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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재소설 - 먼하늘 가까운 바다

한일 공동소설 - 먼하늘가까운바다 <42>

등록 2005-10-13 17:16수정 2005-10-13 17:19

먼하늘가까운바다 <42>
먼하늘가까운바다 <42>
나 혼자서만 그에게 사랑해, 사랑해, 하다가 내 입도 다물어졌던 것이다

공지영

이제 와 그와 헤어지던 무렵을 생각하면, 모든 일들이 한참 후에 생각하면 그렇듯이 알 수 없는 어떤 힘들이 우리의 이별을 독촉하고 있었음을 느낀다.

그와 헤어지기 며칠 전, 준고의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 살던 집주인인 선배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이노가시라 공원 벤치에 앉아 선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잎만 무성한 벚나무 뒤로 흐린 하늘이 보였다. 매우(梅雨)가 시작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매우기가 되면 호수의 청동 빛깔은 더욱 짙어지고 준고가 좋아하는 신록도 그 연한빛을 잃고 거친 초록으로 변해가곤 했다. 우리는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홍이가 지금 몇이지?”

선배는 물었었다.

“스물둘이요.”


나는 대답하면서 왜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가늠해 보았다. 선배는 내가 준고와 동거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약간 굳어졌다. 준고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만났고, 함께 영원히 아침을 맞자고 했지만 나는 아직까지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그에게서 들은 적이 없었다. 그즈음 서로 등을 돌리고 자는 일이 잦아졌고, 늦게 들어와서 아침 일찍 나가는 준고의 얼굴을 며칠씩 보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선배 앞에 앉아 있게 되자, 갑자기 수치심이 몰려왔다. 한국인에게 동거란,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결혼을 결정하기에는 조금 이르지 않니?”

선배는 약간 보수적인 한국여자 특유의 생각을 조심스레 내게 건넸다.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어요….”

선배는 깊이 한숨을 쉬더니, 사랑은 부모님 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야, 하고 말했다. 우린 서로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말을 해 놓고 보니 그것조차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한다고, 겁도 없이 나는 그에게 말했었는데 그는 그 말을 쓰지 않았다. 나 혼자서만 그에게 사랑해, 사랑해, 하다가 내 입도 다물어졌던 것이다. 가끔 준고가 없는 밤에 검은 유리창에 비추어진 내 얼굴을 보면서 나는 묻곤 했었다.

“나는 네게 대체 뭐니?”

선배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내게 전화하셨다. 어제,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대. 위독하시다고 한다. 홍이 널 많이 보고 싶어 하신다고….”

그날 나는 이노가시라 공원을 열 바퀴쯤 뛰었다. 그리고 준고의 집 앞 계단에 앉아 있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카락이 찬 바람이 불 때마다 양 볼로 엉겨 붙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아버지보다 더 따랐었다. 할아버지는 맏손녀인 나를 특별히 어여쁘게 여기셨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세미나가 열리는 경주나 부산, 설악산과 제주로 다녔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한글의 아름다움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 주셨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창조적 글자인 한글을 고안해 낸 세종대왕과 슬픈 눈의 시인 윤동주를 가르쳐 준 것도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말년을 고향 서귀포에서 보내고 계셨다. 아름다운 푸른 바다가 있는 곳. 나는 지금까지 서귀포만큼 아름다운 도시를 본 일이 없다. 그런데 거기서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것이다. 나는 망설이다가 수화기를 들고 록이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제전화비가 너무 비싸 전화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마음에 거짓이 없다면, 작품은 바다를 건너 홍이 손에도 닿을 거라 생각해요

쓰지 히토나리

그 무렵, 나는 오로지 원고지에 매달려 소설을 썼다. 젊은이들의 집단 자살이 끊이지 않는 병든 시대의 슬픔을 짊어지고, 그 원인이나 이유를 찾으려 하지도 않는 어른들의 변함없는 무책임함을 곁눈으로 바라보며 내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으며, 어떤 말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를 작품 속에 녹아내려 했다.

이미 학생이 아니었으나 제대로 된 직업도 없었다. 사회적인 책임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묵묵히 소설을 향해 걸었던 나. 퇴고를 거듭한 작품이 어느 정도의 가치와 의미가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채 중력도 인력도 없는 우주 한가운데에서 나는 소설을 썼다. 또한 그러한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나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돌진할 수밖에 없었다.

