었다. “짧은 거리를 반복적으로 운행하게 되면 배터리를 충전할 시간이 적어져 엔진으로 힘을 써야 하니 연비가 잘 안 나오는 측면이 있죠. 하지만 차량 특성을 알고 운전습관만 바꿔도 연비가 상당히 좋아져요.” 불만을 토로하는 나에게 나종덕 현대차 고객서비스 2팀장(부장)이 말했다. 흠, 다 내 ‘막운전’ 탓이란 말이지! 짐짓 부아가 났다. 그래서 함께 연비를 측정해보자고 제안했다. 지난달 23일, 나 부장과 같은 팀 김종현 과장과 함께 2013년형 쏘나타 하이브리드차를 타고 연비 검증에 나섰다. 우선 연비 운전 교육부터 받았다. 하이브리드차는 연비를 높이기 위해 전기모터와 엔진이 수시로 꺼지고 켜지는 차, 기름을 사용하는 엔진 작동을 줄이고, 전기모터 사용을 극대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일반론을 머리에 새겼다. “그러자면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되도록 적게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야 해요. 한마디로 ‘발끝신공’이 중요한 거죠.” 나 부장이 ‘비법’을 전수해줬다. “출발할 땐 천천히 100% 전기차 모드로 달리고, 속도를 올린 뒤엔 타력주행(액셀페달에서 발을 떼고 달리던 힘으로 계속 운전)을 하세요.” 비법을 준수하며 달리는데 자꾸 뒷차 눈치가 보인다. 시험 구간은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차 사옥에서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 제3주차장까지 27㎞ 구간. 계동에서 광화문, 연세대 앞을 지나 성산대교→강변북로→자유로 등을 거치는 코스는 시내 및 고속 구간이 적절히 배합돼 있었다. 성인 탑승자가 3명, 비까지 내렸으니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꽉 막힌 시내 구간에선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마침내 목적지 도착! 도착점에서 본 계기창엔 19.2㎞가 찍혀 있었다. 오옷, 이런 성적은 처음이다. 운전습관을 바꾸니 연비가 달라진다는 말이 영 거짓이었던 건 아닌 셈이었다. “브레이크를 급하게, 자주 밟는 것만 빼면 대체로 괜찮네요. 시내 운전할 때도 브레이크를 좀 덜 밟아도 연비가 부쩍 올라갈 거예요.” 100점 만점에 90점. 나 부장이 내게 준 점수다. 흐뭇한 기분도 잠깐, 전문가들의 감시(?) 아래 비법 운전에 집중한 탓인지 어깨가 다 뻐근했다. 뭔가 좀 억울했다. 연비가 좋대서 돈을 더 주고 하이브리드차를 샀는데, 이렇게까지 신경 써서 운전을 해야 하나. 내 이런 반응에 김 과장이 한마디했다. “스마트폰을 줘봤자 스마트하게 사용 못 하면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닌가요.”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한 억울함. 도로 위에서 더 많은 하이브리드차를 볼 수 있게 되려면, 하이브리드차의 두 개의 심장이 더 빠르게 번갈아가며 움직일 수 있도록, 기술 개선이 더 필요한 듯 보였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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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페달·브레이크 적게 쓰는 등
‘비법’ 전수받으며 27㎞ 달려보니
연비 계기창에 19.2㎞/ℓ‘오 놀라워’ 운전 경력 14년. 새 차를 뽑은 지 한달 만에 반파 사고 낸 걸 제외하면, 이렇다 할 큰 사고를 낸 적 없는, 나는 ‘모범 운전자’(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간 나에게 자동차는 ‘시동을 걸면 달리는 물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자동차를 보는 가장 큰 기준은 ‘예쁘다’ ‘안 예쁘다’였을 뿐이었고, 고속도로 위에 뱀이 벗어놓은 허물처럼 널브러져 있는 펑크 난 타이어 잔해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정작 타이어 하나 내 손으로 갈 줄도 몰랐다. 그러니 나 ‘이 여사’는 ‘빵점짜리 운전자’였다고 해야겠다. 그런 내가 지난해 7월 국산 하이브리드차를 구매했던 건, 오로지 “경제성”을 강조한 영업사원의 적극적인 판촉 공세 때문이었다. “취득세액 140만원까진 등록비 면제되죠, 서울시 공영 주차장에선 주차료가 50% 할인되고요. 남산 1·3호 터널에선 통행료가 공짜예요. 무엇보다 연비가 좋으니 동급 차량보다 값이 조금 비싸도 3년 이상 몰면 본전이고요….” 경제성을 따지는 현명한 소비자에,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자도 될 수 있겠구나, 귀가 팔랑거렸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쏘나타 하이브리드차 구매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경제성(연비) 때문에 구입했다”는 응답이 87%나 됐다. 어, 그런데 재밌는 사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013년형 쏘나타 하이브리드 출시를 앞둔 조사에서 상당수의 고객들이 ‘골프백 4개를 한꺼번에 실을 수 있도록 트렁크 용량을 늘려달라’고 요구했다는 점이다. 