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숲은 한겨울에도 빛난다. 빛나는 겨울 숲 중에서도 으뜸은 소나무숲이다. 울울창창한 오솔길을 거닐면, 굽잇길 갈림길로 쌓이고 구르는 것들이 다 음악이다. 눈 내릴 즈음에 소나무숲 가까이 머문다면, 눈더미를 인 솔숲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볼 수 있을 터다. 숲 안팎으로는 순백의 도화지같은 새 길이 펼쳐져, 나그네의 거친 발길을 맘먹고 고쳐 딛게 해준다.
소나무는 ‘모든 나무의 어른’(본초강목)이다. 한겨울에도 푸르고 꿋꿋한, 우리나라의 대표 나무다. 세파에 꺾이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그래서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겪은 뒤에야 소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논어)는 글귀를 사랑한 선비들이 많다.
길게 이어진 산책로 들어서니
키 20m 웃도는 꼿꼿한 나무병풍
눈 그친 숲속에 햇살 파고들면
‘순백의 보석’ 곳곳 반짝인다
소나무로 덮인 섬, 안면도의 겨울 풍경도 그래서 빛난다. 섬 전체 산림의 75% 이상이 소나무다. 섬 소나무숲으론 드물게 해송(곰솔)이 아닌 육송(적송)이다. 안면송은 결이 곧고 비틀림이 적어 고려시대부터 궁궐용이나 선박 건조용 목재로 사용돼 왔다. 조선시대엔 왕실림인 황장봉산으로 지정돼 특별 관리해 오던 소나무숲이다.
잘 보전된 소나무숲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승언리 일대다. 높이 20m를 웃도는 수령 100년 안팎의 꺽다리 소나무들이 키자랑을 하고 늘어서 있는 곳이다. 430여헥타에 이르는 안면도 휴양림이다. 175헥타에 3.5㎞ 길이의 산책로와 18채의 숲속의 집 등 시설이 들어서 있다. 지난 2001년 생명의숲국민운동은 이 소나무숲을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했다.
자연휴양림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키다리 소나무들은 방문객들에게 그윽한 오솔길을 내보이며 발길을 이끈다. 완만한 숲길을 따라 오르면 산림전시관과 숲속에 그림처럼 들어앉은 숲속의 집들이 이어진다. 산책로는 다섯 코스가 마련돼 있다. 어느 길을 걸어도 소나무숲은 울창하고 솔바람은 향기롭다.
이 멋진 소나무숲에 눈이 내리고, 연인과 함께 숲길을 걷고 있다면 영하의 추위가 느껴질까. 눈 그친 뒤엔 숲속을 파고드는 햇살이 매혹적이다. 청아한 바람 한 자락에 오솔길은 파도소리로 가득 차고, 후두둑 눈 떨어지는 소리에 하늘은 조금씩 밝아진다. 미끈하게 빠진 소나무 기둥들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포착한 눈가루들은 다 흩날리는 보석들이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옆 꽃다리에서 바라본 해넘이. 앞의 두 섬이 할미바위·할아비바위다.
이 숲길엔 소나무숲에 추억을 묻은 한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휴양림 들머리에서 오른쪽 모시조개봉 쪽으로 솔잎 두터운 오솔길 옆에 안면읍 창기리 소나무숲에서 태어난 시인 채광석(1948~1987)의 시비가 있다. 암울했던 70~80년대를, 안면송처럼 곧고 청청한 정신으로 저항하며 살다 간 시인이다.
휴양림 앞 길 맞은편엔 수목원이 있다. 들머리길은 소나무숲인데, 한 굽이 돌아 내려가면 잘 가꿔진 정원이 나타난다. 눈 속에 붉은 꽃을 피우고 늘어선 동백나무가 즐비하다. 13개의 식물원으로 이뤄졌다. 한겨울에도 한국정원인 아산원, 생태습지원, 전망대, 약용나무원, 외국나무원 등을 둘러볼 만하다.
꽃지해수욕장 들머리 삼거리에서 딴뚝가든 옆길로 들면 또다른 소나무숲 산책로를 만날 수 있다. 안면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나 곧바로 숲길이 나타난다. 옛 저수지와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숲길이다. 언덕에서 직진하면 저수지인데, 차를 언덕에 대고 오른쪽 숲으로 들어야 한다. 두 갈래 산길은 서로 만나게 된다. 왼쪽 산길로 가면 곧 앞서의 저수지 물가를 거쳐 산길로 이어진다. 물가엔 ‘조운막터’ 안내판이 서 있다. 조선시대에 안면송으로 만든 배를 이용해 군량미를 실어나르던 선착장이다.
산길을 오르면 일제때 송진을 채취했던 흔적이 뚜렷한 소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더 가면 들머리의 갈림길로 돌아내려오게 된다. 휴양림 안처럼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빽빽하지는 않지만, 오래 거닐며 즐기고 싶은 소나무숲길이다. 한시간 남짓이면 산책로를 돌아 내려올 수 있다.
안면도(태안)/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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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지역번호 041)=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홍성나들목을 나가 고가 밑에서 좌회전해 40번 국도 따라 직진한다. 서산 A, B지구 방조제 지나 원청삼거리에서 77번 국도를 만나 좌회전한 뒤 안면도로 간다. 안면교 건너 고남 쪽으로 직진하면 꽃지 해수욕장 들머리 지나 왼쪽엔 휴양림, 오른쪽으론 수목원 입구가 나온다. 승언 저수지 소나무숲 산책로는 꽃지 삼거리 딴뚝가든 옆길로 들어 충남도휴양림관리사업소에서 우회전해 안면 중·고교를 차례로 지나면 숲길이 시작된다. 안면도 휴양림 ‘숲속의 집’은 매달 1일 오전 9시에 인터넷(www.anmyonhuyang.go.kr)을 통해 다음달치 예약을 받는다. 그동안 취사도구 등이 없어 불편했으나, 지난 5월부터 취사도구 일체를 갖췄다.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의 오션캐슬에서 해수사우나(8000원)가 있어 피로를 풀 수 있다. 바닷가쪽 노천스파(사우나 포함 2만원)에선 다양한 노천욕을 즐길 수 있다. 연인·가족을 위한 실내 스파 ‘파라디움’, 여성 미용스파 ‘벨로’도 있다. 방포 해수욕장·꽃지 해수욕장 등 바닷가에 바닷가회타운(방포, 673-9907) 등의 횟집들이 많다. 영양굴밥집도 많은데 본산은 서산간척지 도로 중간의 간월도다. 간월어촌계 옆의 큰마을 영양굴밥(662-2706) 등 굴밥을 내는 집들이 몰려 있다. 서산간척지에서 홍성나들목으로 나오다, 남당리 팻말 보고 우회전해 30분쯤 가면 홍성 남당리 포장촌과 보령 천북 굴구이 포장촌이 이어진다. 남당리에선 새조개 샤브샤브가 제철이고, 천북에선 석쇠 굴구이가 한창이다. 남당리~천북은 6, 7분 거리. 안면도 청년회 정재혁(011-9904-5656)씨에게 문의하면 숙소와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안면도자연휴양림 674-5019, 오션캐슬 671-7060, 태안군청 문화관광과 670-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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