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막
전남 벌교 꼬막 맛기행
가을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 때쯤이면 전라도 사람들의 밥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먹거리가 있다. 벌교 꼬막이다. 꼬막은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나지만 벌교 참꼬막의 쫄깃쫄깃하고 짭조름하면서 알큰하고 배릿한 맛에는 미치지 못한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는 벌교 꼬막을 이렇게 표현했다. “알맞게 잘 삶아진 꼬막은 껍질을 까면 몸체가 하나도 줄어들지 않고, 물기가 반드르르 돌게 마련이었다. 양념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도 꼬막은 훌륭한 반찬 노릇을 했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
물이 빠지자 여자만을 품고있는 벌교읍 대포(大浦)리는 온통 뻘밭으로 둔갑했다. 65가구 120여 명이 살고 있는 아담한 어촌마을은 강이나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뜻하는 개, 그 가운데도 큰 개가 있다 하여 한개 또는 항개라고 불렸다. 한때 낙안군 남면에 속했던 이곳은 삼면이 바다로 싸여 마치 연꽃이 호수에 떠있는 모습이라 하여 연호동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찬바람 갯벌 감싸는 겨울이
한껏 살올라 연중 최고의 맛 마을 선착장 앞 물 빠진 포구에 놓인 10여 척의 고깃배들은 이미 갈매기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낙네들이 살을 에는 바닷바람을 무릅쓰고 회색빛 개펄 위에 바구니와 갈고리를 실은 널빤지인 뻘차를 밀며 꼬막을 잡고 있다. 왼쪽 무릎을 뻘차에 얹고 오른발을 노를 삼아 개펄을 걷어 차 이동하면서 개흙 속에서 참꼬막을 건져낸다. 한 사람이 보통 2시간 반쯤 뻘널(뻘배)질해서 꼬막 20킬로그램쯤을 잡는다고 한다. 외지인 식탁올릴 꼬막잡이에
칼바람 맞서 뻘널질하는
아낙들 허리는 더 수고롭다 청정해역 여자만이 일궈낸 이곳 벌교 갯벌은 국내 해안습지로는 처음으로 국제습지보전 협약인 ‘람사협약’ 보전 습지로 등록됐다. 모래나 황토가 섞인 여느 개펄과 달리 유독 깊고 차진 진흙벌이어서 이곳에서 잡히는 참꼬막이 그만큼 맛이 쫄깃거리고 깊다. 대포리 정한식(63) 이장은 “꼬막은 11월께 가을 찬바람이 갯벌을 감싸기 시작하면 짱뚱어가 들어가면서 쫄깃쫄깃한 맛이 들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춘삼월 알을 품기 직전까지도 깊은 맛을 지니고 있지만 맛을 아는 이들은 추위에 오그라든 채 쫄깃쫄깃한 살이 오른 한 겨울 속 맛을 최고로 친다고 한다. 특히 달이 찬 보름 무렵에 잡은 것보다는 달이 없는 그믐에 캔 것이 살이 알차다.
뻘널(뻘배)질이 한창인 다른 쪽에는 게구멍 속에 숨어있는 찔기미(칠게)들과 갈매기들의 좇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다. 개펄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장도 밖으로 물러났던 바닷물이 밀려들자 아낙들이 비로소 뻘널질을 멈추고 칼바람에 곱은 허리를 편다. 한겨울 아낙들의 혹독한 수고로움은 봄이 오기 전까지 이어지리라. 정 이장은 “고기가 기름지고 꼬막과 낙지가 영양분이 풍부해서 그런지 대포 마을 주민들은 10년은 젊어보일 정도로 건강하다”면서 “특히 한겨울에 먹는 대포 꼬막은 만병통치약”이라고 자랑했다. 실제로 꼬막은 고단백이면서도 비타민과 칼슘, 철분 함유량이 많아 빈혈 예방과 어린이 발육에 좋다. 대포리에서는 해마다 11월 초에 벌교꼬막축제가 벌어진다. 또 음력 정월 대보름날(15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동제(대포갯귀신제)를 지낸다. 첫날 밤은 당집에서 제를 올리고, 뒷날 밤은 하당(下堂)이라 하여 제수(소머리)를 바다에 바치는 당산제를 지낸다. 꼬막은 자연산 참꼬막과 양식된 새꼬막(똥고막) 그리고 피꼬막 세 가지로 나뉘는데 최고는 역시 참꼬막이다. 껍데기의 세로줄이 듬성듬성하고 골이 깊이 파여 있는 참꼬막은 표면에 털이 없고 쫄깃쫄깃한 맛이라야 제삿상에 올려졌다. 껍데기 색이 엷고 솜털을 가진 새꼬막은 골이 없이 줄무늬만 있다. 피조개와 닮은 주먹만한 피꼬막은 주로 회로 먹는다.
