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김연학 기사가 엠브레인을 귀에 착용하고 주행을 하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에 김 기사의 현재 뇌파 상태가 ‘좋아요’로 나타나고 있다. 졸음이 오거나 멍한 상태가 되면 스마트폰 화면이 빨간색으로 변하고, 이어셋에서 경고음이 나온다.
버스 운전 경력 20년차인 베테랑 기사 김연학씨는 수원∼강남 노선 광역버스를 몬다. 화창한 날씨에 고속도로에 올라 직진 구간을 달릴 때면 가끔 졸음이 올 때가 있다. 그동안에는 정신력으로 버텨왔지만, 지난해에는 ‘엠브레인’의 도움도 받았다. 엠브레인은 이어셋형 뇌파 정보 수집 장치로, 졸음·멍한 상태 등 안전운전을 해칠 수 있는 부주의 상황을 판단해 운전자에게 경고해주는 기능을 한다. 지난해 실증 사업을 마무리한 엠브레인은 올해 경기도 공공버스 300대에 도입돼 시범 사업이 실시되고, 2024년 전체 노선으로 확대 적용된다.
지난 3일 경기도 수원시 용남고속 차고지에서 만난 김연학 기사는 “주행 중 졸음이 오거나 조금이라도 딴생각이 들었다 싶으면 여지없이 (경고음이) 울렸다”며 “처음 착용했을 땐 조금 불편했는데, 곧 익숙해졌고, 안전운전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현대모비스가 경기도·경기연구원과 진행한 엠브레인 실증 사업에 참여했다. 현장에 동행한 현대모비스 선행연구섹터 이승환 상무는 “귀 주변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측정한다”며 “부주의와 관련된 뇌파를 추출해 운전자의 상태를 파악한 뒤 경고를 준다”고 설명했다.
운전자가 부주의한 상태라고 판단되면 곧바로 이어셋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이어셋과 연결된 스마트폰 화면도 붉은색으로 변한다. 현대모비스에 따르면, 뇌파를 졸음운전 방지 기술에 적용한 건 세계 최초다.
한국도로공사가 낸 통계를 보면, 2015~2019년 졸음·전방 주시 태만으로 인한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은 전체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67.6%에 달했다. 특히, 2017년 7월 발생한 경부고속도로 광역버스 졸음운전 사고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광역버스가 정체된 차량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으면서
6중 추돌사고가 났다. 2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졸음운전 탓이었다. 엠브레인을 광역버스에 가장 먼저 적용한 배경이다.
엠브레인 모습. 금색 부분이 피부에 접촉해 뇌파를 감지한다.
엠브레인의 효과는 통계로 확인됐다. 총 60명의 버스 기사가 참여한 실증 사업 결과, 경고음을 활성화했을 때가 비활성화 상태 때보다 부주의 상황 발생 빈도가 25.3% 줄었다. 특히 식사 후 시간대에는 29.7% 감소했다. 부주의 상태에서 주의 상태로 돌아오는 시간도 6.7초에서 2.3초로 줄었다.
이날 김연학 기사가 직접 엠브레인을 착용하고 차고지 인근 도로를 약 10분간 달렸다. 취재진과 동행한 탓에 긴장해서인지 “3시간 주행 때 3∼4번 정도 울렸다”던 경고음이 시험 운전 때만 5차례 울렸다. 부주의 상태뿐만 아니라 스트레스가 큰 상황에도 알람이 울리기 때문이다. 김 기사는 “가끔 손님과 마찰을 빚을 때가 있는데, 그때도 알람이 울렸다”고 말했다.
시험주행을 마친 뒤 직접 이어셋을 착용해봤다. 귀에 밀착돼서인지 묵직해 보이는 모양새와는 다르게 무게감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경고음도 들어봤다. ‘띠리링∼띠리링∼’하는 소리가 오른쪽 고막을 울렸다. 졸음이 확 달아날 만했다. 현대모비스는 경고음뿐만 아니라 진동 시트·조명 등 추가 경고 수단을 마련해 광역버스 300대를 대상으로 연내 시범 사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엠브레인을 활용해 축적된 데이터는 광역버스 기사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는 데도 사용될 계획이다. 현대모비스 이창원 책임연구원은 “운전자에게 경고음을 주는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며 “부주의 데이터를 분석해 근무 스케줄을 조정하거나 노선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운전자의 피로도를 개선하는 근본적인 처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수원/글·사진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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