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선 시인
[산따라사람따라] 거문도 불탄봉·보로봉
학이 노니는 동네(放鶴洞)라서 그런지 필자가 사는 집 근처에는 유난히 시인이며 화가, 논객들이 여럿 살고 있다. 자주 만나는 시인 중 한 분이 바로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시인 이생진 선생님이다.
십여년쯤 전 완주 송광사 답사를 함께 한 인연으로 이 선생님의 산문집 출간에 필요한 슬라이드 필름이며 촬영에 관해서 이것저것 조언을 드렸더니 필자에게 직접 찍은 거문도 등대 사진을 한 장 선물했다. 자칭 ‘걸어다니는 물고기’라 할 만큼 섬과 바다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여행 체험을 바탕으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 시인으로부터 받은 그 사진 한 장은 산밖에 모르던 필자의 눈을 새롭게 뜨게 해 준 사건이기도 했다.
남도행, 이 땅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남쪽 끝까지 가면 거기 항구가 하나 있다. 녹동이라 해도 좋고, 완도, 여수, 목포 어디든 배를 탈 수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바로 나그네가 발품을 팔아 갈 수 있는 끝자락이다. 그러나 진짜 여행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배표 한 장 거머쥐고서 1500여개의 섬이 올망졸망 떠 있는 다도해로 떠난다. 포구에서 포구로 떠돌다 보면 봄도 어느덧 다 가고 마니 그 중 하나 마음 둘 곳 찾을 수 있음은 구원에 다름 아니다.
표류하듯 나그네의 발길이 닿은 곳은 거문도. 한말의 유학자 귤은 김류(1814~1887)의 혼이 깃들어 있는 섬이다. 테마산행의 한 형태로서 섬 산행이 인기를 모으면서 거문도의 불탄봉과 보로봉은 동백꽃 산행과 더불어 일약 ‘산꾼’들의 신천지로 떠올랐다. 여름 휴가철 한때만 관광객이 찾던 거문도에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도 다 이러한 ‘섬 산행’ 덕분이다.
‘불이 자주 난다’고 하여 불탄봉이지만 원래 이름은 덕흥산(195m). 거문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풍랑 때문에 백도 유람을 못하고 섬에 갇혀 지내자 궁여지책으로 개발해낸 것이 바로 불탄봉-보로봉-물넘어-수월산-관백정까지의 등산 코스다. 거문도 등대 바로 옆 벼랑에 지은 관백정(觀白亭)은 맑은 날 백도가 보인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직접 가지는 못하더라도 28킬로미터 떨어진 백도를 직접 볼 수는 있으니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으라는 곰살궂은 배려이기도 하다.
“거문도에 가면 처음엔 자연에 취하고 다음엔 인물에 감동하고 나중엔 역사에 눈을 돌린다. 거문도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을 아름답게 키우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는 이생진 시인의 말은 거문도를 찾으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귀담아들을 만하다.
거문도는 1885년 4월 영국 해군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저지하려고 군함 6척과 상선 2척으로 점령하고 영국 국기가 꽂혔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해부터 1887년 2월까지 2년여 주둔 기간에 사망한 수병들의 묘지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지난해 여수시는 영국 대사관 쪽과 협의하여 영국군 묘지를 공원화한다는 사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영국이 묘지에 대해 갖고 있는 임차권 해지가 필수 조건. 역사민속자료관까지 세우고, 한-영 두 나라 간의 관계 증진에 이바지하겠다는 여수시 쪽의 뜻이 이루어져 한 세기가 넘는 역사의 질곡이 풀어지기를 거문도 주민들과 함께 간절히 바란다.
김우선/시인, 전 〈사람과 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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