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5 생산라인. 현대자동차 제공
자동차 산업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내연기관 제조업체에서 ‘종합 모밀리티 회사’로 전환해야 한다.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차 생산과 자율주행, 도심항공교통(UAM) 등 신기술에 투자하는 이유다. 재계 서열 3위이자 국내 대표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그룹도 마찬가지다.
관건은 내연기관 경쟁력 유지를 통해 수익을 확보하면서 정확한 타이밍에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전환을 이뤄내느냐다. 내부 인력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 경쟁력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줄 연구직들의 이탈이 이어지고, 사기가 저하돼 있다는 이야기가 지속해서 들려온다. 실제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했다.
간접적으로나마 내부 분위기를 파악해보기 위해 지난 8~11일, 최근 퇴사자 8명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이들의 퇴사 연도는 2022년 5명, 2021년 2명, 2018년 1명이다. 평균 근속 기간은 6.2년으로, 가장 긴 근무 기간은 10년, 가장 짧은 근무 기간은 2년 8개월이었다.
이들이 전한 분위기도 회사 안팎의 평가와 유사했다. 먼저 연구직의 ‘사기저하’가 만연해 있다고 전했다. 2012년 입사해 올해 2월 사표를 낸 뒤 스타트업에 합류한 ㄱ씨는 현대차의 연구개발 조직을 크게 두 유형으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수익을 내는 기존 연구개발 조직’과 ‘장기 미래를 대비하는 연구개발 조직’이다. 현대차는 자율주행, 도심항공교통, 인포테인먼트 개발 조직을 꾸려 각각 강남, 용산, 판교 등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신사업 분야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다. 기존 연구직과는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하거나 곧 적용할 계획이다.
ㄱ씨는 “(새 조직은) 실제 비즈니스가 작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개발만 열심히 하면 된다. 미래 기술이기 때문에 타사로 이직할 때 몸값 상승에도 도움이 되니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반면 현재 시점의 현대차를 지탱하는 기존 연구개발 조직 인원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이 괴리감을 해소하지 못하면, 연구개발 조직의 종합적 경쟁력은 계속 쇠퇴하다가 정년만 바라보는 인력들만 남으면서 시장 선도는커녕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대 초반 입사한 ㄴ씨도 “돈은 다 내연기관에서 벌고 있는데 (회사가) 미래사업을 위한 인력에만 투자하니 기존 인력의 박탈감이 크다”며 “미래사업 인력들이 기존 자동차 연구개발 조직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협조가 잘 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다 보니, 기존 연구개발 조직의 허리급 직원들의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ㄴ씨는 “후배들을 챙기면서 가장 열정적으로 일하기 시작하는 10년 차 안팎의 대리 말, 과장 초 연차가 많이 이탈하고 있다. 함께 입사한 동기 80여명 가운데 절반 가량이 이미 퇴사했다”고 말했다. 2014년 입사해 올해 3월 말 퇴사한 ㄷ씨도 “입사 1∼2년 차 신입직원들이 나가는 건 전부터 늘 있었던 일이지만, 최근엔 경력을 충분히 쌓은 허리급 직원들이 많이 이탈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모빌리티 산업의 성장이 이들에게 ‘퇴로’를 열어줬다는 평가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현대차는 국내 최고의 자동차 회사다. 그간 직원 입장에서 사내에 불만이 있어도 더 나은 조건으로 이직할 회사가 딱히 없었다. 하지만 최근 모빌리티 산업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다. ㄷ씨는 “동료들과 ‘우리가 제일 좋은 데 와 있다. 다른 데 갈 곳이 없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격변기이다 보니 유사 산업이 성장하면서 이직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퇴사자들은 미흡한 성과 보상체계도 반복 언급했다. 8년 이상 근무한 뒤 올해 상반기 퇴사한 ㄹ씨는 “아직까지 사원·대리급의 금전적 보상이 터무니없이 적다”고 말했다. ㄴ씨도 “기본급이 낮고 성과급이 많은 기형적인 임금 구조 탓에 8년 동안 연봉이 7천만원선에 머물러 있었고, 책임급으로 승진했을 때 2천만원 오른 뒤 다시 멈췄다”며 “야근 열심히 한다고 바보가 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2년 8개월 근무한 뒤 지난해 2월 벤처캐피탈(VC)로 자리를 옮긴 ㅁ씨는 생산직 처우 개선 중심의 노사협상을 지적했다. 그는 “회사와 생산직 사이에 끼어있는 연구원들 목소리의 영향력이 미미한 편이다. 생산직 중심의 제도 개선만 이뤄질 경우, (연구직) 대규모 이탈은 앞으로도 지속되거나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내연기관 연구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또는 업무·직업 전환에 신경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내연기관이 당분간 주력 상품으로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친환경차 보급 계획을 보면, 2030년에도 전 세계 판매량의 25∼30%만 친환경 자동차이고 나머지는 내연기관이다.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며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존 연구원들이 떠나게 되면 미래 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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