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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언땅 뚫고 새순 움트는 보리밭에 서다

등록 2005-03-03 21:30수정 2005-03-03 21:30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의 드넓은 보리밭. 지난 주말 안양에서 온 한 가족이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보리밭에 들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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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의 드넓은 보리밭. 지난 주말 안양에서 온 한 가족이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보리밭에 들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남녘 드넓은 보리밭들이 하늘만큼 청명하다. 새로 열어젖힌 봄, 새 들판이다. 잔설 희끗한 산자락을 달려온 냉정한 바람도, 눈비 머금은 구름더미도 보리밭 언덕에 이르러 마음을 고쳐먹는다. 향기로운 보리 새순에 뺨 비비며 뒹굴며 마음을 눅여, 아찔 아찔 봄바람으로 거듭나는 곳이다. 푸르고 따뜻한 생명의 숨결, 언 땅 뚫고 돋아나 매서운 한파를 견뎌낸 새싹의 힘이다. 찬바람의 끝자락, 보리밭 언덕에서 만나는 봄 빛깔은 그래서 꽃밭보다 진하고 향기롭다.

산과 들판의 꽃나무들이 본격적인 봄잔치를 위해 햇살 받고 물 긷기에 분주한 요즘, 보리밭을 찾으면 한발 앞서 진초록 봄빛의 향연을 누려볼 수 있다. 지금 잔디만큼 자라오른 보리 새순들이, 아직은 차가운 들판을 싱싱한 봄빛으로 수놓고 있다. 지난해 추수 뒤 뿌린 씨앗이 겨우내 싹을 틔워올려 펼쳐보이는 새 생명의 들판이다. 보리 새순은 지금부터 하루가 다르게 자라올라, 5월말 황금빛으로 물들기 전까지 싱그러운 초록 파도를 일렁이며 봄의 축제를 이어갈 터이다.

이맘때 정월엔 보리밟기가 이뤄진다. 이웃끼리 보리밭에 모여 일렬로 서서 차근차근 보리밭을 밟아나가는 일이다. 새싹이 돋느라 들떠 있는 흙을 밟아줘야 뿌리가 땅에 박혀 잘 자라기 때문이다. 보리밭으로 소가 지나가면, 소 발자국의 보리만 유독 무성히 자라오른다고 할 정도다. 요즘은 농기계를 이용해 보리밭을 다진다.

이 땅의 보리밭엔 보리 새순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음력 정월부터 사월까지, 맛있고 배고프고 코끝 찡한 이야기들, 봄바람처럼 번져가는 소문들이 스며 있는 곳이 보리밭이다.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진행형이었던 이야기들이다. 정월 무렵 보리 새순을 뽑아내 된장 넣어 끓이면 구수한 보릿국이 됐고, 막 솟아오른 보리목을 뽑아내고 보릿대를 입에 물면 보리피리가 되어 배고프고 나른한 봄철 한나절을 놀아주었다. 한껏 자라올라 무성해진 보리밭에선 처녀 총각 사랑노래가 들리거나, 보릿대 분지르며 자리 불편한 사랑놀이가 저질러지기도 했다. 그 푸른 보리밭의 뒷그림에 짙게 드리운 가난과 배고픔의 그림자, 보릿고개가 있다. 쌀독은 바닥나고 보리 수확은 이른 시기, 칡뿌리 캐 먹고 나무껍질 벗겨 먹으며 연명해야 했던 때다. 채 여물지 않은 보리이삭을 베어 삶아먹고 구워먹던 굶주린 봄은 1960년대까지도 이어져 왔다.

먹을거리가 풍족해지고, 식생활의 변화와 보리쌀 감산정책 등으로 보리밭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부에선 순전히 봄빛을 꿈꾸는 관광객들을 위해 해마다 광활한 보리밭을 가꿔 선보이기도 한다. 지난해부턴 경관이 아름다운 농작물 밭들을 이른바 ‘경관농업특구’로 지정해 지원하는 제도까지 마련됐다. 보리밭이 지천인 전북 고창 경관농업특구도 그 가운데 한곳이다. 궁핍했던 시절, 보릿국에다 보리개떡, 보리죽 등으로 농민들의 허기를 달래는데 요긴하게 이용됐던 보리밭이 아름다운 관광지로 새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바람 차가워도 봄 문턱을 넘어선 삼월. 생명의 기운 가득한 봄 들판에 빠져 보자. 손잡고 청청한 보리밭 푸른 융단 위를 미끄러지다 보면, 보리새순들 사이로 얼굴을 내민 냉이며 씀바귀들도 지천이다. 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싱그런 초록융단…봄처녀 사뿐사뿐
봄빛 두른 보리밥 사잇길로…

