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이화여대 독문과 최성만 교수
최성만 이화여대 독문학과 교수는 최근 두 권의 번역서 <카프카와 현대>, <브레히트와 유물론>(윤미애 공역)을 펴냈다. 그가 90년대 후반에 기획해 2007년부터 도서출판 길에서 내는 ‘발터 베냐민 선집’ 열 번째와 열한 번째 책이다. 선집은 2~3년 안에 네 권을 더해 15권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최 교수는 이미 나온 선집 11권 중 8권(2권은 공역)을 직접 옮겼다. 2009년 한길사에서 나온 베냐민(1892~1940) 초기 주저 <독일 비애극의 원천>과 유대교 학자 게르숌 숄렘의 베냐민 회상록 <한 우정의 역사-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2002)까지 더하면 지금껏 ‘베냐민 저술’ 10권을 번역했다.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1년 6개월 뒤 정년”이라면서 “정년 뒤에는 베냐민의 후기 주저이자 미완성 대작인 <파사주 프로젝트> 번역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바이마르공화국 시대 독일의 유대계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베냐민은 문학이론은 물론 철학, 신학, 심리학, 정치학, 인류학 등 여러 분야에서 폭넓은 저술 활동을 했다. 특히 영화와 사진 등 대중매체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물들은 1960년대 이후 서구 문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소개됐으며, 80년대 들어선 대학에서도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가 죄르지 루카치와 이른바 ‘비판이론’으로 알려진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 학자인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과 함께 다뤄지기 시작했다. 8년 전 황호덕 성균관대 교수는 국문학자가 2008~2011년 가장 많이 인용한 외국 학자가 베냐민이라는 조사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최 교수가 베냐민 전공자들과 함께 독일어 원전 번역을 하는 선집은 학술전문 출판사인 도서출판 길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15쇄를 찍은 선집 2권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매년 1천권가량 나가고 다른 책들도 대부분 3쇄 이상 찍었다고 한다.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인 이승우씨가 한길사에 있을 때 먼저 선집 출간을 제안했죠. 앞으로도 새 주제가 떠오르면 현재 15권으로 기획된 선집 분량이 두세 권 늘어날 수 있어요. 베냐민은 한때 인식의 확장 실험을 위해 의사 입회 아래 마약을 하는 실험도 했어요. 마약에 대해 쓰고 말하기도 했죠. 이 주제로도 한 권 더 낼 수 있어요.”
선집의 ‘상업적 성공’을 예상했냐고 하자 그는 “당연하죠”라고 받았다. “베냐민은 국제적으로 학술대회가 가장 많이 열리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조르조 아감벤이나 슬라보이 지제크, 자크 랑시에르, 테리 이글턴 등 서구를 대표하는 이론가들의 글에는 베냐민 사상의 주요 내용이 녹아 있어요. 베냐민이 현대 이론가들에게 중요한 사유의 모티프(창작 동기)를 제공하고 그들을 연결시켰다는 의미로 ‘베냐민 커넥션’이란 말까지 있죠. 마르크시즘에 형이상학과 신학을 기묘하게 결합한 베냐민의 사유를 가지고 연구한 게 아감벤의 책 <남겨진 시간>입니다. 21세기 초두부터 서구에서 회자한 ‘신학의 귀환’도 베냐민에 대한 국내 독자의 관심을 키웠어요. 그는 유대신학과 유물론적 정치라는 양 날개로 난 사상가였어요.”
그는 선집을 매체이론이나 역사철학, 언어철학, 보들레르, 카프카, 브레히트 등 베냐민의 저술을 주제별로 나눠 구성했다. 같은 저술의 각기 다른 판본들도 함께 옮기고, 상당한 분량의 미발표 수기 노트도 번역했다. 권별로 상당한 분량의 해제를 붙인 것도 보통의 학술번역과 다른 점이다. <카프카와 현대>는 수기 노트의 분량만 100쪽이 넘는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해외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주로 3판을 수용했는데 80년대 후반에 뒤늦게 2판이 발견됐어요. 2판에는 아도르노가 읽고 격찬한 혁명론이라든지 ‘미적 가상(아우라)’ 등 독특한 각주가 많아요. 이 글 관련 노트에도 ‘정신분산 이론’이나 ‘학습 가능성’ 등 원 텍스트 이해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내용이 많아요. 텍스트가 나오게 된 역사를 보여주는 노트들이죠. 독자들도 이런 노트를 같이 봐야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는 20년 이상 힘을 쏟아온 선집 번역의 학술적 의미를 이렇게 자평했다. “국내 베냐민 번역의 표준으로 정착된 것 같아요. 번역이 나쁘다는 평이 별로 없다는 데 만족합니다. 너무 직역 투라는 불만 정도죠. 선집을 읽은 국내 한 미학자가 그러더군요. 이전에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1급이고 베냐민은 2급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집을 읽은 뒤 생각이 바뀌었다고요.”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74학번이다. 모교 독문과 대학원에 79년 입학해 석사를 하고 베를린 자유대에서 95년에 베냐민의 미메시스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부 시절 그의 별명은 성에 독일 철학자 니체의 체를 붙인 최체였단다. “대학에 들어가 슬럼프에 빠져 학교생활을 엉망으로 했어요. 앞으로의 삶에 대한 별다른 생각 없이 공대 진학을 결정한 탓이죠. 공학 공부가 싫었어요. 대신 니체나 괴테 전집, 사서삼경 등을 읽고 매일 일기를 쓰며 버텼어요.” 그는 학부 졸업 뒤 삼성전자를 몇 개월 다니다 그만두고 인문학 공부로 인생의 방향타를 틀었다. “졸업하고 학부 3학년 학사편입을 하려고 국문학과 불문학, 독문학 순으로 시도했는데 다 안 됐어요. 그 뒤로 절에까지 들어가 공부한 끝에 독문학과 대학원에 들어갔죠.”
