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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황제등산’ 도 있다

등록 2006-03-22 23:13

김우선 시인
김우선 시인
[산따라사람따라] 북한산 구기동-대남문길
등산 인구 1천만 시대를 맞이해 정상 등정이라는 행위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념의 등산문화가 절실할 때입니다. 산이 지닌 고유의 역사성과 지리적·문화적 특성을 살리면서 유익한 등산 정보를 제공하고 사람과 산과의 소통을 꾀하는 산 칼럼을 새로 연재합니다. 필자 김우선씨는 시집 <대청에 부는 바람>을 낸 시인으로 월간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오투월드(www.o2o2.co.kr) 이사로 있습니다.

등산 인구 천만 시대를 맞이한 요즘 전국의 산은 ‘웰빙바람’을 타고 연중 붐비는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북한산국립공원은 전국의 국립공원 가운데 탐방객이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힌다.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수도권의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으로 인기가 높은 북한산. 산 전체에 걸쳐서 거미줄처럼 난 등산로는 일년 내내 주말마다 누비고 다녀도 새로운 길을 발견할 정도로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구기동에서 대남문에 이르는 길은 일명 ‘브이아이피(VIP) 코스’로 꼽힌다. 5공 시절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나 그의 친구로서 후임 대통령이 된 노태우씨가 퇴임 후 측근들과 함께 각각 수요일, 목요일에 산행을 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전직 대통령 뿐 아니라 서울특별시장 시절 조순씨 역시 이쪽 대남문 길을 즐겨 찾았고, 산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그를 ‘산신령’이라 불렀다.

대남문에 이르기까지 문수봉이며 보현봉을 감상하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한 것이 이 길의 매력인데 일찍이 그러한 산행의 즐거움에 빠진 대통령이 한 사람 더 있다. 바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다. 1959년 ‘대한늬우스’에 영상 기록으로도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시 83살의 이 박사는 추석 무렵 영부인 프란체스카와 함께 문수사를 찾았고, 스님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그 빛바랜 흑백 사진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구식 액자에 담겨 문수사 종무소 마루 기둥 위에 걸려 있었다.

구기동에서 대남문까지 대부분의 탐방객들은 계곡길을 따르지만 부러 어려운 암릉길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시집 <야간산행>이며 <지리산>을 낸 이성부 시인이 바로 그러한 ‘도사급’에 속한다. 그것도 저녁 늦은 시간 출발해서 도달하는 보현봉 꼭대기, 현란한 서울 도심의 야경에서 시상을 떠올렸던 것일까. 그의 시집 <야간산행>에 북한산 인수봉이며 만경대 등 암벽등반을 통해서 얻은 시들이 늘 새로운 감동을 준다.

구기동에서 출발하여 자연보호헌장비를 지나 대남문까지는 2.4킬로미터. 쉬엄쉬엄 걸어서 두 시간쯤 걸리는 거리다. 지난 98년부터 계곡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는 구기계곡을 따라서 걸음을 옮기다보면 맑은 물과 씻은 듯 말쑥한 화강암 절벽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수려한 풍광에 누구라도 감탄을 금치 못한다. 게다가 계곡물은 1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가 노닐 정도로 청정함을 자랑하니 전현직 대통령과 기업체 총수며 고관대작에 미관말직, 평범한 시민에 이르기까지 한 해 평균 10만명 이상 다녀간다는 명성이 거짓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질수록 자연은 그만큼 황폐해지기 마련. 구기동에서 대남문, 보현봉에 이르기까지 새들 지저귀는 소리 듣기가 어려운 것이 그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한때 보현봉 일대에는 하늘과 좀더 가까운 곳에서 기도하려는 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한밤중 울려대는 ‘기도객’들의 울부짖음은 산 아래 사는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다. 오죽하면 드라마 작가 김수현씨가 집필실을 다른 곳으로 옮길 정도였을까.


대남문에서 땀을 식힌 후 능선길을 따라서 청수동암문까지는 15분 거리, 여기서 다시 사모바위까지는 45분 걸린다. 사모바위는 머리에 쓰는 사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구기동길이 ‘대통령들의 등산로’인데 반해서 이 바위는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청와대 앞까지 침입했던 북한 124군부대 ‘김신조’ 일당이 하룻밤 묵었던 곳이라서 대조를 이룬다. 5공 말기까지 ‘수경사’ 병력 1개 소대가 지키고 있어 등산인들의 접근을 막았다는 사실도 그냥 잊혀진 역사로 남아있는 현장이다.

김우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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