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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홍은택의서울자전거여행] ‘인도 더부살이’ 위법이로구나

등록 2006-06-22 18:48수정 2006-07-06 20:00

탄천변에 있는 이 자동차 극장에서는 두 개의 스크린에서 영화 2편이 동시 상영된다. 야외의 스크린은 서울의 밤하늘을 영화관의 지붕으로 둔갑시킨다.
탄천변에 있는 이 자동차 극장에서는 두 개의 스크린에서 영화 2편이 동시 상영된다. 야외의 스크린은 서울의 밤하늘을 영화관의 지붕으로 둔갑시킨다.
그래도 한국이 미국보다 자전거타기에 좋은 이유
차도를 달릴 때 ‘욕’ 대신 ‘경적’ 울리고
인도를 갈 땐 ‘꺼져버리란’ 시선 대신 ‘인도 같이 쓰잔’ 표정
심성 고운 보행자가 놀랄까봐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홍은택의 ‘서울 자전거 여행’ ③

자전거로 퇴근한 첫날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반이었다. 호기심 반 걱정 반의 표정으로 맞이하는 아내의 얼굴에서 굳이 여행자의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상기할 필요 없이 긴 여행을 다녀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뿌듯했고 고단했다. 출근할 때는 1시간50분이 걸렸는데 퇴근할 때는 더 걸렸다. 2시간 반. 하루 출퇴근에 4시간20분을 쓴 것이다.

사실 미국 여행할 때 하루 평균 7, 8시간씩 달린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중간 일과시간 12시간 가까이 주행 안 한 것도 감안하면 체력적으로 문제돼서는 안 되는 소요시간이다. 그런데 밤에 속도가 한참 처진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야간 주행에는 시야가 줄어들어서 아무래도 쭉쭉 페달을 밟아 나가기 어려운 점이 있다. 대모산 자락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이 오르막이라는 지형적 요인도 있다. 무엇보다 아직 사무실에 갇혀서 일하는 게 쉽지 않아 심신이 지친 탓이다. 샤워를 하고 혼절하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시 아침에 자전거를 끌고 현관을 나서면서 이렇게 얼마나 오래 통근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

그래도 밤에 달리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서울 밤의 질감은 겨울에도 차갑지 않다. 불빛의 향연으로 잠들지 않는 도시. 불빛을 자전거로 휘감으며 달릴 때는 서울이 몽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불빛이 다행히 도시의 매연과 미세 먼지까지 노출할 정도로 밝지는 않다. 한강에는 검은 물이 흐른다. 강변도로의 가로등 행렬과 가까운 강변에서부터 무수한 은박지들이 반짝이며 떼밀려 흐르다 강심에서 하나 둘 가라앉는 것처럼 보인다. 대도시에서 이 정도 공간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어둠은 불필요한 디테일들을 과감히 생략하는 시인이다.

서울의 밤, 디테일 생략하는 시인


인도로 달리는 내게는 찻길이 한강의 세찬 지류처럼 보인다. 양쪽으로 교행하는 차들의 강. 강가에 살짝 발을 담갔다가 물살에 휩쓸려 갈 것 같아 바로 발을 빼버린다. 그냥 아침에 온 길을 되짚어 인도로만 갔다는 뜻이다. 마치 바닷가에서 수영을 배울 때와 같다. 발이 땅에 닿는 곳까지만 수영하려 한다. 그러다 물결을 탈 줄 알게 되면 점차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아직은 물결이 익숙지 않다. 발이 땅에 닿는 곳, 인도로만 간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다. 갈월 교차로에서는 후암동쪽으로 가는 길에 아예 횡단보도가 없다. 지하도로 자전거를 들고 가야 한다. 이 구간은 그래서 그냥 차도로 내려서 건너곤 했다.

신호등은 때론 마술을 부린다. 그렇게 많이 오고가는 교통의 물살도, 삼각파도도, 한 순간에 멈춘다. 내가 가는 방향에서는 정지 신호가 직진 신호로 바뀌기 전, 교차하는 쪽에서는 직진 신호가 정지 신호로 이미 바뀐 바로 그 순간이다. 모든 차가 멈춰 일시적으로 도로 광장이 조성된다. 자전거가 그 틈을 타 서둘러 출발하다가는 급물살에 휩쓸려 바위에 부딪히는 카약과 같은 운명이 되고 만다. 이 순간에 가속해서 직진하려는, 또는 좌회전하려는, 교행 자동차가 꼭 한 두대가 있다. 사거리마다 통계를 내본다면 그 결과는 거의 90%의 확률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신호등만 보이지, 자전거는 보이지 않는다.