대학원에서 베냐민을 전공한 데는 이런 사연도 있었단다. “80년 민주화의 봄을 맞아 독문과 대학원에서도 학생들 스스로 루카치나 아도르노 같은 이론가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때 대학원 동기들이 돌아가며 자기가 쓸 논문 주제를 말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동기 홍승용(현대사상연구소장, 전 대구대 교수)이 먼저 아도르노로 쓰겠다고 해요. 아도르노는 우리가 같이 번역 스터디도 했고 저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말이죠. 선수를 빼앗긴 것 같아 순간 착잡했죠. 그래서 저는 베냐민으로 쓰겠다고 했죠. 똑 같이 아도르노로 쓰겠다고 하면 민망할 것 같았거든요. 그 순간의 결정이 이후 삶에 영향을 미친 거죠.”
‘국문학자 가장 많이 인용한 외국학자’
‘발터 베냐민 선집’ 14년째 번역중
최근 10·11권 출간…15권 완성 목표
2권만 15쇄 찍는 등 스테디셀러 ‘성공’ 공대 시절 철학에 빠져 인문학자로
“분과주의 강한 국내학계 ‘통섭’ 절실” 베냐민 사유의 현재성은? “베냐민 이론은 절대적으로 현재를 지향합니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와 같은 현재를 ‘황소’라고 표현하며 텍스트는 옛 것이더라도 이론은 모름지기 이 황소의 뿔을 잡고 싸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 싸움의 현장은 황소의 피로 흥건하지요. 오늘날 용어로 통섭을 선취한 사상가이기도 하죠. 전공을 넘나들며 특히 예술작품 분석을 통해 스스로 통섭을 추구했어요. 그가 한 통섭의 성과는 2차 대전 이후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인문학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프랑스의 롤랑 바르트나 미셸 푸코에 견줄 수 있어요. 기술과 예술, 아방가르드와 전통, 유물론적 정치와 신학 등 상호 배타적인 영역들을 변증법적으로 아우르고, 또 비평에서 미학은 물론 정치적인 힘까지 표현한 것도 지금껏 그의 글이 읽히는 이유이죠.” 한국에서도 통섭이란 말이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 대학 현실은 이 말과 거리가 멀단다. “한국 대학은 ‘전공을 바꿔 전과하면 전과자가 되는 곳’이라는 말까지 있어요. 푸코조차도 한국 대학에서 강사를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우리는 분과 학문주의가 강고해요. 뿌리주의죠. 연구자에게 ‘너의 소속을 말해봐’라고 말합니다. 그 소속이 권력이 돼 거기에 안주하죠. 열려야 창조적인데도요. 한국의 분과 학문주의는 적폐 중 적폐입니다. 예컨대 베냐민도 한국 대학에선 독문학 분야로만 취급해요. 그가 다룬 작가와 주제들이 인문 사회과학 전체를 넘나드는데도요.” 분과 학문 안의 권력관계는 학술의 토대가 되는 번역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베냐민 저술 <파사주 프로젝트>엔 보들레르 관련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같이 번역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불문학 전공자에게 물었더니 보들레르 번역은 불문학계의 귀족 아니면 손을 대지 못한다면서 거절하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어요. 영문학 쪽은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나 시 ‘황무지’를 쓴 T. S. 엘리엇이 그렇죠. 번역에 나섰다가는 철퇴를 맞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그는 “일본은 베냐민 선집이 70년대 후반 나왔고 20년 뒤에 한 번 더 나왔다”며 “기초 텍스트가 제대로 번역돼야 그 바탕 위에서 학문적 연구와 토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껏 번역하며 국가 지원을 한차례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팀까지 꾸려 야심 차게 준비해 <파사주 프로젝트> 번역 지원 신청을 했는데 서너 차례 떨어졌어요. 