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봉 정상에 서면 복주머니처럼 펼쳐진 고성항을 비롯한 동해의 푸른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작가 이정수씨 제공
온정리 북동쪽 773m 봉우리 기암괴석 반기는 소나무길 올라
큰 입 벌린 자연돌문 지나니 외금강·고성 앞바다가 모두 내것
큰 입 벌린 자연돌문 지나니 외금강·고성 앞바다가 모두 내것
내달 첫선 금강산 수정봉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조물주가 부리는 조화의 끝을 가늠하지 못하게 만든다.
동서고금의 시인과 묵객들이 붓과 필이 닳도록 금강산을 예찬했지만 아무도 그 아름다움의 끝에는 이르지 못했으리라.
오죽했으면 당나라의 대문장가 소동파는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 한번만이라도 금강산을 보았으면…”이라고 했겠는가. 육당 최남선은 “금강산을 읊은 시를 다 한자리에 모을 수 있다면 도서관을 하나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옥류관에서 만난 북한 안내원 석경심씨는 “북한에서도 민족의 명산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으뜸으로 친다. 사시사철 어느 곳에서 보아도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자랑했다.
금강산을 오르는 길은 수없이 많지만 현재 북한 쪽에서 개방한 곳은 금강산 외금강의 구룡연과 만물상, 세존봉, 삼일포, 해금강 등 5곳뿐이다. 하지만 이달부터는 동해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수정봉이 개방될 예정이어서 금강산 관광의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온정리의 북동쪽에 솟은 높이 773m의 봉우리인 수정봉은 특이한 절경을 갖춘 곳으로 햇살에 비친 모습이 수정처럼 빛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수정이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수정봉은 금강산 주봉인 비로봉과 동해 바다를 끼고 있는 고성항(장전항)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전망이 으뜸인 곳으로 작은 세존봉이라고 일컬어진다. 만물상 가는 길목 부근에서 시작되는 수정봉 길은 산세가 험한 편은 아니지만 다소 경사가 진데다 암벽에 걸쳐진 철제 사다리를 오르내리락해야 한다. 그러나 왕복 3~4시간 코스로 짧은데다 큰 위험 구간이 없으며, 자라바위, 비둘기바위 등 기묘한 바위들을 보면서 봉우리에 오르는 재미가 알차다.
수정봉 등산길은 온정리에서 만물상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서 시작되었다. 온정각 휴게소에서 버스를 타고 만물상 가는 길로 가다 초입에 북한 주민들이 이용하는 온천장이 나오고 조금 더 지나자 오른쪽에 등산로가 나타난다. 미끈한 미인 소나무 사잇길로 들어서자 오르막길이 이어지면서 수정같이 맑은 와우폭포수가 춤추듯 휘날리고, 금강수정 표식비, 자라바위, 누운사람 바위얼굴, 비둘기바위 등 기암괴석이 소나무 숲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계곡물은 너무 맑아 갈증이 나면 그대로 마시고 병에 담을 수 있다. 특히 날개를 쫙 펼친 모양의 ‘비둘기바위’는 사람 두셋을 등에 업고 금방이라도 ‘푸드덕’ 날아갈 것처럼 보인다. 큰비둘기 곁에는 작은 새끼 비둘기의 모습이 앙증맞다.
지난 1998년 11월18일 금강산으로 가는 첫 배를 탔던 이근배 시인은 “누가 금강산을 돌이요 물이라 했더냐/ 저 돌이 어찌 돌이겠으며/ 물이 어찌 물이겠으며/ 나무가 어찌 나무이겠느냐/ 우주를 빚은 조물주가/ 천만년 바쳐 이룩해낸/ 마지막 혼신의 불꽃”(‘마침내 금강산이여 못다 부른 노래여’)이라며 벅찬 감동을 털어놓았다.
가도 가도 첩첩산중. 붉고 하얀 철쭉꽃이 만발할 뿐, 인적이 드문 고갯길에는 흰구름을 머리에 인 암벽 절벽만이 길손을 반긴다. 경사 80도가 넘는 철사다리를 지나자 거대한 돌문인 금강산 제1문 금강수정문이 나타난다. 금강산에서 가장 큰 자연 돌문으로 그 생김새가 마치 사람이 일부러 세운 것처럼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금강산의 오묘함을 만난다. 수정문을 통과해 10여분 동안 바위 사이사이를 헤집자 동해바다와 백두대간이 펼쳐지면서 정상이 나타난다.