전국 보리밭들이 잔설을 털고 진초록 융단으로 바뀌었다. 아직 겨울빛 남은 산과 들판 사이로 펼쳐진 광활한 보리밭은 도드라지게 선명한 모습이다. 전국 곳곳에 펼쳐진 대규모 보리밭들을 만나러 간다. 생명의 기운과 봄빛깔을 만끽하기에 충분한 풍경이다.

① 고창 공음면 보리밭

둘러보면 온 들판이 다 푸르다. 하늘과 맞닿은 언덕에선 벌써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듯하다. 전북 고창 공음면 선동리, 전후좌우로 펼쳐진 보리밭에 서면, 이미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선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드넓은 보리밭의 중심은 학원농장이다. 1993년부터 보리를 심어온 대규모 관광농장으로, 해마다 10만여평의 들판을 보리밭으로 가꿔 눈부신 봄 풍경을 선보이고 있는 곳이다. 농장 보리밭이 관광지로 이름을 얻으면서, 요즘은 주변 농가들에서도 앞다퉈 보리밭을 일구고 있다. 학원농장 10만5000평과 주변 농가들의 밭을 합치면 올해 선보인 전체 보리밭 면적은 30여만평에 이른다. 학원농장에선 농약을 쓰지 않고 재배한 보리쌀을 해마다 5000가마씩 생산해낸다. 지난해말엔 이 지역이 고창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돼 명실공히 친환경 농촌관광지로 인정받았다.

학원농장 보리밭은 자연스럽게 뻗어내린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어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 보인다. 지금 잔디만큼 자라오른 보리 새순들이 드넓은 언덕을 뒤덮고 있다. 지난주와 이번주초에 걸쳐 비료주기와 잔디밟기를 마치고 푸른 봄기운을 한껏 내뿜기 시작했다.

이맘 때 이 보리밭은 전교생이 50명인 선동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새싹 돋아난 보리밭을 마음껏 달리고 뒹굴며, 푸르고 씩씩한 새싹으로 자란다. 보리가 한뼘 길이로 자라는 3월 말부터는 보리밭에 탐방로를 만들어 방문객들을 맞는다. 구불구불, 줄을 쳐놓은 탐방로를 따라 보리밭 안쪽 깊숙이까지 들어가 산책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보리밭이 가장 보기 좋은 때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 무렵. 보릿대가 허리 높이까지 자라올라 푸른 빛이 한결 선명해지고, 바람이 불면 보리밭은 초록바다가 되어 눈부시게 일렁인다. 바람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보리밭 빛깔도 다채롭게 바뀌며 짙고 연한 초록빛 색잔치를 펼쳐보인다. 이 청보리밭은 5월 중순 이후부터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 6월초 수확기를 맞는다. 9월엔 드넓은 메밀꽃밭으로 새단장돼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올해부턴 수확이 끝난 뒤 메밀을 심기 전까지의 기간을 이용해, 광활한 해바라기밭을 새로 선보일 계획이다. 학원농장 대표 진영호(56)씨는 “메밀을 파종할 때까지 한달 반 정도의 기간에, 해바라기 모종을 심어 전국 최대의 해바라기밭을 만들어볼 생각”이라며 “보리밭, 메밀꽃밭에 이어 또다른 볼거리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장과 주변 보리밭에선 오는 4월9일~5월8일 한달간 ‘제2회 고창 청보리밭축제’가 벌어진다. 보리개떡 만들어먹기, 보리피리 만들기, 짚공예 체험, 농경수확 체험, 물레·베틀 체험 등 상설 전통생활 체험장이 마련되고, 농촌관광국제학술대회·판소리한마당 등 학술·공연 행사도 진행된다. 특히 올해 행사부터는 전국에서 가려뽑은 짚공예·대장간·규방공예·윤도(나침반)·떡·황토염색 등 각 민속 분야의 전문가(민속기능인)들을 초청해 대대적인 민속체험장을 선보이게 된다.