그 뒤로는 신청하지 않아요. 우리는 진국일수록 경원시합니다. 진짜를 알아보는 눈이 없어요. 지원받으면 쓸데없는 데 신경 써야 하는 문제도 있고요. 우리는 의심 위에 서 있는 저신뢰 사회죠. 이런 사회에서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있을까 싶어요.” 그가 보기에 현재 한국은 “가짜 인문학이 횡행하는 사회”다. “진짜는 경원시 되거나 묻힙니다. 독문학 전공 학생들도 그렇고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아요. 제가 번역한 책을 독문학과 학생들에게 주고 싶어도 베냐민 책에 흥미를 느낄 학생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더군요. 독문과를 다녀도 어학만 생각하지 인문학은 뒷전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굶주림이 있는 이들도 귀로 편하게 들으려고만 해요.” 그는 우리 사회의 인문학 쇠퇴가 자신이 베냐민 저술 번역에 몰두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고 했다. “2천 년대 들어 독문학 분야에서는 대학원 공부가 미래의 삶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전망이 사라졌어요. 1980년대부터 공고해진 신자유주의 영향이 컸다고 봐요. 그 뒤로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거의 포기한 학생만 공부를 지속할 수 있어요. 유학을 간 학생들도 전공을 직업과 연결하기 위해 귀국할 생각을 포기하고 국적을 바꿀 기회를 엿보는 실정이죠.”
최 교수에게 가장 좋아하는 베냐민 텍스트를 묻자 가장 먼저 돌아온 답은 “모두 다”였다. “베냐민의 글을 읽다 보면 단어 하나 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어요. 100% 퓨어(순수한) 다이아몬드죠. 베냐민은 극도로 절제하고 단련된 글을 썼어요. 글을 읽으면 묵직해 숨이 찹니다. 보통 학자들의 건조한 글과 달리 촉촉해요. 읽을수록 진국이 빠져나옵니다.” 그는 인터뷰 뒤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하나 고르라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일명 역사철학테제)이다”고 밝혔다. “베냐민 최후의 글로 역사와 정치에 대한 그의 사유가 응축되어 담겨 있죠. 당시 히틀러-스탈린 밀약을 접하고 사회주의에 대한 꿈도 증발해버린 충격적 현실 앞에서 써 내려 간 글입니다. 일종의 최후 진술로 읽는 이의 숨이 차오르게 합니다. 유대 메시아주의와 역사적 유물론의 정치학이 결합한 이 글은 절망적 현실에서 희망과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베냐민 수용사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글이기도 해요.” ‘무명인의 기억을 기리는 일이 유명인의 기억을 기리는 일보다 더 어렵다. 역사적 구성은 이 무명인의 기억에 바쳐진 것이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문장은 베냐민이 나치에 쫓기다 최후를 마친 스페인 해안 마을 포르부에 세워진 베냐민 기념물에서도 볼 수 있어요.”
베냐민 번역의 난점을 묻자 그는 베냐민 문장의 특성을 설명하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베냐민의 글은 모던하면서도 고풍스러워요. 변증법적이기도 하죠. 두 가지 의미가 뻗어 나가요. 신학 이야기를 하다 세속 이야기를 하고 그런 식이죠. 베냐민식 변증법의 특징은 매개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전복의 변증법이자 열린 변증법입니다. 종합하지 않고 열어두죠. 긴장을 계속하게 합니다. 신비주의적 분위기도 있고요.”
