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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빛으로 남은 비운의 도전기록들

등록 2006-04-19 22:34

김우선 시인
김우선 시인
[산따라사람따라] 한라산
4월 한라산은 유채꽃과 함께 머리에 흰눈을 덮어쓰고 있는 풍경이 마냥 이국적이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1100고지를 시작으로 철쭉이 활짝 피어오르는 5월, 산악인들의 열정만큼이나 뜨거운 빛으로 한라산을 온통 물들이며 봄의 절정을 노래하리라.

지난해 5월29일 1100고지 휴게소 부근에서는 제주 출신 산악인 고상돈씨(1948-1979)의 동상이 건립되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1977년 9월15일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꼭대기에 올랐던 ‘정상의 사나이’ 고상돈. 그러나 2년 후 5월29일 그는 북미 대륙 최고봉 매킨리(6194m) 등정 뒤 하산 도중 불과 31살의 젊은 나이에 이일교 대원과 함께 추락,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1100고지에는 고상돈 묘역이 조성되어 있으며, 아울러 에베레스트와 매킨리, 두 개의 한국 초등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정상의 사나이’를 추모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한라산과 관련된 인물을 논하자면 꽤 여럿 있겠지만 누구보다도 제주와 한라산을 사랑하는 안흥찬 화백이나 ‘오름나그네’ 고 김종철씨(1927-1995)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안 화백과 필자의 인연은 몇해 전 제주 시내에 있는 그의 조그만 산악박물관 겸 화실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자리를 근처 뒷골목의 허름한 단골 선술집으로 옮겨서도 우리의 화제는 시종일관 한라산이고, 술도 한라산 소주였다. 얼마나 한라산을 사랑했으면 ‘꿈에 본 한라산’이라는 기가 막히도록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냈을까. 그러나 안 화백과 같은 제주 사람들이 기억하는 겨울 한라산은 냉혹하기 그지없으며, 몇개의 비극적인 기록이 늘 따라다닌다.

1961년 1월14일 서울대 법대생 11명이 한라산에 올랐다가 조난, 그 중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기가 만주 같다…”며 친구들의 품에서 죽어간 그의 이야기를 법대 선배이면서 서울대에서 그들의 독일어 수업을 맡았던 전혜린씨는 그해 1월17일자 일기에 “처음 등산에 안내도 없이 올라간 무모는 비난되고 있으나 악의 없는 도전”이었다며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관음사 계곡을 거쳐 백록담에 오르는 길은 성판악 길과 함께 가장 긴 코스인데 특히 관음사 코스에서는 한라산 등반사상 최초의 조난 사고가 발생했다. 1936년 1월3일 동계 한라산 적설기 등반 초등 기록을 남긴 경성제대 산악부원 가운데 마에가와 도시하루가 하산 도중 실종된 것. 결국 그의 시신은 넉 달이나 지난 그해 5월, 눈이 녹은 다음 용진각 동쪽 능선에서 발견되었다. 해방 후인 1946년에는 한국산악회의 동계 한라산 등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48년 1월16일 전택 대장이 폭설로 조난, 한국산악계 최초의 조난사로 기록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8살이었다.

이 세 건의 조난 사고는 1961년 5월14일 제주에 한국 최초의 민간산악구조대인 ‘적십자산악안전대’가 생기게 된 배경을 이룬다. 초대 대장인 ‘오름나그네’ 김종철씨를 비롯해 안흥찬, 부종휴, 고영일, 김규영, 김현우, 현임종, 강태석, 김형희씨 등 8명의 대원으로 시작한 이 구조대는 현재도 한라산에서 활동하며, 조난 사고 예방과 구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제주신문 편집국장 등을 역임한 김종철씨는 제주도의 기생 화산인 오름 330곳을 답사한 체험담을 세 권의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오름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데 기본서가 되고 있다.

김우선/시인, 전 <사람과 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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