에엣, 웬 골프백 4개? “서울 근교 골프장은 그린피가 비싸잖아요. 대개 쏘나타급 차를 모는 고객들이 저렴한 값으로 골프를 치기 위해 좀더 외곽으로 나가거든요. 4명이 한 차를 타고 기름값을 나눠 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요구가 나오는 거죠.” 주홍철 현대차 국내판매전략팀 과장이 귀띔했다. 현대차는 이에 트렁크 용량을 304ℓ(골프백 3개)에서 344ℓ(4개)로 발빠르게 늘렸다고 했다. ‘실속파’들 덕분인지 하이브리드차 판매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전세계 시장에서 153만여대가 판매된 가운데, 국내에서도 3만6106대가 팔렸다. 2011년(2만43대)보다 80% 늘어난 수치다. 올해 1분기, 국내에선 수입 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1335대)보다 19.4%나 줄었지만, 쏘나타 하이브리드차의 선전(20% 판매 증가) 등 국산 하이브리드차 판매 증가(4.8%)로 전체적으론 전년도 수준은 유지했다.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플러스 성장을 한 거죠.” 주 과장이 말했다. 하이브리드차가 많이 팔리면서 ‘뻥연비’ 논란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구매 이후 9개월, 솔직히 나도 속은 기분이 들곤 했다. 출퇴근 시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회사에서 창전동 집까지 10여분 거리를 오가는 길, 연비 계기판에 찍힌 숫자는 대부분 한자릿대였다. 간혹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공인연비에 한참 못 미치니 속이 터질 지경이다. “오죽 차가 안 나가면 심장이 2개(엔진과 전기모터)나 필요하겠냐.” 주위 사람들은 하이브리드는 시기상조라며 내 선택을 비웃었다. “짧은 거리를 반복적으로 운행하게 되면 배터리를 충전할 시간이 적어져 엔진으로 힘을 써야 하니 연비가 잘 안 나오는 측면이 있죠. 하지만 차량 특성을 알고 운전습관만 바꿔도 연비가 상당히 좋아져요.” 불만을 토로하는 나에게 나종덕 현대차 고객서비스 2팀장(부장)이 말했다. 흠, 다 내 ‘막운전’ 탓이란 말이지! 짐짓 부아가 났다. 그래서 함께 연비를 측정해보자고 제안했다. 지난달 23일, 나 부장과 같은 팀 김종현 과장과 함께 2013년형 쏘나타 하이브리드차를 타고 연비 검증에 나섰다. 우선 연비 운전 교육부터 받았다. 하이브리드차는 연비를 높이기 위해 전기모터와 엔진이 수시로 꺼지고 켜지는 차, 기름을 사용하는 엔진 작동을 줄이고, 전기모터 사용을 극대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일반론을 머리에 새겼다. “그러자면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되도록 적게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야 해요. 한마디로 ‘발끝신공’이 중요한 거죠.” 나 부장이 ‘비법’을 전수해줬다. “출발할 땐 천천히 100% 전기차 모드로 달리고, 속도를 올린 뒤엔 타력주행(액셀페달에서 발을 떼고 달리던 힘으로 계속 운전)을 하세요.” 비법을 준수하며 달리는데 자꾸 뒷차 눈치가 보인다. 시험 구간은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차 사옥에서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 제3주차장까지 27㎞ 구간. 계동에서 광화문, 연세대 앞을 지나 성산대교→강변북로→자유로 등을 거치는 코스는 시내 및 고속 구간이 적절히 배합돼 있었다. 성인 탑승자가 3명, 비까지 내렸으니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꽉 막힌 시내 구간에선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마침내 목적지 도착! 도착점에서 본 계기창엔 19.2㎞가 찍혀 있었다. 오옷, 이런 성적은 처음이다. 운전습관을 바꾸니 연비가 달라진다는 말이 영 거짓이었던 건 아닌 셈이었다. “브레이크를 급하게, 자주 밟는 것만 빼면 대체로 괜찮네요. 시내 운전할 때도 브레이크를 좀 덜 밟아도 연비가 부쩍 올라갈 거예요.” 100점 만점에 90점. 나 부장이 내게 준 점수다. 흐뭇한 기분도 잠깐, 전문가들의 감시(?) 아래 비법 운전에 집중한 탓인지 어깨가 다 뻐근했다. 뭔가 좀 억울했다. 연비가 좋대서 돈을 더 주고 하이브리드차를 샀는데, 이렇게까지 신경 써서 운전을 해야 하나. 내 이런 반응에 김 과장이 한마디했다. “스마트폰을 줘봤자 스마트하게 사용 못 하면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닌가요.”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한 억울함. 도로 위에서 더 많은 하이브리드차를 볼 수 있게 되려면, 하이브리드차의 두 개의 심장이 더 빠르게 번갈아가며 움직일 수 있도록, 기술 개선이 더 필요한 듯 보였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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