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영의트렌드와놀기
말하기는 쉽다. 100년이라고. 그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말 그대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면서도 변치 않는 모습을 보여준 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더구나 유행이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패션계에서.
지난 2일 서울 청담동에 새롭게 생긴 한 복합 건물에서는 재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명품 브랜드 ‘로에베’에서 개최한 전시회와 패션쇼였다. 최고의 가죽을 자랑하며 수공예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스페인 브랜드 로에베는 내년에 160주년을 맞이하기에 앞서, 1970년대에 만들어진 로에베의 베스트셀러 아이템인 아마조나(Amazona) 가방의 3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최초의 빅사이즈 백인 아마조나에서 영감을 받아 메이크업 아티스트, 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축가 등 각분야의 예술가들이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루이비통 또한 지난해에 150주년을 맞았다. 이때 프랑스 파리 샹제리제 거리에 있는 플래그십 숍에서는 거대한 모노그램(루이비통의 대표적인 패턴으로 만들어진 백) 트렁크 백을 모형으로 전시하기도 했다.
튤립 모양의 스커트와 재킷인 ‘뉴룩’을 선보이며 패션사에 길이 남을 주옥 같은 디자인으로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 또한 올해 100살을 맞이했다. 2005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존 갈리아노(현재 크리스찬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크리스찬 디올에 경의를 표하는 패션쇼를 열었고, 크리스찬 디올의 생가에서는 오트 쿠튀르 드레스들과 보석, 패션 사진과 회화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100살은 아직 채우지 못했지만 80주년을 맞이하는 펜디에서도 브랜드의 근원지이기도 한 도시 로마에 팔라조 펜디를 열어 사진작가 윌리엄 클라인과 함께 로마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라는 책을 발간하는 기념 전시회를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명품이라는 낱말은 이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되었다. 하다못해 홈쇼핑에서도 명품이라는 이름 아래 물건을 시장 물건처럼 팔아 치운다. 과연 명품의 의미가 무엇일까. 고가의 물건으로 백화점이나 청담동 어느 매장에서 팔고 있는 물건이 명품이 아니다. 명품이란 시간과 세월이 만들어낸 장인들의 결과물이다. 몇 대를 이어 장인들은 정성스레 물건을 만들고, 몇대를 이어 자신의 브랜드를 지켜온 사람들이 시장에 선보인 것이 바로 명품인 것이다. 일일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진 에르메스의 벌킨 백이나 테스토니의 신발들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디자인과 함께 만든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시즌 장사하다 매출이 없으면 바로 브랜드를 없애 버리고, 남이 해서 잘 팔리는 것을 바로 따라 만들어 서로 제살을 갉아 먹는 국내 유통 현실 속에서 시간과 정성이 담긴 진정한 명품을 지금 보기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국내 브랜드 가운데서도 ‘진정한 명품’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면 지나친 걸까?
서은영/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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