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단국대 영미인문학과 김성헌 교수
과연 ‘한국적인 커피’가 가능할까? 그는 자신이 만든 커피를 한 잔 따라주며 맛을 보라고 했다. 평소에 마시던 커피 맛과는 분명 달랐다. 우선 커피를 담고 있는 그릇이 달랐다. 한국 도자기이다. 차를 마시던 도자기 찻잔에 커피가 담겨 있다. 커피를 담은 주전자도 도자기이다. 소나무 장작으로, 우리 흙으로, 우리식 가마에서 만든 그릇이란다. 그릇만 다른 것이 아니다. 그는 커피를 내릴 때 종이 필터를 쓰지 않고 삼베를 쓴다. “한민족은 삼베를 이용해 약을 짜냈어요. 커피를 내릴 때도 삼베를 사용했더니 훨씬 세련된 맛이 창조됐어요.” 그는 삼베 대신 마른 칡잎을 사용하기도 한다. 칡잎에 커피를 거르면 칡 냄새가 그윽하게 밴다고 한다. 칡이 감싼 커피의 맛은 어떨까. 그뿐만이 아니다. 물도 한국적 커피를 만드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한국은 땅에 화강암과 현무암이 섞여 있고 사계절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아주 독특한 물맛이 있습니다. 진짜 우리의 물로 커피를 내리면 맛이 다릅니다.” 그는 공개를 할 수 없는 곳에서 길어 온 물이라고 했다. 한국 최고의 물이라고 한다.
김성헌(52) 단국대 영미인문학과 교수는 스스로를 ‘커피스터’라고 부른다. 커피 전문가인 ‘바리스타’와는 좀 다른 개념이다. 김 교수는 지난 3월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 커피학과를 개설했다. 전세계 유일한 대학의 커피학과라고 한다. 커피를 중심으로 인문학과 과학, 예술 지식으로 무장한 진정한 커피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좌도 다양하다. 커피학 개론, 커피 식물학, 커피와 문화예술, 커피 생두 가공, 커피 영양학, 커피 산업윤리, 커피와 과학 등. 심지어 커피와 패션디자인, 커피 창업론도 있다. 로스팅과 바리스타 등 각종 커피 자격증을 따면 ‘커피 명장’ 타이틀도 수여한다. 현재 모두 7명의 교수에 11명의 대학원생이 커피 공부를 하고 있다.
올 3월 대학원에 커피학과 개설
“전세계 유일한 대학 커피학과”
커피 중심 인문학 과학 등 가르쳐 미 보스턴 유학 때 커피 매력 빠져
밤에 커피 공부하며 자격증도 따
증류커피 등 다양한 커피상품 개발 한국 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20년 전부터 단국대 영문과와 영미인문학과에서 언어철학과 영미인문학을 강의하던 김 교수가 올해 커피학과를 열게 된 계기는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 유학 시절, 길거리 카페 모습 때문이었다. 커피를 내릴 때 퍼지는 스팀과 알싸한 커피 향기, 그리고 손님이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아침 길거리 카페에서 그는 아르바이트를 결심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밤에는 커피 전문 교육원을 찾아 체계적으로 커피 공부를 했다. 지난 20년간 커피에 대해 다양한 외부 강의를 했다. 소문을 들은 단국대는 김 교수에게 학부 커피오딧세이 교양강좌 개설을 건의했다. 김 교수는 차와는 오랜 인연이 있다고 한다. 불교신자인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적부터 전국 사찰을 다니며 고승들이 내려주는 차를 마셨다. 특히 초등학교 때 통도사의 고승이었던 경봉 큰스님이 물이 좋기로 유명한 통도사 극락암의 물로 타주신 말차의 향기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또 보이차 등 각종 발효차에 대해서도 최고 전문가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차는 시간의 예술입니다. 인위적으로 그 맛을 만들지 못해요.”
커피의 맛은 다양하다. 원두의 종류뿐 아니다. 원두 껍질을 어느 정도로 벗기고, 씻고, 말리고, 볶았는가에 따라 심지어 물을 어떤 온도와 속도로 내리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창조’된다.
김 교수는 외국에서 들여온 커피에 ‘한국의 미학’을 가미하는 데 몰두했다. “한국적인 커피를 세계적인 커피로 진화시키고 싶어요. 세계 최고의 물이 있고, 세계 최고의 그릇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전국 각지의 알려지지 않은 좋은 물(자연수)을 김 교수는 찾아다닌다. “강원도 상원사의 용안수 등 한국의 자연수는 ‘절대적인 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뛰어난 물은 커피 맛을 놀랍게 진화시킵니다. 인공적인 물을 사용하는 것과 자연수를 사용하는 것은 맛의 근원부터 다르게 만듭니다.”
김 교수는 백색 커피도 만들어 특허출원중이다. 마치 안동소주를 만들듯 증류시킨 커피이다. 커피 화장품과 커피 치약, 커피 밥, 커피잎 차 등 다양한 상품도 연구 개발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어느새 커피는 삶의 일부가 됐어요. 그저 잠을 쫓고, 피곤을 없애기 위해 여유 없이, 허겁지겁 마시는 것이 아니라 차분히 음미하며 마셔야 합니다. 커피학은 그런 커피의 근본을 공부하고, 커피를 추출하고 로스팅하는 실기도 익혀 진정한 ‘커피스터’를 육성하는 학문입니다.”
김 교수가 따라준 커피는 뜨겁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맛은 오랫동안 남았다. 잔잔하고도 진하게.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김성헌 교수.
“전세계 유일한 대학 커피학과”
커피 중심 인문학 과학 등 가르쳐 미 보스턴 유학 때 커피 매력 빠져
밤에 커피 공부하며 자격증도 따
증류커피 등 다양한 커피상품 개발 한국 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20년 전부터 단국대 영문과와 영미인문학과에서 언어철학과 영미인문학을 강의하던 김 교수가 올해 커피학과를 열게 된 계기는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 유학 시절, 길거리 카페 모습 때문이었다. 커피를 내릴 때 퍼지는 스팀과 알싸한 커피 향기, 그리고 손님이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아침 길거리 카페에서 그는 아르바이트를 결심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밤에는 커피 전문 교육원을 찾아 체계적으로 커피 공부를 했다. 지난 20년간 커피에 대해 다양한 외부 강의를 했다. 소문을 들은 단국대는 김 교수에게 학부 커피오딧세이 교양강좌 개설을 건의했다. 김 교수는 차와는 오랜 인연이 있다고 한다. 불교신자인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적부터 전국 사찰을 다니며 고승들이 내려주는 차를 마셨다. 특히 초등학교 때 통도사의 고승이었던 경봉 큰스님이 물이 좋기로 유명한 통도사 극락암의 물로 타주신 말차의 향기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또 보이차 등 각종 발효차에 대해서도 최고 전문가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차는 시간의 예술입니다. 인위적으로 그 맛을 만들지 못해요.”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