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소형 아예 없어…소비자 선택권 감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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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ㄱ(33)씨는 지난해 현대차의 중형 전기차인 아이오닉5를 인생 첫 차로 구입했다. ㄱ씨는 “전기차를 타고 싶었는데 소형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아쉬웠다. 1회 충전으로 좀 더 오래 가는 소형 전기차가 있다면 그 차를 샀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고 귀여운 경형차와 소형차의 시대는 지나갔을까. 현대 액센트와 기아 프라이드 등 소형차 모델이 단종된 뒤 더이상 국내 자동차 시장엔 소형급 새 모델이 나오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새 모델 출시가 집중되고 있는 전기차 쪽에선 아예 소형을 찾을 수 없다. 현재까지 가장 작은 크기의 전기차로 출시된 현대차 코나와 기아 니로는 자동차 관리법상 중형으로 분류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겨레>가 18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요청해 국토교통부 통계를 확인해보니,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신규 등록된 전체 승용차 1473만2287대 가운데 소형은 1만3091대(0.1%)밖에 없었다. 중형이 870만4412대(59.1%)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대형은 458만2191대(31.1%)였다. 경형은 그나마 세금 혜택 등이 있어 143만2593대(9.7%)가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소형은 단 52대가 신규 등록돼 최근 10년 사이 가장 적었다.
통계상 소형차가 적은 이유는 자동차관리법상 배기량과 크기 등 소형 기준을 맞추는 모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서는 소형은 1000㏄ 이상 1600㏄ 미만, 길이(전장) 4.7m·너비(전폭) 1.7m, 높이(전고) 2m 이하 차량을 가리킨다. 과거 소형차로는 액센트, 프라이드, 베르나 등이 있었다. 이른바 ‘마이카’ 시대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가 단종된 뒤 다시 시장에 나오지 않고 있다.
차급을 나누는 기준을 보면 소형 크기를 어느 정도 넘어서느냐로 갈린다. 중형은 배기량이 1600㏄ 이상 2000㏄미만이거나 소형차 기준의 길이와 너비, 높이 중 어느 하나라도 초과하는 것을 말한다. 대형은 배기량 2000㏄ 이상이거나 소형차 기준의 길이·너비·높이를 모두 초과하는 차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소형 1600㏄ 미만·중형 2000㏄ 미만 등 배기량 기준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차량 크기가 이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인 셈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 아반떼는 배기량은 소형으로 분류되지만, 차체 크기가 소형 기준보다 커 중형 자동차에 해당한다.
소형뿐만 아니라 경형차 등록도 계속 감소 추세였다. 2013년 전체 등록대수 124만4012대 가운데 경형은 18만1539대로 14.59%를 차지했다. 그러나 2015년 17만3107대(11.29%), 2017년 14만1042대(9.23%), 2019년 11만6461대(7.77%), 2021년 9만6860대(6.59%)로 경형의 등록 대수는 꾸준히 감소했다. 다만 경형차는 지난해 등록 대수가 상승했다. 13만4163대(9.44%)가 팔렸는데, 현대차가 첫 경형 에스유브이(SUV) 캐스퍼를 출시했고 차량용 반도체 공급 문제 등으로 인해 다른 차급의 생산이 원활하지 않았던 게 이유로 보인다.
