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어링 하네스 제조업체인 패커드코리아 직원이 와이어링 하네스를 최종 조립하고 있다. 패커드코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생산량을 줄였고, 폴크스바겐 등은 아예 공장 가동을 멈췄다. 와이어링 하네스라고 불리는 ‘전선뭉치’가 부족해서다. 차량 내 전자부품 등을 이어주는 전선 다발이다. 반도체처럼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부품이 아닌데도 완성차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30일 자동차 부품업계에 따르면 와이어링 하네스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자국에 연구소와 일부 생산시설만 남겨두고, 나머지 주요 생산시설은 모두 중국이나 동남아 등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에 두고 있다. 노동집약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와이어링 하네스는 인체의 신경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차량에 장착된 여러 전기·전자 장치를 연결하는 전선을 종류별로 묶어 결속한 부품이다. 종류와 역할별로 묶은 전선다발들이 차량 내부에 거미줄처럼 처져 있다. 차량 1대당 1500∼2000개의 전선이 들어간다. 1대에 들어간 모든 전선을 연결하면 길이가 2∼3㎞에 달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와이어링 하네스 시장은 2027년까지 790억달러(약 95조6천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최종 조립이 완료된 와이어링 하네스의 모습. 패커드코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국내 대표 와이어링 하네스 대표 기업인 유라코퍼레이션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전선을 묶고 정리하고 조립하는 건 다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차량별로 전선의 길이가 모두 다르고, 같은 차종이어도 수출 지역에 따라 (전선 길이가) 또 달라서 기계가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부품업계 관계자도 “만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 분야로, 주로 저임금 여성 노동자가 투입된다. 처음에는 국내에서 생산하다가 도저히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 대부분 해외로 생산 공장을 이전했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는 주로 중국에서 와이어링 하네스를 공급받는다. 최근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봉쇄 정책에 돌입하면서 하네스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이 중국 정부에 협력 요청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에서 28일 보호복을 입은 경찰이 황푸강을 건너 푸둥신구로 통하는 터널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 상하이/로이터 연합뉴스
생산지 다변화가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대책이다. 사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와이어링 하네스 수급 대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할 때도 중국의 봉쇄 정책으로 인해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땐 공장 가동을 아예 중단하기도 했다. 이때 중국 일변도였던 생산기지를 동남아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일부 업체들이 설비를 동남아 등으로 옮기면서 중국 의존도가 다소 낮아졌지만, 속도가 더디다는 평가다. 차 부품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쪽으로 (생산 공장을) 돌리는 중인데, 아직 그 비율이 높지는 않다”고 했다. 이미 투자를 완료한 설비를 뜯어서 다른 국가로 이전할 만큼 인센티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동력을 대체할 자동화 장비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작년 8월 와이어링 하네스 장비 생산 업체인 케이엠디지텍과 손잡고 자동화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케이엠디지텍 임성주 대표는 “한국 생산비가 100이라고하면 중국에선 70% 정도에 생산이 가능하다. 30% 정도 이익을 얻으려고 가는 것이다. 한국에서 장비를 투입해 생산성을 두배로 높여 50% 정도에 생산할 수 있다면 한국으로 돌아올 유인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완성차 업계가 와이어링 하네스의 가격을 투입된 인력 숫자를 기준으로 책정하는 정책을 바꿔야 자동화 기계 도입이 수월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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