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전기차 충전 모습. 테슬라 누리집 갈무리
미국 포드와 제너럴모터스(지엠·GM)가 전기차 충전에 경쟁 업체인 테슬라의 ‘북미충전표준’(NACS·낙스)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세계 완성차 회사들의 충전방식을 둘러싼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테슬라 방식이 대세로 굳어지면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현대차·기아와 유럽 업체들의 전기차 충전 방식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 전기차 시장에선 전기차·충전기 업체들의 ‘테슬라 충전’ 방식 채택이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9일 포드와 지엠이 자사 전기차도 어댑터 등을 활용해 2024년부터 테슬라 전용 충전소(슈퍼차저)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2025년부턴 생산 단계부터 테슬라 방식 연결포트를 탑재하겠다고 밝혔다. 스텔란티스도 슈퍼차저 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지난 13일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런 흐름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전기차 보급을 늘리는 수단으로 전기차 충전기 네트워크 구축에 75억 달러(약 9조8천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형성됐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어느 전기차든 충전이 가능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테슬라가 이를 받기 위해 ‘슈퍼차저’ 7500곳을 개방하기로 했고, 다른 회사들도 이에 화답했다는 것이다. 테슬라는 충전 인프라를 늘리기 위해 슈퍼차저를 일찍부터 설치했고, 미국 내 충전소는 슈퍼차저가 많았다.
전기차는 휘발유 등 주입구가 동일한 내연기관차와 달리 업체별로 충전 방식에 따른 차이가 있다. 테슬라는 낙스 방식, 현대차·기아와 폴크스바겐 등은 ‘결합 충전 방식’(CCS·Combined Charging System), 도요타 등 일본 업체들은 차데모(CHAdeMO) 방식을 쓰고 있다.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충전 방식도 다르다.
미국은 그동안 ‘결합 충전 방식’을 표준으로 삼아왔고, 테슬라만 낙스 방식으로 나누어져 왔다. 이에 따라 테슬라를 제외한 현대차 등 상당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결합 충전 방식을 따라 왔는데, 최근 미국 업체들의 움직임에 따라 결합 충전 방식 진영에 균열이 생긴 셈이다.
미 전기차 시장이 테슬라 충전 방식으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면서 현대차그룹을 포함한 전 세계 완성차 회사들의 고민은 복잡해졌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충전 방식으로 디시 콤보1(CCS1), 유럽 회사들은 디시 콤보2(CCS2) 방식을 적용해왔다. 현대차가 채택한 방식은 800볼트 고전압을 이용해 빠르게 충전이 가능한데 이보다 낮은 500볼트 전압을 활용하는 테슬라 충전소를 공유하면 ‘빠른 충전’의 장점이 사라지는 문제가 생긴다. 충전 방식을 바꿀 경우 추가 비용이 드는 문제도 있다.
현대차가 꼭 불리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표준 방식이 ‘낙스’로 결론 나면,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용(낙스), 한국용(CCS1)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충전기 업체인 ‘차지인’의 최영석 대표는 “재고 관리에 어려움을 느낀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CCS1 표준방식 차량 제작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 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국내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기가 이전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는 예측이다.
현대차그룹도 시장 상황의 변화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 지난 20일 ‘2023 현대차 시이오(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고객이 얻을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수 현대차 부사장은 “테슬라 충전 인프라에 참여하면 당장 많은 충전소를 쓸 수 있겠지만 많은 데이터와 부가서비스 등이 테슬라에 종속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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