그는 올해 초부터 천도교 서울 대교당을 다니며 천도교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별세한 그의 부친(최몽연)은 천도교 교령 아래 지위인 도정까지 지냈다고 한다. “부친은 한국전쟁 때 월남해 전북 익산에서 쌀가게를 하셨어요. 도정은 예전으로 치면 대접주 자리이죠. 부친 장례를 치르며 제가 부친의 세계에 대해 그동안 너무 몰랐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동경대전> 등 천도교 경전 공부를 시작했어요. 경전을 공부하면 할수록 교리에 어마어마한 가르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최성만 교수는 선집이 나오기까지 학생들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베냐민에 관심이 많았던 한 학생 주도로 여러 대학 학생들이 네이버에 카페를 만들어 자율적으로 베냐민 스터디를 했어요. 저도 참여해 번역 텍스트를 카페에 올렸죠. 그 결과 선집이 나올 수 있었어요. 학생들과 제가 서로 윈윈한 거죠.” 베냐민 스터디 모임을 주도한 신은실(영국 에든버러 대학 사회인류학과 박사과정)씨는 최 교수의 대학원 제자로, 둘은 함께 <미메시스와 타자성>을 번역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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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출간된 베냐민 선집 11권 중 9권의 표지. 도서출판 길 제공
‘발터 베냐민 선집’ 14년째 번역중
최근 10·11권 출간…15권 완성 목표
2권만 15쇄 찍는 등 스테디셀러 ‘성공’ 공대 시절 철학에 빠져 인문학자로
“분과주의 강한 국내학계 ‘통섭’ 절실” 베냐민 사유의 현재성은? “베냐민 이론은 절대적으로 현재를 지향합니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와 같은 현재를 ‘황소’라고 표현하며 텍스트는 옛 것이더라도 이론은 모름지기 이 황소의 뿔을 잡고 싸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 싸움의 현장은 황소의 피로 흥건하지요. 오늘날 용어로 통섭을 선취한 사상가이기도 하죠. 전공을 넘나들며 특히 예술작품 분석을 통해 스스로 통섭을 추구했어요. 그가 한 통섭의 성과는 2차 대전 이후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인문학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프랑스의 롤랑 바르트나 미셸 푸코에 견줄 수 있어요. 기술과 예술, 아방가르드와 전통, 유물론적 정치와 신학 등 상호 배타적인 영역들을 변증법적으로 아우르고, 또 비평에서 미학은 물론 정치적인 힘까지 표현한 것도 지금껏 그의 글이 읽히는 이유이죠.” 한국에서도 통섭이란 말이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 대학 현실은 이 말과 거리가 멀단다. “한국 대학은 ‘전공을 바꿔 전과하면 전과자가 되는 곳’이라는 말까지 있어요. 푸코조차도 한국 대학에서 강사를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우리는 분과 학문주의가 강고해요. 뿌리주의죠. 연구자에게 ‘너의 소속을 말해봐’라고 말합니다. 그 소속이 권력이 돼 거기에 안주하죠. 열려야 창조적인데도요. 한국의 분과 학문주의는 적폐 중 적폐입니다. 예컨대 베냐민도 한국 대학에선 독문학 분야로만 취급해요. 그가 다룬 작가와 주제들이 인문 사회과학 전체를 넘나드는데도요.” 분과 학문 안의 권력관계는 학술의 토대가 되는 번역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베냐민 저술 <파사주 프로젝트>엔 보들레르 관련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같이 번역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불문학 전공자에게 물었더니 보들레르 번역은 불문학계의 귀족 아니면 손을 대지 못한다면서 거절하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어요. 영문학 쪽은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나 시 ‘황무지’를 쓴 T. S. 엘리엇이 그렇죠. 번역에 나섰다가는 철퇴를 맞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그는 “일본은 베냐민 선집이 70년대 후반 나왔고 20년 뒤에 한 번 더 나왔다”며 “기초 텍스트가 제대로 번역돼야 그 바탕 위에서 학문적 연구와 토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껏 번역하며 국가 지원을 한차례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팀까지 꾸려 야심 차게 준비해 <파사주 프로젝트> 번역 지원 신청을 했는데 서너 차례 떨어졌어요. 그 뒤로는 신청하지 않아요. 우리는 진국일수록 경원시합니다. 진짜를 알아보는 눈이 없어요. 지원받으면 쓸데없는 데 신경 써야 하는 문제도 있고요. 우리는 의심 위에 서 있는 저신뢰 사회죠. 이런 사회에서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있을까 싶어요.” 그가 보기에 현재 한국은 “가짜 인문학이 횡행하는 사회”다. “진짜는 경원시 되거나 묻힙니다. 독문학 전공 학생들도 그렇고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아요. 제가 번역한 책을 독문학과 학생들에게 주고 싶어도 베냐민 책에 흥미를 느낄 학생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더군요. 독문과를 다녀도 어학만 생각하지 인문학은 뒷전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굶주림이 있는 이들도 귀로 편하게 들으려고만 해요.” 그는 우리 사회의 인문학 쇠퇴가 자신이 베냐민 저술 번역에 몰두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고 했다. “2천 년대 들어 독문학 분야에서는 대학원 공부가 미래의 삶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전망이 사라졌어요. 1980년대부터 공고해진 신자유주의 영향이 컸다고 봐요. 그 뒤로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거의 포기한 학생만 공부를 지속할 수 있어요. 유학을 간 학생들도 전공을 직업과 연결하기 위해 귀국할 생각을 포기하고 국적을 바꿀 기회를 엿보는 실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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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만 교수는 내달 14일부터 두달 동안 ‘베냐민 사상의 근대성과 현재성’을 주제로 유럽인문아카데미에서 기획 특강을 한다.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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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이 최후를 마친 스페인 해안마을 포르부에 세워진 기념물 유리판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무명인의 기억을 기리는 일이 유명인의 기억을 기리는 일보다 더 어렵다. 역사적 구성은 이 무명인의 기억에 바쳐진 것이다.’ 최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베냐민 텍스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관련 노트에 나온다. 최성만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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