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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직장 잃은 ‘사오정’ 구원의 산

등록 2006-04-26 22:13수정 2006-04-27 15:42

김우선 시인
김우선 시인
[산따라사람따라] 관악산
국내선 여객기를 타고 서울 상공에 이르면 조그마한 유리창을 통해서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산이 바로 이 관악산(628m)이다. 하얀 기상레이더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비행기의 고도는 한껏 낮아져 있고 이리저리 나 있는 등산로도 얼핏 보이는 듯하다.

관악산은 서울대학교가 있는 신림동에서 연주암을 거쳐 과천으로 넘어가는 길이 가장 일반적인 등산로로 꼽힌다. 또한 사당역에서 주택가를 거쳐 바로 관악산으로 오르는 길 또한 인기가 높다. 관악산은 예부터 개성 송악산, 가평 화악산, 파주 감악산, 포천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오악’의 하나로서 당당히 명산의 반열에 올랐다. 여기에 더해서 1968년에는 도시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2 세계 산의 해’와 ‘산의 날’(10월18일)을 기념하여 산림청이 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등산 관련 정보를 가장 많이 수록하고 있는 ‘한국의 산하’(koreasanha.net)에서도 관악산은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에 이어서 검색 순위 10위에 올랐다.

빨치산 실록인 〈남부군〉의 작가 이태(1922~97)씨는 봉천동에 살면서 관악산을 자주 오르내렸다. 필자와 함께 관악산 산행을 한 것은 작고하기 불과 몇 해 전의 일이다. 본명 이우태. 〈서울신문〉 기자, 〈합동통신〉 기자, 평양의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였던 그가 이현상의 남부군 전사 편찬 담당자로서 남긴 기록이 1988년 책으로 출간되었고, 90년에는 안성기·최진실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어 국민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태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재야시절 그에게 등산을 권했으며, 민주산악회를 조직하고 이끌어나간 핵심 요원으로서 와이에스(YS) 대통령 만들기에서는 숨은 공로자였다. 그러나 정작 와이에스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각 종 ‘팽’. ‘군화 다음에 등산화’라는 말을 들었던 민주산악회 역시 해산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태씨 역시 ‘팽’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태씨는 와이에스 시절 우스갯소리로 ‘3대 바보’가 있는데 대통령 되고 나서 전화 통화 못 해 본 바보, 악수 못 해 본 바보, 그리고 청와대 초청받아서 칼국수 대접 못 받은 바보가 바로 자신이라면서 자조적인 웃음을 보였다.

산행이 끝난 후 이태씨의 집에서 차를 마시고 〈남부군〉 〈천왕봉〉과 같은 필자 증정본까지 받은 것까지는 참 좋았다. 그러나 봉천동 고개 어느 공중전화 부스에 놓고서 그만 깜빡하는 바람에 서명이 들어있는 귀중한 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태씨와의 관악산 인연은 그가 2년 후인 97년에 갑자기 작고하면서 마지막 산행이 되어버렸다.

필자가 다시 관악산을 찾은 것은 아이엠에프 한파로 사람들이 잔뜩 움츠러들었던 1998년. 멀쩡한 신사복 차림의 샐러리맨들이 산으로 출근하는 현장을 취재하는 길이었다. 등산로 초입의 가게에서는 아예 그런 이들에게 돈 받고 빌려주는 운동화나 등산화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다. 컵라면에 소주로 점심을 때우는 30대 실업자부터 무료로 점심 제공하는 연주암까지 부지런히 다리품 파는 사오십대 연령층의 가장에 이르기까지 관악산은 그 당시 실의에 빠진 이 땅의 ‘사오정’들에게 ‘구원’이나 다름이 없었다.

김우선/시인, 전 〈사람과 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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