* 가는길과 주변 볼거리

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 고창나들목에서 나간다. 15번 지방도 타고 무장면 소재지로 간 뒤 무장오거리에서 좌회전해 팻말 따라 학원농장으로 간다. 고창은 문화유적 등 볼거리가 푸짐한 고장. 보리밭을 둘러보고 주변의 유적지들로 발길을 옮겨볼 만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인돌 무리, 조선 초기에 왜적을 막기 위해 쌓은 고창읍성, 동백나무숲이 아름다운 고찰 선운사 등이 있다. 선운사 동백꽃의 절정 예상기는 4월초~중순. 학원농장 (063)564-9897. 고창군청 문화관광과 (063)560-2230.



② 포항 대보면 보리밭



경북 포항시 대보면 구만리 일대. 해맞이 명소가 된 호미곶 주변에 10만여평의 보리밭이 펼쳐져 있다.

이곳 보리밭은 넓기도 넓지만, 바다와 접한 능선에 자리잡고 있어 색다른 풍경화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지금은 물론, 밭들이 막 푸른빛으로 깔리기 시작한 초원의 모습이지만, 3월 말부터는 제법 무성해진 보리밭이 빼어난 경관을 선보이게 된다. 바닷가 쪽으로 늘어선 일부 전봇대와 전깃줄을 피해 자리를 잡으면, 푸른 동해바다가 배경으로 깔린 초록색 보리밭 지평선을 감상할 수 있다. 구만리 바닷가, 구룡반도 일주도로 양쪽이 다 짙푸른 보리밭이다.

특히 대보면 사무소 앞길 건너 완만하게 경사진 보리밭이 볼 만한데, 밭 한가운데 모여선 소나무들과 어우러진 풍경이 감상 포인트다. 수령 100년이 넘은 네 그루의 멋진 소나무들이 광활한 보리밭을 지키고 서 있다. 본디 다섯그루였는데, 한 그루는 몇년전 태풍으로 꺾여 줄기만 남아 있다. 대보면 사무소 앞길에서 호미곶 쪽으로 50m 쯤 가다 왼쪽으로 들면, 보리밭 사잇길을 지나 소나무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4~5월이면 이곳으로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산기슭 쪽으로 펼쳐진 보리밭 사이로는 차가 다닐 수 있는 시멘트길이 있어, 한바퀴 돌며 보리밭을 감상할 수 있다.

구룡반도를 따라 바다를 바라보며 일주하는 드라이브길이 아름답다. 아담한 산중 호수가 아름다운 고찰 오어사도 구룡반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대보면 사무소 (054)284-9301.



③ 해남, 완도 청산도 보리밭

지금쯤 남도 일대는 어디를 가도 화사한 봄빛을 만날 수 있다. 드넓은 보리밭들과 마늘, 양파 따위 작물들이 들판을 푸른 초원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해남 일대는 널찍한 보리밭으로 봄빛을 내뿜는 곳이다. 계곡면 신성리 너른 벌판을 장식하고 있는 보리밭과 마산면 산막리 주변의 보리밭이 볼 만하다. 지금 한뼘 가량 자란 보리밭이 연초록 생기를 더해가고 있다.

완도군의 청산도는 아기자기한 돌담길과 어우러진 보리밭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보이는 곳이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보리밭들이 완만한 언덕을 이루며 펼쳐지는 사이로, 황톳길이 구불거리며 뻗어내려온 풍경은 농촌 출신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 구석 깊이 새기고 있을 법한 고향 마을의 모습이다. 청산도 도청리 선착장에서 1㎞ 거리의 당리마을에 이 고향 풍경이 자리잡고 있다. 샛노란 유채꽃밭과 선명한 보리밭과 돌담길, 그리고 짙푸른 남해바다가 빚어내는 그림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영화 <서편제>의 ‘유봉’ 일행이 ‘진도아리랑’을 뽑아올리며 돌담길을 따라 넘어가는 장면을 찍은 곳이다.

이밖에 널찍한 보리밭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전남 영암 월출산 자락의 들판, 구례와 경남 하동의 섬진강 주변 들판, 전북 김제·만경평야 일대, 제주도 동쪽 성산 앞바다의 우도를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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