벌교에서는 막걸리 한 됫박에 꼬막 한 사발 까는 게 옛 장돌뱅이들의 낙이었으며, 임금 수라상의 8진미 가운데 1품으로 진상 되었던 것이 참꼬막이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가 외서댁을 범하면서 ‘쫄깃한 꼬막 맛’에 비유했던 것도 바로 벌교 참꼬막이다. 참꼬막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벌교 사람들은 “감기 석 달에 입맛은 소태같아도 참꼬막 맛은 변치 않는다”는 말을 즐겨 한다. 그만큼 물리지 않는 게 벌교 참꼬막이다. 요즘 전남 동부 6군 최고의 장터라는 벌교장(오일장)을 가면 어물전에 참꼬막을 비롯해 새꼬막과 짱뚱어, 게, 숭어, 바지락, 주꾸미, 낙지 등 제철 해산물들이 지천이다. 4일과 9일이면 인근 고흥은 물론 승주, 낙안, 송광, 그리고 보성의 장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는 곳이 바로 벌교장이다. 장이 설 때면 벌교 꼬막 맛을 못 잊는 외지인들이 근처 식당에 몰려와 참꼬막 한 접시와 막걸리를 앞에 두고 ‘외서댁’을 들먹이는 곳이기도 하다. 한 겨울 벌교장을 찾아 쫄깃한 참꼬막 한 접시에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는 것도 벌교여행의 낭만이다.
벌교/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011-252-9438 061-857-9438
꼬막에 한창 살이 오르는 요즘 벌교읍 대포리에는 동네 아낙들이 살을 에는 바닷바람을 무릅쓰고 물빠진 개펄 위에 뻘차를 밀며 꼬막을 잡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한껏 살올라 연중 최고의 맛 마을 선착장 앞 물 빠진 포구에 놓인 10여 척의 고깃배들은 이미 갈매기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낙네들이 살을 에는 바닷바람을 무릅쓰고 회색빛 개펄 위에 바구니와 갈고리를 실은 널빤지인 뻘차를 밀며 꼬막을 잡고 있다. 왼쪽 무릎을 뻘차에 얹고 오른발을 노를 삼아 개펄을 걷어 차 이동하면서 개흙 속에서 참꼬막을 건져낸다. 한 사람이 보통 2시간 반쯤 뻘널(뻘배)질해서 꼬막 20킬로그램쯤을 잡는다고 한다. 외지인 식탁올릴 꼬막잡이에
칼바람 맞서 뻘널질하는
아낙들 허리는 더 수고롭다 청정해역 여자만이 일궈낸 이곳 벌교 갯벌은 국내 해안습지로는 처음으로 국제습지보전 협약인 ‘람사협약’ 보전 습지로 등록됐다. 모래나 황토가 섞인 여느 개펄과 달리 유독 깊고 차진 진흙벌이어서 이곳에서 잡히는 참꼬막이 그만큼 맛이 쫄깃거리고 깊다. 대포리 정한식(63) 이장은 “꼬막은 11월께 가을 찬바람이 갯벌을 감싸기 시작하면 짱뚱어가 들어가면서 쫄깃쫄깃한 맛이 들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춘삼월 알을 품기 직전까지도 깊은 맛을 지니고 있지만 맛을 아는 이들은 추위에 오그라든 채 쫄깃쫄깃한 살이 오른 한 겨울 속 맛을 최고로 친다고 한다. 특히 달이 찬 보름 무렵에 잡은 것보다는 달이 없는 그믐에 캔 것이 살이 알차다.
뻘널(뻘배)질이 한창인 다른 쪽에는 게구멍 속에 숨어있는 찔기미(칠게)들과 갈매기들의 좇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다. 개펄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장도 밖으로 물러났던 바닷물이 밀려들자 아낙들이 비로소 뻘널질을 멈추고 칼바람에 곱은 허리를 편다. 한겨울 아낙들의 혹독한 수고로움은 봄이 오기 전까지 이어지리라. 정 이장은 “고기가 기름지고 꼬막과 낙지가 영양분이 풍부해서 그런지 대포 마을 주민들은 10년은 젊어보일 정도로 건강하다”면서 “특히 한겨울에 먹는 대포 꼬막은 만병통치약”이라고 자랑했다. 실제로 꼬막은 고단백이면서도 비타민과 칼슘, 철분 함유량이 많아 빈혈 예방과 어린이 발육에 좋다. 대포리에서는 해마다 11월 초에 벌교꼬막축제가 벌어진다. 또 음력 정월 대보름날(15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동제(대포갯귀신제)를 지낸다. 첫날 밤은 당집에서 제를 올리고, 뒷날 밤은 하당(下堂)이라 하여 제수(소머리)를 바다에 바치는 당산제를 지낸다. 꼬막은 자연산 참꼬막과 양식된 새꼬막(똥고막) 그리고 피꼬막 세 가지로 나뉘는데 최고는 역시 참꼬막이다. 껍데기의 세로줄이 듬성듬성하고 골이 깊이 파여 있는 참꼬막은 표면에 털이 없고 쫄깃쫄깃한 맛이라야 제삿상에 올려졌다. 껍데기 색이 엷고 솜털을 가진 새꼬막은 골이 없이 줄무늬만 있다. 피조개와 닮은 주먹만한 피꼬막은 주로 회로 먹는다.
해마다 12월이면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 녹차밭은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히면서 또다른 세상으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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