만약 사냥으로 비유한다면 신호등의 짧은 공백은 덫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급가속하는 차량들은 표범과 같은 맹수고 자전거는 전후 좌우를 살피지 못하는 어리석은 토끼다. 빨리 사거리를 건너고 싶은 생각에 그 진공의 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지고 그래서 급출발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면 바보다. 다름 아닌 나였다. 몇번 서둘러 건너려다 차에 받힐 위기를 모면한 뒤 충동을 억제하는 법을 배웠다.

언젠가 어디가 자전거 타기에 좋은지에 관해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는 미국인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나는 한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도 크게 자신있는 얘기는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니 양국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 운전자들은 경적을 많이 울리는 반면 미국 운전자들은 욕을 한다. 물론 둘 다 전체 인구로 보면 소수겠지만 비율로 놓고 보면 한국이 더 높은 게 사실이다. 성정이 포악해서라기보다는 아직도 민족의 DNA에 새겨져 있는 피란민 정서와 압축성장으로 내면화된 급행문화에 사로잡혀 무조건 빨리 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으로 보면 경적보다는 욕설이 더욱 기분 나쁘다. 미국의 운전자들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거나 차창을 열어 “길에서 꺼져 이 똥구멍아” 같은 욕을 퍼붓는다. 한국은 차 안에서 더 심한 욕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겉으로는 들리는 것은 경적의 기계음일 뿐이다. 그것도 과히 듣기 좋은 것은 아니다. 도시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경적이 자주 울리는 도시는 짜증이 많은 사람과 같다. 차의 경적에 대한 라이더의 대응은 두가지다. 가만히 있거나 고래고래 소리치는 것. 나는 후자에 가깝지만 소리 지르고 나서는 바로 후회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보행자의 태도다. 미국 보행자들 중 일부는 운전자들처럼 전투적이다. 인도에서 꺼지라고 소리친다. 곱지 않은 눈길로 쳐다보는 사람들은 더욱 많다. 차도로 가면 차도에서 꺼지라는 얘기를 듣는데 이를 어쩌지? 초보 라이더들은 어쩔 줄 모른다.

한국의 보행자들은 자전거가 인도로 다니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어서 가시라고 길을 비켜주기까지 한다. 혼잡한 광화문의 인도를 자전거 타고 가도 째려보는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다. 뒤에서 다가가 추월하면 “음, 자전거가 우리보다 빠르니까 먼저 가야겠지” 하는 표정들이다. 너그럽기 이를 데 없는 게 인도에는 자전거뿐 아니라 각종 배달 오토바이들도 다닌다. 보행권에 대한 인식이 약해서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만 “차도가 위험하지? 이리 와. 인도 같이 쓰자”와 같은 따뜻한 마음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건널목 급출발하려다 ‘악~’

서울에서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열등한 존재다. 차도에서 환영받지 못해 보도로 보통 가지만 그것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사진은 동호대교 북단 주변 강변도로 밑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촬영한 것이다.
서울에서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열등한 존재다. 차도에서 환영받지 못해 보도로 보통 가지만 그것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사진은 동호대교 북단 주변 강변도로 밑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촬영한 것이다.
내가 바퀴 20인치 짜리 작은 접이식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인도 주행용으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속도에서 손해를 보지만 좁은 보도의 사람들 틈을 비집고 주행하는데는 유연한 기동력이 더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주는 위협감도 덜하다.

보행자들은 방향타가 고장 난 배와 같다. 똑바로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 왼쪽 또는 오른쪽을 향해 빗금을 그리며 걷는다. 뒤에서 살펴보는 나로서는 진로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혹시 씰룩이는 엉덩이가 어떤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보지만 낌새를 알아차릴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관음증 환자가 아니라는 점 분명히 해둬야겠다. 자전거를 타면 그 동안 눈에 넣지 않은 미세한 부분까지 보게 된다. 아니, 봐야 한다.

