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짠내 수집일지
2007년 노무현-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방북단 전화번호부·연회 차림표도 역사
김정일 연회서 술잔 가져가라 했지만…
2007년 노무현-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방북단 전화번호부·연회 차림표도 역사
김정일 연회서 술잔 가져가라 했지만…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취재로 얻은 수집품. 북한 방문증명서, 공연 초대장, 연회 차림표 등 관련 자료를 보면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북한이 제작한 특별했던 전화번호부 기자라는 직업 특성 덕분에 가능했던 몇몇 생활 속 수집품은 소장 가치뿐 아니라 나름의 역사성도 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간한 ‘새 정부 국정과제’, 특히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 시절 번호 부여까지 해 극소수 관계자에게 배포한 ‘국정과제’는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 물론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건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관련 자료다.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은 당시 수많은 논란을 불렀다. 대통령이 처음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로로 평양을 오갔지만 임기 말에 갑작스레 성사된데다, 북한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 관람과 보수 야당의 이른바 ‘엔엘엘 포기 시비’ 등으로 곤욕을 겪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로 정상회담을 취재할 기회를 얻었을 당시, 나는 뭘 수집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아내의 구박에도 사소한 물건조차 잘 버리지 못하고 일단 모아두는 습성이 발현됐을 뿐이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 보면 그것이 나름 역사성 있는 수집 행위가 된 셈이다. 당시 통일부가 발행한 북한 방문증명서는 일종의 여권인데, 방문 목적에 ‘남북정상회담’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후 지속적 방문을 예상한 듯 단수가 아닌 ‘수시’로 발행했고, 방문 기간 신고·연장 공간도 20칸이나 있었다. 물론 아쉽게 한번의 방문으로 끝났다. 너무 급작스레 추진된 탓에 A4 복사지를 4등분한 크기의 8쪽짜리 복사본 ‘남북정상회담 취재 계획표’는 당시 생생한 평양 일정이 나와 있다. 허름한 일정표지만 밖으로 새 나가선 안 되는 비밀이었고, 한자 ‘秘’(비) 표시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2007년 정상회담 당시 평양에 머무는 동안 북한 당국이 기자들에게 나눠줬던 ‘노동신문’.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체면 차리느라 놓친 희귀템 ‘아른’ 족보 없는 짠내 수집가가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할 때 가장 아쉬운 건, 2007년 10월2일 저녁 7시, 평양 목란관 만찬장에서 차림표 외엔 아무것도 챙겨오지 못한 것이다. 당시 김영남 위원장 명의의 연회 초대장을 보니 나는 9번 테이블에 배정됐고, <노동신문> 주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와 청와대 홍보수석(천호선), 한국신문협회 회장(장대환) 등이 함께 앉았다. 그런데 연회가 끝날 무렵, <노동신문> 주필은 “고저~, 유리잔하고 숟가락은 좀 가져가시라요”라고 말했다. ‘게사니(거위)구이, 배밤채, 대동강 숭어국, 찔광이(산사 열매)차’ 등 13종류의 음식과 후식이 적힌 식단표는 챙겼지만, 숟가락 하나라도 가져가면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찔끔 놀랐다. ‘아니, 내 속마음을 어떻게 읽었나’ 싶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리 공화국 인민들은 김정일 장군님이 베푼 이런 연회에 오면 큰 영광으로 알고 술잔이나 숟가락 하나 정도는 가져가 집안에 가보로 전합네다.” 갈등했다. 그러나 수집 본능을 억눌렀다. 무엇보다 가보로 전한다는 말이 가장 걸렸다. 내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비칠까 우려했다. 짠내 수집에서 체면은 순간이지만, 희귀 아이템은 영원히 남는 건데…. 아무튼, 그땐 그랬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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