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안동 중고차 매매시장 모습.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중고차 수출 딜러인 ㄱ씨는 수출용 전기차를 매입 중이라는 내용의 블로그 홍보글을 올리고 있다. 중고차 수출시장에서 국내 전기차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다. ㄱ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중고전기차 수출 가격이 국내 시세보다
훨씬 높다. 고객들에게도 국내가격보다 좋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고차 수출 시장에서 국내 전기차가 높은 가격을 받고 팔려나가고 있다. 차량을 판매하려는 차주에겐 희소식이다. 전기차 커뮤니티를 보면, 수출 딜러에게 좋은 가격을 받고 판매했다는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선도 존재한다. 전기차 수출이 친환경차 보급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9일 한국환경연구원의 ‘미래폐자원 자원순환 정책연구’ 보고서를 보면, 2021년 수출이 말소된 전기차는 총 3498대로 집계됐다. 수출말소 전기차는 2017년 이후 매년 두배씩 증가하고 있다. 수출말소는 중고차수출을 위해 국내 등록을 말소하는 행정적 절차로, 수출말소 9개월 안에 수출해야 한다. 한국중고자동차수출조합 관계자는 <한겨레>에 “수출이 말소된 차량 모두 곧바로 수출된다”며 “중고차수출 시장에서 국내 전기차 인기가 높다. 전기차만 별도로 다루는 중고차 딜러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전기차 신규 등록 및 말소 현황. 한국환경공단 ‘미래폐자원 자원순환 정책연구’ 보고서 재가공
국내 중고전기차를 주로 구매하는 나라는 요르단이다. 박영화 한국중고자동차수출조합 회장은 “요르단 바이어들이 전기차를 많이 찾는다. 요르단에 전기차 인프라가 잘 깔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출 딜러 ㄱ씨도 “요르단이 가장 비싼 값에 전기차를 가져가는 국가”라며 “엔카(중고차 판매 플랫폼)에 올리면 요르단 바이어가 바로 전화해서 가져갈 정도”라고 말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요르단 정부는 전기차 보급과 인프라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 아이오닉은 현지 전기차 점유율이 20%에 이른다.
문제는 국외로 빠져나가는 전기차가 많아질수록 국내 친환경 차량의 보급 속도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의 정책 효과도 반감된다. 물론 정부는 보조금 수령 전기차에 대해 2년의 의무보유기간을 적용한다. 다만,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건 아니다. 보조금 일부를 회수한다. 환경부는 2년이 너무 짧다는 지적에 따라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수출되는 전기차에 한해 의무보유기간을 5년으로 연장할 계획이다. 보조금을 받고 출고된 지 5년 내에 수출말소되는 경우, 차주는 전기차를 구매할 때 받은 보조금을 정부나 지자체에 반납해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 제기된다.
1인당 지급되는 전기차 보조금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기차 가격이 장기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을 전제로 보조금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해마다 전기차 보조금 총액은 늘리되 1인당 지급금을 줄이고 있다. 2016년 1인당 전기차 국고 보조금은 1500만원에서 올해 700만원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게다가 보조금을 모두 토해내지 않아도 된다. 의무보유기간을 5년으로 늘려도, 2년만 타면 보조금 회수요율이 50%, 4년을 넘기면 20%로 줄어든다. 의무보유기간이 유지될 유인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국고 보조금과 별도로 지급되는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에도 이같은 정책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환경부가 올해 1월 입법예고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담긴 보조금 회수요율 표. 연내 개정안이 시행되면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는 수출될 경우 의무운행 기간 5년이 적용된다. 시행 이전에 신규등록된 전기차는 이전 규정인 2년을 적용받는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전기차 운행을 지속할 수 있도록 사후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있어, 향후 수출 시장으로 빠져나가는 중고전기차가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덕대학교 이호근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 보조금은 자동차의 평균 수명만큼 국내에서 돌아다니면서 환경 개선 효과를 내라는 취지”라며 “구매 시점에 보조금을 일괄 지급하기보다는 주행거리에 따른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사후적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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