보행자들은 어떨 때는 기동성이 뛰어난 전투기처럼 갑자기 방향을 틀곤 한다. 나는 ‘왼쪽으로 추월하면 되겠지’ 하다가 몇번 들이박곤 했다. 보행자들은 “어, 조그만 거네”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툴툴 털고 간다. 이렇게 심성이 고운 보행자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보행자들은 정말 특이해서 심지어는 거꾸로 걷는 사람들도 봤다. 혹시 나처럼 뒤를 치받는 사람들 때문에 뒤를 보고 걷기 시작한 게 아닐까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래서 되도록 보이지 않는 라이더로서 몰래 다니고, 존재를 들키면 항상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며 보행자들을 지나쳤다.

보행자들이 자전거를 인도의 한 식구로 여기는 것과 달리 법은 자전거를 차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인도로 막 가도 되나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놀랍게도 인도에서의 주행이 위법이었다. 법은 라이더들을 차도로 내몰고 있는데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차도와 인도 사이에 있는 턱이 절벽이라도 되는 듯 결사적으로 인도에서 안 떨어지려고 한다.

도로교통법상 차에 해당하는 자전거는 보도와 별도로 차도가 있는 한 차도로 다녀야 한다. 도로교통법은 자전거에 관한 한 “악법도 법이다”며 따르기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많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있어서 기대감을 갖고 읽어보니 자전거 주행 규제법인지 헷갈리기만 했다. 예컨대 다음 조항을 보자.

15조 (자전거의 통행방법등) ①자전거의 운전자는 도로교통에 관한 법령을 준수하여 자동차의 통행에 방해가 되거나 보행자에게 위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노력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조항에서는 왠지 자동차와 보행자가 행복하게 잘 사는 마을에 자전거가 불청객으로 찾아온 듯 여기는 시선이 느껴진다.

2항도 마찬가지다.

자전거의 운전자는 자전거도로를 통행하여야 한다. 다만, 자전거도로가 설치되지 아니한 도로에서는 다른 법령에 통행방법이 따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행자에 주의하면서 도로(차도와 보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차도를 말한다)의 우측가장자리 부분으로 통행하여야 한다.

자전거도로가 한강이북 서울의 도심에는 거의 없는데 어떻게 자전거도로를 통행한담. 이건 마치 ‘따로 잘 모셔’하면서 사실은 따돌리는 것과 같다. 더 기분 나쁘다.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 부분으로 통행하라는 요구는 목숨을 걸고 도로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환장한 사람으로 라이더들을 취급하는 듯하다. 대부분 인도에서도 내려오지 못하는 판인데.

어디까지가 가장자리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한국의 도로 폭은 3m에서 3.. 대부분 3m라고 치면 중간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리고 이 선의 오른쪽 1. 폭 안에서 달려야 한다는 뜻인지. 근데 실제 보면 자동차들은 자전거를 더 바깥으로 밀어부친다. 이 조항의 숨은 뜻은 자동차들이 자전거를 추월하는데 거추장스럽게 느끼지 않는 범위에서 주행하라는 뜻이다. 운전자의 자의적 해석에 남용될 여지가 많다. 운전자들이 “비켜, 임마” 하면 꼼짝 없이 비켜줘야 한다. 더구나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는 배수로 위여서 아스팔트가 끝나고 콘크리트 표면이 우둘투둘하다. 자동차들이 도로의 중앙에서 밀어낸 쓰레기와 잔돌, 병조각, 사금파리들이 쌓이는 곳이기 하다. 참 남루한 자전거 인생이다.

홍은택/<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 편집국장
홍은택/<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 편집국장
찻길로도 인도로도 못가는 ‘왕따’

이런 대접을 받고 차도를 달릴 것인가. 아니면 더부살이로 인도에 빌붙어서 살 것인가.

인도로 타고 다니는 동안 내내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렇게 한달쯤 됐을 때 결심했다. 사실은 4시간 안팎이 소요되는 통근시간 때문에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기도 했다. 법을 지키는 모범적인 시민으로서 차도로 가자. 배수로가 아닌 차도로 당당히 가자. 이제 보이는 라이더로 전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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