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하늘가까운바다 <14>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일이 왜 엄마를 화나게 하는지 그때까지는 알 수 없었던 거였다 공지영 그와 함께였을 무렵에 하늘은 언제나 아주 파란빛이었다. 구름 한 점도 없었다. 흰 베이비파우더를 뿌려 놓은 듯한 벚꽃들이 눈부시게 피어 있는 이노가시라 공원 근처의 골목길을 나는 자전거로 달리고 있었다. 맨발을 벗고 다녀도 좋을 만큼 깨끗한 골목길. 아무리 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골목길에는 아이들이 있고 집 앞에 내어놓은 제라늄 화분들이 있고 건물 옥상에는 빨래들이 마르고 그리고 이상한 적요가 흐르고 있었다. 어떤 날은 누군가가 연습하는 트럼펫 소리가 짙푸른 하늘로 울려 퍼지곤 했다. 아득하고 쓸쓸하고 먼먼 선율. 가끔은 그 음악소리가 들리는 골목길 한편에 자전거를 세우고 나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곤 했다. 그럴 때는 내 입술이 작은 소리로 엄마아, 하기도 했다. 공부 잘 할게. 잘 배워서 돌아갈게, 뭐 이런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결심을 새삼 하기도 했었다. 그런 날 오후에는 나는 내 가방 한편에 있는 열쇠를 꺼내 들고 준고의 집으로 갔다. 준고의 집은 언제나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너희 엄마는… 여기 안 와 보니? 내가 일본에 머무르는 겨우 육 개월 동안 두 번이나 도쿄로 찾아와 김치를 담가 주고 밥을 해 주고 내 방을 청소해 주던 우리 엄마를 생각하며 내가 심드렁하게 물었었다. ―엄마, 없어. 그때 준고의 목소리가 하도 단호해서 나는 빨래를 널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처음 그를 발견했을 때 보았던 그 빙하의 단면 같은 차가움과 날카로움이 그의 얼굴에 어리고 있었다.
―아픈 이야기를 꺼낸 거라면 미, 미안해…. 준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병으로 돌아가셨다고도 상상해 보았다. 슬프게 죽어가는 병든 엄마와 창백한 소년의 이별 장면이 떠올라 어느 날은 그를 그냥 하염없이 안아만 주고도 싶었다. 그가 어느 날 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 나오미 아오키 씨 앞으로 내 손을 끌고 갈 때까지는 그랬다. 나오미 아오키 씨는 아름다운 일본 여성이었다. 화려했고 눈이 부셨다. 검은 벨벳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얼굴은 티파니 보석가게에 진열된 보석들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던 그 날 밤 준고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그가 곧 울음이라도 터뜨리거나 길거리의 공중전화부스를 부숴버리거나 할 거 같았다. 나는 그 이후로는 그에게 엄마라든가, 비창이라든가에 대해 아무것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는 늘 늦었다. 그의 방은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숨겨진 동굴을 탐험하는 주근깨투성이 소녀라도 된 것처럼 그의 창틀에 끼인 먼지를 닦고 싱크대에 들러붙어 있는 얼룩들을 지웠다. 어떤 날은 그렇게 하다가 문득 창밖을 보았는데 벌써 날이 저물어 있기도 했다. 그의 속옷과 흰 티셔츠를 골라 냄비에 넣고 세제를 조금 풀어 푹푹 삶았다. 그렇게 하면 흰빛은 눈이 부시게 흰빛이 되었다. 왜 그렇게 흰 옷을 입는 거냐고 그는 물었었다. ―그건 말이야. 한국인들에게는 흰빛이라는 것은 신앙과도 같은 거야. 전쟁이 나거나 흉년이 나던 어려운 시절에, 땔감조차 없던 시절에도 한국인들은 옷을 빨고 불을 지핀 후에 흰 옷을 삶아 더욱 흰빛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지켰어. 우리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지. 흰빛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색이래. 준고는 늘 바빴다. 아르바이트를 다섯 개나 한다고 했다. 가만히 보니까 어떤 때는 임시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것 같았다. 그래야 학비를 번다니…. 너희 아버지는 뭐 하셔? 너 혹시 고아 아니니? 나는 물었다. 아버지는 첼리스트야, 가난한…. 그가 말했다. 혹시 가짜 부모님? 내가 묻자 그가 하하, 하고 웃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국 같으면 아버지가 등록금만이라도 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끔은 그렇게 청소를 하고, 엉덩이를 살짝 흔들며 노래하고 있는 내 뒤로 다가와 그가 내 허리를 살며시 안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가 알면 큰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알몸이 된 채로 그의 침대를 빠져나와 달빛 어린 창가에도 서 있었다. 알몸을 보이는 것이 싫어서 대중목욕탕에도 가지 않았던 나였다. 나는, 엄마가 알면 큰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드디어 엄마에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엄마 나 결혼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대학 3학년을 휴학하고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간 참이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엄마의 입이 벌어져 다물리지 않는 게 느껴졌다. 약간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정말이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인사하러 갈게. 아님 엄마가 일본으로 와. 일 분 간의 침묵 후에 엄마는 차분하게 말했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도 묻고 집안이 어떠냐고도 물었다. 부자냐고도 묻고 드디어 마지막에 설마 일본 사람은 아니겠지, 하고 물었다. 나는 엄마의 질문에 모조리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만 해댔다. 부모는 이혼하고 집은 가난하다고 대답했다. 학비도 생활비도 대주지 않으니까 내 맘대로 그렇게 생각해버리기로 했던 것이다. 그 편이 조금 더 로맨틱하게도 느껴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인이라는 대답을 했을 때, 전화기 너머로 록이의 비명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나중에 듣고 보니까 엄마가 내 전화를 받다가 잠깐 아찔해져서 소파에 쓰러지듯 주저앉은 모양이었다. 너 미쳤느냐고 엄마는 물었다. 행복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돌아오라고 엄마가 말했다. 학비건 생활비건 한푼도 없을 거라고.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일이 왜 엄마를 화나게 하는지 그때까지는 알 수 없었던 거였다. 나는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일본에 있는 인척을 시켜 당장 널 귀국시키겠다고 엄마가 말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방을 챙겨 그에게로 갔다. 공원에서 올려다본 그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준고는 책상 앞에서 무언가 쓰고 있었다. 내 가방과 나를 보며 놀라는 준고에게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준고! 자 받아, 나를 몽땅 네게 줄게, 결혼 선물이야.