넓은 바위로 이뤄진 전망대에 오르니 서북쪽으로 집선봉, 채하봉, 중관음봉, 상관음봉의 연봉 등 외금강의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고성항의 푸른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성항이 활을 잔뜩 당긴 형상 때문에 장전항이라는 별칭을 지닌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이곳에서 보는 동해 일출이 비로봉 일출 못지않다고 한다.
금강산/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꿈에 그리던 내금강 첫 촬영 감격” 금강산 전문 사진작가 이정수씨
금강산 온정각 앞에서 최근 사진집 〈아름다운 금강산〉을 낸 사진작가 이정수(61)씨를 만났다. 그는 8년 전인 1998년 11월19일 금강호를 타고 처음 금강산을 밟은 뒤로 70여 차례나 금강산을 오르내린 ‘금강산 전문 사진작가’이다. 그런 그에게 북한 사람들이 ‘금강산인’이라는 호를 붙여주었다.
“저는 금강산이 제 스튜디오와 마찬가지예요. 외금강은 8년간 찍었지만 내금강을 못 가서 늘 아쉬웠는데 꿈에 그렸던 절경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지난 27일 최근 남북한 답사단과 함께 이르면 올가을께부터 개방될 예정인 내금강 코스를 밟은 그는 “문헌으로만 읽고 들었던 표훈사, 보덕암, 장안사터, 마하연 등 문화유산과 내금강에서만 볼 수 있다는 금강국수나무를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 촬영했다”며 감격했다. 그는 “외금강은 산악미가 빼어나서 남성적인 멋이 풍부한 데 견주어 내금강은 계곡미가 아름다워 여성적인 미가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미술품 판매상이었던 그는 70년대 사진작가 고 문선호씨로부터 사진을 배운 이후 설악산과 오대산, 한라산 등 한국의 산과 자연을 주제로 사진을 찍어오다 금강산에 빠졌다. 그 뒤 미술품을 팔아 모은 목돈은 고감도의 슬라이드 필름과 인화작업 비용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고 있다.
“금강산은 산세가 뛰어나고 계곡미가 아름답습니다. 중국의 황산과 장가개를 비롯해 외국의 많은 산을 가보았지만 가져간 필름의 60~70%밖에 쓰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금강산은 120㎜ 필름 50롤을 다 쓰고도 필름이 없어서 셔터를 못 눌러 안타까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가 워낙 금강산을 자주 방문하자 초기에는 북한 안내원들로부터 “한 번 찍으면 그만이지 왜 자꾸자꾸 찍느냐? 혹시 군사시설을 찍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로부터 ‘선생님’이라는 존칭도 받으며, 험한 세존봉을 오를 때는 북쪽 안내원들이 촬영 장비가 든 배낭을 대신 메주기도 한다.
그는 지난 2003년 한겨레신문사와 현대아산 공동주최로 ‘금강산의 만남 그리고 희망’을 비롯해 10여 차례 금강산 사진전을 벌였다. 지난해 11월에는 그동안 금강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찍은 사진으로 고화질디브이디(DVD) 작품집 〈금강산의 사계〉를 발표했다. 그는 2008년 금강산 개방 10돌과 한겨레신문 창간 20돌을 맞아 올해 본격적으로 담은 내금강 사진을 보태서 대규모 ‘금강산 사계’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북한 사람들이 ‘선생님 오래 오래 사시라’고, ‘통일이 되면 금강산에 사시라’고 하더군요. 체력이 닿는 한 금강산의 모든 것을 필름에 담고 싶어요. 내금강도 그렇지만 관동팔경의 일경인 해금강 총석정과 입석을 찍지 못해서 아쉬워요.”
정상영 기자
거대한 바위가 아치 모양으로 이뤄진 금강 수정문.
고성항의 해넘이. 건너편 산이 수정봉이다.
“꿈에 그리던 내금강 첫 촬영 감격” 금강산 전문 사진작가 이정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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