홍이와 헤어진 후,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자신을 매어둘 수 있었다. 직업이 없다는 것은 커다란 수치였다. 친구들의 호출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그때까지의 모든 관계도 끊었다. 그리고 오로지 홍이와 내 자신의 이야기를 써 갔다.

그런 내게 아버지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와 같은 길은 가지 마라, 하고 마치 당신에게 타이르듯 중얼거렸을 뿐이다.

“그렇지만 참으로 유감스럽구나. 난 홍이가 아주 맘에 들었었는데. 너 같은 바보 아들론 역시 부족했단 말인가…. 네 어머니가 집을 나간 다음에는 나도 너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지. 그런 나쁜 점도 넌 날 닮았구나.”

한번은 어머니에게 오케스트라의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사람을 찾고 있는데 관심이 있냐는 편지가 왔었다. 권유는 거절했지만, 이상하게도 홍이가 떠난 다음에는 어머니를 미워하는 일도 없어졌다.

카페 안나의 주인이 길에서 날 불러 세웠을 때는 가슴이 몹시도 삐걱거렸다.

“두 사람 결혼하는 거 아니었나? 홍이가 아무 말 없이 본국으로 가 버렸다지만 혹시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되면 또 커피 마시러 오라고 전해 주게. 언제든지 대환영이라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지나쳤다. 홍이와 헤어지고 나서 카페 안나로 발길을 옮기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교토 사가노의 사에키 시즈코 집에는 해마다 몇 번이나 찾아갔다. 시즈코는 마치 부모처럼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때문에 홍이와의 이별이 견디기 힘들어질 때면 나는 교토로 향했다. 아이가 없는 시즈코에게 해마다 몇 차례씩 찾아오는 나는 마치 아들과 같은 존재였다.

“준고, 넌 정말 바보구나. 그렇게 홍이를 잊지 못하면서 어째서 쫓아가지 않는 거니?”

나는 홍이의 한국 주소를 몰랐다. 사에키 시즈코는 홍이 아버지의 회사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가르쳐 줄까?”

그녀는 내게 번호를 가르쳐 주고 싶어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홍이가 떠날 때 붙잡지도 못한 제가 이제 와서 뻔뻔스럽게 전화 같은 걸 할 수는 없어요.”

“그럼 도대체 어떻게 그 마음을 전할 생각이니?”

난 소설을 쓰고 있어요, 하고 말했다. 사에키 시즈코가 웃음을 터뜨렸다.

“만약 그 소설이 한국에서 번역되어 나오고, 또 우연히 그 책이 홍이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날 기억해 줄 거라 믿어요.”

그런 말을 하고도 나는 본명이 아닌 필명으로 소설을 썼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어딘가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늘 끝에 가서 자신을 잃고 만다. 본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두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덧그린 듯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어쩜 그렇게도 태평한지. 그렇지만 준고의 그런 점을 나는 이해할 수 있지. 넌 간단하게 모든 것이 처리되는 게 싫은 거지. 그래서 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소설을 쓰는 거고.”

그러던 중 나는 여름내 수주간 정도지만 사에키 시즈코의 가게에서 일하며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관광철에 잠시 고향에 돌아온 아들 같은 얼굴을 하고 가게 일을 도왔다.

“저기, 홍이가 사는 곳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소설이 일본에서 발매된 직후, 사에키 시즈코가 내게 말했다. 그녀가 내게 전하려는 종이쪽지에는 홍이 아버지의 주소가 적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받지 않았다.

“삼 년 동안 전 오로지 작품에 매달렸어요. 지금 겨우 출판됐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전 이 작품이 계기가 돼서 홍이와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요. 삼 년 동안 전 매일 쉬지 않고 홍이에 대한 생각을 키워왔어요. 그게 이 소설이구요. 그 마음에 거짓이 없다면, 작품은 바다를 건너 홍이 손에도 닿을 거라 생각해요. 거기에 모든 걸 걸어 보고 싶구요.”

시즈코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주소가 적힌 종이쪽지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언제든지 필요하다 싶을 땐 말을 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

어머니 같은 한마디에 나는 눈물을 꾹 눌러 참아야만 했다.

/ 그림 이보름 번역 김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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