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중부 다낭 인근 미손에 있는 고대 참파왕국의 성소 유적들. 14세기 이후 정글에 뒤덮혀 잊혀졌다가 19세기 말 프랑스인이 우연히 발견해 세계의 관심을 끈 이 유적은 구운 벽돌로 정교하게 쌓아올린 힌두 양식의 사원 건축물이다. 오랜 풍화와 전쟁의 참화로 극히 일부만 살아남았다.(왼쪽) 참 조각박물관 전시물. 가늘고 긴 눈, 두터운 입술, 요염한 자태를 특성으로 지닌 참파 조각품들은 어딘지 모르게 투박하면서도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긴다.(위) 사암을 쪼아 만든 괴수의 형상. 참파왕국 유적에서 나온 조각품을 비롯한 유물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다낭 시내 참 조각박물관 전시물. 이 박물관은 참파문화 발굴에 중요한 역할을 한 프랑스 극동학원 연구자가 1915년에 세웠다. 프랑스는 그러나 유물 걸작품들의 일부를 자국으로 가져가 버렸다.(아래)
참파왕국의 힌두교 성소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전탑에
작은 우주 오롯이 담아 미군 폭격으로 20여동만 남아
작은 우주 오롯이 담아 미군 폭격으로 20여동만 남아
베트남 미손 유적
베트남의 미손 유적은 아주 특이한 존재다. 불교와 유교 영향이 강한 베트남지역에서 이색적으로 시바를 주신으로 섬긴 참족의 힌두교 천년 왕국 성소다.
베트남 중부 중심도시 다낭을 중심으로 북쪽의 후에는 93년, 남서, 남동쪽 인근의 미손, 호이안은 각각 99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등재 대상은 모두 단일 건축물이 아니라 그 지역 일대의 복합건축물들이다. 후에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 응웬조(1802-1945)의 수도였던 곳으로 그곳 왕궁과 왕릉 건축물들이, 호이안쪽은 주로 16~17세기에 만들어진 전통적인 중계무역도시 거리 전체가 지정됐다.
요새 같은 2㎢ 넓이의 산속 분지속에 건설됐던 미손 유적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처럼 수백년간 정글속에 파묻혀 역사무대에서 사라졌다가 유럽인에 의해 19세기에 우연히 발견됐다. 불에 구운 붉은 벽돌로 지은 거대한 전탑들이 중심을 이룬 미손 유적들은 침략자였던 프랑스와 미국에 의해 근대 이후에도 무참히 훼손당했으나, 작은 규모의 앙코르와트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신비로운 유적이다.
유적 구조물들은 건축기술상으로도 뛰어나, 잇거나 쌓아올린 벽돌과 벽돌 사이에는 접착제를 사용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틈새가 없는데도 수백년 이상을 지탱했다. 그 비밀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 발견된 이후 부분 복구 과정에서 사용한, 몰타르로 이어붙인 현대의 붉은 벽돌들에는 물기가 스며들고 이끼가 잔뜩 끼었으나 예전 벽돌들은 말짱했다.
참(Cham)족 문화는 2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 베트남 중부 해안지대를 중심으로 존속했고 9세기 이후에는 해상교통로 요지로서 중계무역 거점으로 번성했다. 미손은 참족이 참파왕국을 세운 4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처음엔 목재로 지어졌으나 6세기에 화재로 불탄 뒤 재건되면서 대대로 왕국의 신성한 장소가 됐다. 참파왕국 유적들은 미손 외에 다낭 근교, 나짱, 퀴논 등지에도 남아 있으나 1천년간 성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왕국의 영고성쇠와 미술, 건축, 종교의 역사 변화를 오롯이 담아 후대에 남긴 미손 유적이 특별하다. 여러차례 전쟁 등으로 파괴됐으나 그때마다 복구됐다.
미손 성소는 14세기 이후 정글에 덮여 역사무대에서 사라졌다가 1898년 식민종주국 프랑스 사람이 우연히 발견해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프랑스는 미손을 역사무대에 되살려냈으나, 주요 유물들을 뜯어 자국으로 가져갔으며, 1969년과 72년 미군의 폭격으로 미손은 더욱 참혹하게 망가졌다. 미국은 그곳이 고대유적지임을 알면서도 ‘호치민 루트’상의 거점이라는 전략적 이유 때문에 폭격했다. 그리하여 발견 당시 약 70동의 건물이 있었고 일부 유구는 복구까지 됐으나 미군 폭격 뒤 많은 유물들이 완전히 파손되고 남은 건물도 20개 정도밖에 없다.
미군은 미손뿐만 아니라 후에 왕궁도 비슷한 이유로 무차별 폭격했으며, 유명한 대리석산지인 오행산의 동굴유적 위에도 폭탄구멍을 뚫어놨다. 전쟁 전까지 멀쩡했던 후에 왕궁은 미군 폭격으로 대부분 파괴돼 남은 건물은 원래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왕궁 청동향로들에는 미군 기총소사 자국들이 움푹움푹 패여 선연하다.
미손 사원 기본구조는 주사원(Kalan)을 중심에 앉히고 작은 탑들을 그 주변에 배치하는 형태다. 주사원 정면에는 정문과 춤과 예물을 바치는 홀이 있고 음식물을 만드는 장소도 마련돼 있다. 건물 주위는 붉은 벽돌로 벽을 쌓아 독립적인 작은 우주를 구성했다. 이런 구조물 흔적이 미손에는 7개 정도 남아 있다. 미손 지역 유물 잔해들은 다낭시내에 프랑스인이 세운 박물관에도 일부 남아 전시되고 있다. 대리석과 사암을 깎아만든 힌두양식 조각물들은 소박하고 때론 정교하면서도 힘차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미손 사원 기본구조는 주사원(Kalan)을 중심에 앉히고 작은 탑들을 그 주변에 배치하는 형태다. 주사원 정면에는 정문과 춤과 예물을 바치는 홀이 있고 음식물을 만드는 장소도 마련돼 있다. 건물 주위는 붉은 벽돌로 벽을 쌓아 독립적인 작은 우주를 구성했다. 이런 구조물 흔적이 미손에는 7개 정도 남아 있다. 미손 지역 유물 잔해들은 다낭시내에 프랑스인이 세운 박물관에도 일부 남아 전시되고 있다. 대리석과 사암을 깎아만든 힌두양식 조각물들은 소박하고 때론 정교하면서도 힘차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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