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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미소년 애호는 이제 보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게 됐다. 요즘 나이 든 여자와 어린 남자의 짝짓기 무드 속에서 드라마나 영화 만들기가 무슨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자칭타칭 ‘우리 사무실에서 딸의 남자 친구를 뺏을 것 같은 여자 1위’로 뽑힌 자의 눈으로 보건대, 박철수 감독의 <녹색 의자>와 지금 한창 촬영 중인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를 빼면 다 억지스럽기 그지없는 코미디에 불과하다.
설마 17살 소년이 여자와 섹스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픈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이니 ‘미성년 추행’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고(대부분의 남자들이 첫경험을 중고등학교 때 치르는 걸로 알고 있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의 섹슈얼리티나 그 어린 남자를 통해 성숙한 여자가 경험했을 열락의 세계에 대해 논하는 일이라면 좀 흥미가 있다.
개인적 취향을 말하자면 요즘 <몽상가들>의 마이클 피트만큼 섹스 어필한 미소년은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의 하얗고 가느다란 육체가 가진 관능미다. 결정적으로 사람들은 그 허약해 보이는 ‘장미’가 흥분하면 매우 강하고 단단한 ‘권총’으로 변한다는 사실(영화 <몽상가들>은 그의 단단하게 발기된 페니스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을 알게 됐다. 그 때문에 소녀들은 물론 성숙한 여자들, 심지어 성숙한 남자들까지도(‘성난 3인치’의 비애로운 남자 헤드윅) 그를 어머니처럼 돌보기를 원하는 동시에 그에 의하여 타락하기를 원하게 된다. 마이클 피트의 섹슈얼리티가 치명적인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 얼굴만 보면 마이클 피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소년 중 한 사람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를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시킨 구스 반 산트나 <헤드윅>의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이 남자애가 그저 예쁘장하기만 한 게 아니란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일단 그 기이한 옷차림만으로도 구스 반 산트나 존 카메론 미첼 같은 예술가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찢어진 검은 옷에 ‘$+ Love = 666'이라고 갈겨 쓴 낡아빠진 배낭을 메고 거리를 배회하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폭탄보다 오르가슴이 낫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선댄스 영화제에 나타나기도 했다. 말하자면 얼굴은 아름다운 소년이지만 하고 다니는 꼴을 보면 완전히 방종한 볼셰비키의 일원이다.
아무튼 그는 주로 더럽고 솔기가 터진 옷들을 좋아하는데, 그 옷차림이 사람들에게 말해준다. 뭔가 문제가 많고, 예민하고, 금방 무너져 내릴 것처럼 허약하고, 랭보의 손가락처럼 섬세하고 난폭한 어떤 것이 그에겐 있다고. 그 때문에 기자들은 기를 쓰고, 때로는 소설가까지 인터뷰어로 등장시켜 문제 투성이였던 그의 어두운 성장기를 들춰 내려고 애를 쓰고, 아카데미보다는 선댄스에서 더 환영받을 것 같은 비주류 영화 감독들은 앞을 다투어 그에게 문제적인 캐릭터를 맡기고 싶어 한다. 그 중 하나가 구스 반 산트가 연출하는 영화 <라스트 데이즈>에서의 커트 코베인 역할인데, 음악적 재능으로 보나 섹스 어필한 매력으로 보나 마이클 피트만큼 그 역할을 잘해낼 인물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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