자동차 시장에서 이렇게 중형·대형 위주로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은 국내 소득 수준이 높아진 영향도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행 등을 다니기 위해 차에 짐을 더 많이 싣게 됐고, 세단 보다 크기가 큰 스포츠실용차(SUV) 인기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업체 한 임원은 “국내 소비자들은 ‘하차감’(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다보니 소형차 시장이 성장하지 못한 것도 있다”고 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미래자동차학부)는 자동차 업체들이 집중하고 있는 전기차 분야에서 소형이 나오기 어려운 점으로 배터리 문제를 들었다. 김 교수는 “전기차는 배터리 성능에 아직 한계가 있어 (상대적으로 배터리를 많이 탑재할 수 없는) 소형차는 가성비가 떨어져 큰 차 위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의 선호가 떨어지고 전기차 전환 과제가 있다고 해도 큰 차량의 증가엔 자동차 회사들의 숨은 의도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익성이 낮은 소형 차종 대신 수익성이 높은 중대형 차종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 이후 완성차 업체들은 소형차 생산을 중단해왔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소형차 생산을 줄여간다는 계획을 2020년에 발표했다. 폭스바겐은 경형 세그먼트인 업의 후속 신차를 출시하지 않고 프리미엄 차종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지난해 발표했다. 아우디도 지난해 A1과 소형 크로스오버 Q2 단종 계획을, 2020년 쉐보레도 소닉을 단종한다고 발표했다. 또다른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경형차나 소형차를 100대 팔아도 고급차 1대 파는 것 보다 못하다고 한다. 현대차가 캐스퍼를 광주글로벌모터스에 위탁생산하듯 작은 차들은 완성차 회사들이 직접 생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점차 사라지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저렴한 자동차가 희귀해진다’라는 보고서를 낸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도 같은 지적을 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특히 코로나19 이후 주요 완성차 기업들이 자동차 반도체 공급난 때문에 생산량을 늘릴 수 없게 되자, 수익성이 높은 차종 위주로 생산해 판매 대수 감소에 따른 실적 하락을 상쇄하려는 경향을 보였다”고 했다. 국내 완성차 회사들의 공장 출고 대수를 보면, 2019년 전체 360만대였던 승용차 생산량은 2020~2021년 코로나19를 거치며 310만~320만대 수준으로 줄었다. 그런데 경차(1000㏄ 미만)·소형차(1600㏄ 미만)·중형차(2000㏄ 미만)는 2019년 280만7천여대에서 2022년 240만6837대로 줄었지만, 중대형차(3000㏄ 미만)·대형차(3000㏄이상)는 같은 기간 69만6천대에서 71만700여대로 늘었다. 중대형차와 대형차 중에는 중대형차는 48만2천대에서 40만대로 줄었으나 대형차가 21만대에서 30만대로 늘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도로 좁지 주차하기 어렵지…유럽·일본선 ‘작은차 큰 기쁨’
북미와 호주가 큰 차를 좋아한다면, 유럽과 일본, 동남아시아 시장은 작은 차가 잘 팔린다. 현대차·기아도 이들 지역을 공략할 수출 전략으로 소형차를 내세우고 있다.
18일 <한겨레>가 현대차의 기업 설명회(IR) 자료를 보니, 현대차가 지난해 유럽 현지에서 많이 판매한 차종은 준중형 스포츠실용차(SUV) 투싼과 소형차인 아이(i)20이었다. 여기에 소형 스포츠실용차인 현대차의 베이온과 기아의 스포티지도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차들이다.
자동차 시장 동향 등을 전달하는 ‘자동차 산업 분석’ 발표를 보면, 2021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는 소형차인 푸조 208이고, 이탈리아에서는 경차인 피아트 판다가 최다 판매 차량이다. 그리스에선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소형 야리스가 잘 팔린다. 국내 한 수입차 임원은 “주차할 땅이 넓고 이동 거리가 긴 북미나 호주에서는 큰 차의 수요가 많다. 하지만 도시가 오래돼 좁은 도로가 많고 주차공간도 찾기 어려운 유럽에서는 소형차가 인기다. 유럽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보면 차가 미국처럼 커서 놀란다고 한다”고 전했다.
자동차 강국인 일본에서도 경차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경차의 일본 내 시장 점유율은 4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경차 기준은 1990년대 이후 660㏄ 미만의 배기량, 길이 3.4m, 폭 1.48m, 높이 2m 이하로 한국의 경차보다 작은 편이다. 일본 자동차 시장(2023년 기준)에서는 스포츠실용차, 미니밴, 트럭, 스포츠카까지 모두 55종의 경차가 판매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후쿠오카무역관은 “(일본인들이 경차를 사는 이유는) 각종 세제 혜택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거주하는 곳의 주차장 규격에 따라 경차밖에 살 수 없는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에서는 도요타의 소형차 야리스가 잘 나간다. 현대차는 인도에서 소형 스포츠실용차인 크레타를, 브라질에서는 소형 스포츠실용차인 에이치비(HB)20을 주력모델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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