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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녹아 내릴 것 같았다. 드레스를 입고 인력거에 앉아 있는 밀라 요보비치는 베트남의 끈적거리는 습한 날씨 때문인지 촉촉하게 젖어 있어, 그 모습이 한층 나른하면서 매혹적이다. 넥타이를 살짝 풀어 헤치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제레미 아이언스의 모습은 쓸쓸하면서도 매우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베트남 거리를 헤매던 그들은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눈다. 영화 <연인>에서 토니륭과 제인 마치가 사랑을 나누었던 방과 비슷한 곳에서 그들도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이때도 밀라 요보비치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 극적이고 매혹적인 ‘러브 어페어’는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미국의 패션 브랜드 도나카란에서 몇 페이지에 걸쳐 지난해 여름에 선보였던 광고 이미지이다. 이 영화 같은 이국적인 광고는 그 해 여름 매출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며 도나카란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고백하건대 이 광고를 본 필자도 도나카란의 드레스를 사서 베트남으로 떠나면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마음 설레기도 했다.
패션 광고 혹은 패션쇼에서 옷을 더욱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문 패션 모델뿐이다. 패션 모델은 스타와 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행동을 보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렇기에 옷과 모델의 이미지가 하나로 어우러지게 되고, 이것을 본 사람들은 자신이 입어도 저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가수나 배우 같은 스타가 모델이 될 경우, 확실한 인지도는 생기게 되나 스타의 강한 이미지 때문에 제품보다 모델이 소비자의 눈에 먼저 들어 올 위험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스타의 강한 이미지가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디자이너가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강한 메시지가 있을 때 스타의 이미지는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그래서 최근엔 스타를 써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브랜드가 늘어가는 추세다. 화려하고 신비로운 여배우의 이미지를 내기 위해 샤넬은 니콜 키드먼을 파리의 밤거리에 뛰어 다니게 했고, 베르사체는 관능적이고 화려한 여인을 연출하기 위해 마돈나를 등장시켰다. 클래식 무드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 루이비통은 아름답고 지적인 우마서먼을 등장시키며 강렬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들 모두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미지에 맞는 스타를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내 패션 광고를 보면 단지 인지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스타를 막무가내로 등장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음에는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여기저기에 겹치기로 보여지는 스타의 이미지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게 된다. 제품의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스타가 제품 이미지에 오히려 악영향을 주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래서 광고에 비싼 돈을 들이고도 본전을 못 찾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국내 패션 광고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은 언제나 똑같이 연출되는 스타들의 웃음 때문이라는 사실을 광고주들은 모르는 것일까.
서은영/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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