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현대차그룹 제공
“똑같은 자동차 뼈대를 사용했는데 왜 배터리 용량이 다르죠?”
전기차 업계 관계자가 물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아이오닉5와 EV6를 두고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올해 출시한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는 같은 뼈대를 사용한 전기차다. 현대차그룹이 배터리를 차량 바닥에 깔아야 하는 전기차 특성을 반영해 개발한 ‘E-GMP’라는 기본 차대 위에 각기 몸통(차체)을 얹어서 만들었다. 껍데기만 다를 뿐 골격은 같은 셈이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현대차와 기아를 부모, 자식 또는 형제 관계라고 생각한다. 두 회사를 사실상 한 지붕 아래에 있는 같은 기업으로 본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이오닉5와 EV6는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주행 가능 거리’가 꽤 차이가 난다. 배터리 완충 후 최대 주행 거리는 롱 레인지 모델 기준 EV6가 475km로 아이오닉5(429km)보다 46km나 길다. 둘 다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만든 배터리를 사용하지만 EV6에 탑재한 배터리 용량이 77.4킬로와트시(kWh)로 아이오닉5(72.6kWh)보다 크기 때문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동생(EV6)이 손위 형제(아이오닉5)를 ‘팀킬’(같은 팀원을 공격하는 것) 하려고 나섰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왜 이런 차이를 뒀을까?
현대차그룹은 두 회사를 협력 관계로 보는 소비자의 인식이 오해라고 설명한다. 현대차와 기아는 서로 경쟁하는 엄연한 별개의 기업이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현재 두 회사의 신차 개발 등 연구·개발(R&D)의 경우 현대차 남양연구소가 총괄한다. 2000년대 초 기아의 소하리연구소와 현대차 울산연구소를 하나로 통합해서다. 구매와 회사 홍보 기능도 일원화돼 있다.
반면 상품 기획과 디자인, 영업, 서비스 등은 조직이 분리돼 있다. 각사의 판매 성과에 따라 소속 노동자의 임금 등 처우도 달라진다. 현대차와 기아가 같은 차급에서 서로 경쟁 차를 내놓고 시장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현대차 관계자는 “독일 폴크스바겐그룹 산하의 아우디, 포르쉐 등 여러 자동차 브랜드 제조사가 서로 경쟁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라고 말했다.
E-GMP도 같은 뼈대가 사용하더라도 차종별로 배터리 용량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다. 하나의 골격을 사용해 여러 종류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도록 탄력적인 배터리 탑재가 가능하게 설계한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가 지난 5월 미국에서 선보인 아이오닉5는 EV6와 같은 77.4kWh 용량의 배터리를 적용했다. 국내 시장에서 아이오닉5는 배터리 용량을 낮춘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EV6는 주행 거리 우위에 초점을 맞춘 차별화 전략을 펼쳤다는 의미다. 두 차는 승차감과 주행 성능 등도 현대차 쏘나타와 기아 K5처럼 서로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가 기아를 지배한다는 생각도 정확하게 맞진 않는다. 현대차는 기아 지분 34%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지만, 국내에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한 2011년부터 기아를 ‘종속기업’이 아닌 ‘관계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현대차가 기아의 재무·영업 등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순 있으나 실질적으로 지배하진 않는다고 판단한다는 의미다.
현대차의 회계 장부를 작성할 때도 통상의 종속기업과 달리 두 회사의 매출, 영업이익 등을 하나로 합치지 않고, 기아의 당기순이익을 보유 지분율만큼만 현대차의 영업 외 이익으로 반영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차의 기아 지분율이 50% 이하이고 의사 결정 기구를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기아를 관계회사로 분류하고 있다”고 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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