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과 전기 모터를 동시에 쓰는 하이브리드 차량 인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가 하이브리드 자동차 23만대를 무상 수리하기로 했다. 달리던 차량이 시속 20㎞까지 속도가 갑자기 줄어 서행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는 국토교통부가 명령하는 리콜보다 선제적으로 제조사가 앞장서 무상 수리를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리콜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동차리콜센터는 지난달 29일 누리집을 통해 현대차·기아의 하이브리드 차량 가운데 모두 23만7838대의 무상 수리 사실을 공지했다.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소프트웨어 설정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이럴 경우 차량이 고온에 노출되면 간헐적으로 배터리 과전압 경고등이 점등돼 최고 속도가 제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상 수리 대상 차량은 현대차 쏘나타·아반떼·투싼 하이브리드로 2019년 7월말부터 2023년 11월19일까지 생산된 9만1884대이다. 기아는 2019년 12월2일~2023년 11월15일 사이 생산된 케이(K)8·케이5·니로·스포티지 하이브리드 14만5954대를 무상수리한다. 6일 현대차·기아는 “서비스센터 입고 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조치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속도 제한 현상’은 그랜저와 쏘렌토 하이브리드 차량에서도 나타나지만, 현대차·기아는 “무상수리 대상 차종과 이들 차량은 결함 원인이 달라 이번 무상 수리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휘발유·경유와 함께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전기 충전소 보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충전만 해야 하는 전기차보다 편리하다는 평이 많다. 전기차 전환을 주저하는 소비자들이 선호하면서 하이브리드차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가 집계한 11월 하이브리드 자동차 신차 등록 대수는 3만3511대로 경유차(2만6500대)보다 26%가 많았다. 10월 하이브리드차 판매는 지난해 같은 달 1만8427대와 비교하면 82% 더 팔린 셈이다. 올해 11월까지 누적 대수를 기준으로 경유차가 28만8834대, 하이브리드차는 28만3365대가 팔려 올해 처음으로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경유차를 앞지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하이브리드 판매 비중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운전자 안전과 관련되는 문제와 관련해 리콜이 아닌 무상수리를 결정한 것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미래자동차학부)는 “고속도로에서 100㎞로 달리다 저속으로 달리게 되면 사고가 난다”며 “무상 수리는 편의와 관련한 문제에 관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토교통부가 관련 심의위원회를 열어 리콜 결정을 해야 하는데 업체 중심으로 무상 수리를 선택하는 관행이 있다. 리콜을 하려면 위원회를 여는 등 절차를 밟고 기록도 남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또 다른 전문가는 “리콜을 하려면 국토부가 지시해야 한다. 미국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소프트웨어 관련한 자동차 리콜 소식이 뉴스에 소개될 정도로 리콜이 활발한 편”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아직 조사하고 있는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김은정 국토부 모빌리티과장은 “국토부가 리콜을 결정하기 전에 제작사가 먼저 무상 수리를 한 것이고, 현재 국토부도 이를 조사 중이다. 조사 이후 리콜 실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주행 중 시동 꺼짐과 같은 심각한 안전문제에 해당하면 리콜을 하는데, 서행하다 안전모드로 전환되는 경우 리콜이 아닌 무상 수리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리콜은 보증기간과 상관없이 나중에도 받을 수 있지만 무상 수리는 회사가 정한 기한이 있는 경우가 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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