국적이 다르고 문화와 피가 다른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며 상대도 하지 않았다 쓰지 히토나리 그날, 아직 지구는 둥글다고 믿었다. 지구는 은하계에 떠 있는 작은 행성으로 자전을 하며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의와 사랑의 힘으로 세상은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위대하며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배웠다.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힘만 있으면 어떠한 곤란도 극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적이 다르고 문화와 피가 다른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며 상대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민족이 다를 뿐, 두 사람은 똑같은 인간이고 남자와 여자며, 함께 울고 웃고 노여워하는데 도대체 뭐가 다르냐고 정색을 하며 묻기도 했다. 중요한 건 마음이며, 자라난 환경이나 풍토, 습관의 차이 같은 건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는 거라 단정 짓고 웃어 넘겼다. 우연히 네가 한국 사람이고, 또 우연히 내가 일본 사람인 것뿐이잖아 하고 술기운에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알겠지, 베니. 이건 머리카락이야. 나는 내 머리카락을 잡아 당겨 보이며 홍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홍이의 곱실거리는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만지며, ―같은 까만 머리카락. 하고 말했다. 그러자 홍이는 내 입술에 대고,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 하고 말했다. 나는 벽에 걸린 거울 앞으로 홍이를 데리고 가 팔짱을 꼈다. ―나이스 커플! 하고 큰 소리로 외치자 홍이가 웃었다. ―미국에 가자. 서부 해안 모래밭을 팔짱을 끼고 걷는 거야. 어떤 미국 사람이 우리를 일본인과 한국인 커플이라 알아보겠니. ―윤오, 우린 잘 어울리는 커플이야. 정말 완벽해. 홍이가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홍이의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홍이의 눈동자는 복잡한 우주를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까만 눈동자 속에는 무수한 줄기 모양이 파도치고 있다. 살아있는 신비가 거기에 있다. 나는 홍이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안고 눈동자 속을 응시했다. ―우린 같은 몽고리언이야. 황갈색 피부에 흑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고, 아기였을 땐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었지. 일본 사람도 한국 사람도 다 같은 아시아 몽고로이드야. ―아니, 윤오. 그 전에는 같은 유인원이었어. 그 전에는 양서류였고, 그 전엔 어류.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에는 틀림없이 아메바였을 거야. 우리는 다 같이 바다에서 온 거라구. 또 우연히 우리 선조는 한반도에, 너희 선조는 일본열도에 정착하게 된 것뿐이야. ―아니야, 베니. 일본열도는 원래 한반도에 붙어 있었어. 원래는 하나의 유라시아대륙이었지. ―아니야, 윤오. 아직 이 별에 바다와 땅이 없었을 때. 이 별은 하나의 뜨거운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는걸. ―아니야, 베니. 맞다, 이 지구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태양이었다. 태양에서 떨어져 나와 이 지구란 별이 생긴 거야. 우리는 웃었다. 원래를 거슬러 올라가는 놀이로 우리는 자신들을 둘러싼 국경이나 경계나 식별의 공허함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니, 윤오. ―아니야, 베니. 우리는 바닥을 뒹굴며 웃어댔다. 그리고 카톨릭신자인 홍이는 바닥에 앉은 채 자세를 바로 했다. 좀처럼 웃음을 그치지 못하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다, ―너와 만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 하고 말했다. 신앙이 없는 나는 홍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멘 하고 십자가 긋는 흉내를 냈다. ―윤오! 놀란 내가 미안, 하고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화를 낸 것이 아니었다. 대신, ―십자가를 어떻게 긋든 아무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네 마음속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거야. 하고 나를 깨우쳐 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많았다. 국적의 차이보다도 신앙이 있고 없음으로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홍이는 왜 넌 신앙이 없니, 하고 자주 물었다. ―나뿐만이 아니야. 전쟁 전은 잘 모르겠지만, 신앙이 없는 일본 사람이 많아. 우리 부모님도 신앙이 없으셔. 하지만 모두 설날에는 신사에 참배를 하러 가고, 누군가가 죽으면 가까운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 또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이면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캐럴을 부르거나 선물을 교환하지. 흠…, 하고 홍이는 신기해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는 자주 두 사람의 화제에 올랐다. 음악과 영화, 소설 이야기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와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화제는 끊이지 않았지만, 내가 어디까지 한국을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한국에 가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홍이의 설명만으로 이웃 나라의 윤곽을 마음속에 제대로 그리기는 불가능했다. 두 사람은 앞만 바라보고 있었고 무모한 탓에 밝은 미래만을 이야기했지만, 분명히 모든 인식에서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모든 것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 미묘한 어긋남이 후에 커다란 어긋남이 되어 두 사람의 발밑을 뒤흔들게 된 것이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던 문제가, 그 애매함이, 혹은 눈속임들이 결국엔 눈덩이가 되어 두 사람에게 덮친 것이다. 하지만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우리가 현실의 무서움을 알 턱이 없었다. 그때의 우리는 그저 티 없이 맑게 빛나는 쌍둥이별이었다. / 그림 이보름 번역 김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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