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경영과 철학 융합 공저 낸 김영진·김상표 교수
김상표 경남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와 김영진 대구대 창조융합학부 교수는 최근 <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경영철학>(솔과학)이란 두툼한 학술서를 함께 냈다. 김상표 교수 제안으로 의기투합해 지난 10년간 ‘철학과 경영의 만남’을 시도한 결과물이다.
7일 서울 목동 김상표 교수 자택에서 두 공저자를 만났다.
연구자로서 두 사람 모두 범상치 않은 길을 걷고 있다. 김영진 교수는 영남대에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1861~1947) 연구로 철학 박사를 받고 다시 경영학 공부를 시작해 모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취미로 태극권을 익혀 13년째 사범으로 지도하고 있으며, 대구 시민들과 일주일에 한 차례 만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시민인문학 모임 ‘사색의 텃밭’도 10년째 이끌고 있다.
고교 때부터 철학에 갈증을 느꼈던 경영학자 김상표 교수는 2년 전부터 그림 창작에 혼신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2018년 한 해만 네 차례 전시회를 했고 내달(11~24)에도 인사동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한다. 이번 달에 정년을 9년이나 남기고 대학교수직을 내려놓는단다. 전업 화가가 되기 위해서다.
“철학박사를 한 뒤 철학이 시장에 활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업윤리 과목을 청강하다 경영학 교수 권유로 아예 학위까지 했죠. 근대는 정치적 힘이나 국가의 힘이 중요했다면 현대에는 기업이 인간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해요. 그런데도 대부분 철학자는 기업인이나 시장에 무지한 채로 학교에서만 철학을 합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철학이 필요하지 않고요.”(김영진)
김상표 교수는 12년 전 자신이 개설한 학부 과목 ‘경영과 철학의 만남’을 당시 경영학 박사 과정에 있던 김영진 교수와 함께 끌어갔다. 이 수업을 위해 김영진 교수가 진주에 올 때는 자신의 집에 초대해 밤새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했단다. 연세대에서 조직 이론으로 경영학 박사를 받은 김상표 교수는 한때 경영학을 버리려고도 했단다. “경영학은 너무 사실의 문제만 집착해요. 기업의 지속가능성이나 사회적 책임 이런 말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익 극대화가 고정불변의 목적이죠.” 책에 실린 논문 15편은 이런 만남의 결과물이다.
경영학이 철학과 만나 뭘 얻었을까. “사실과 가치가 절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존재가 삶을 구성해가는 과정 자체가 끊임없는 가치의 선택이죠. 삶의 구체적 과정이 다 가치와 결부되어 있어요.”(김상표)
둘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대안으로 ‘과정 공동체’를 제시했다. 책의 결론이다. “화이트헤드는 사회가 문명화되는 조건으로 사회 구성원이 다섯 가지의 성질 즉 진리, 아름다움, 모험, 예술, 평화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죠. 이게 바로 ‘과정공동체’입니다.”(김상표)
서양철학자 화이트헤드와 질 들뢰즈(1925~1995)는 고정불변의 실재를 말하는 대신 우리가 경험하는 과정이나 사건에서 비롯되는 ‘직접성’이나 ‘차이’를 실재로 봤다고 한다. 그들이 ‘과정철학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과정공동체란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2008년 만나 논문 15편 함께 써
철학자 화이트헤드·들뢰즈 사유로
기업과 공동체 가야 할 방향 짚어
“이익극대화 목적에도 질문 던져야” 김영진 교수는 철학·경영학 박사
김상표 교수는 대학 명퇴 뒤 전업화가로 “대체로 철학자들이 시장에 부정적인데 화이트헤드는 시장의 사람들도 가치가 있으며 중요한 것은 가치의 전환이라고 했죠. 경쟁에서 조화로 가야 한다고 했죠. 화이트헤드 주저 <관념의 모험> 6장 ‘예견’은 저자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김영진 교수는 말을 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이론을 보면 형상은 능동적, 질료는 수동적 존재죠. 이런 이분법이 근대교육에도 그대로 수용됐어요. 자본가는 능동적이고 노동자는 수동적이라고 본 것도 그 반영이죠. 요즘 갑질 문화도 그렇고요. 과정철학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자율적이고 창조성을 가지고 있어요. 협동조합이나 자주관리 기업, 공유 기업 등에 과정철학의 조직관이 반영되어 있죠.”(김영진)
김상표 교수는 과정공동체의 대표적인 인물로 ‘한살림’을 만든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을 꼽았다. “무위당은 화이트헤드가 말한 다섯 가지 초월적 가치를 가지고 관념과 실천의 모험을 감행한 분입니다.” 한살림은 생명의 가치를 바탕으로 도농 직거래 운동과 지역 살림 운동을 펼치는 생활협동조합이다.
둘의 논의는 경영학과 수업 현장에서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까. 이 질문에 김상표 교수는 혼란스럽다고 했다. “학생 열이면 아홉은 이익 극대화란 목적을 의심하지 않아요. 사회적 책임이나 이런 쪽에 대한 긍정은 아주 작아요. 질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그런 편향을 가져왔다고 봐요. 우리는 기업가의 모험을 말할 때 이익 극대화란 목적은 빼고, 거기에 이르는 수단만 가지고 이야기해요. 예컨대 미적 체험을 말할 때도 이익 극대화의 도구로만 생각해요. 조직 생활을 통해 아름다움을 즐기는 미적 공동체를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어떻게 그런 조직이 가능하냐는 질문은 그다음 문제이죠. 지금은 난장 같은 게 필요합니다.”(김상표) “경영학과 예술 또는 철학의 만남은 학생들에게 자기 안에 또 다른 삶의 양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요. 이런 깨달음을 한 학생들은 대기업보다는 소셜 벤처를 창업하거나 협동조합에 들어가는 길을 택하기도 하죠. 행복한 삶을 위해서요.”(김영진)
두 사람은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 경영학계도 ‘경영철학’ 분과가 자리잡은 지 오래이지만 우리는 아직 먼나라 이야기라고 했다. 2008년 세계금융 위기 뒤로는 과정철학 패러다임도 미 경영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단다. “경영 공부를 하면서 제가 전공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패러다임이 경영학 쪽에서도 이야기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는 전략적인 필요성에서라도 더 그런 것 같아요. 기업가의 성공 노력이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비참한 몰락을 가져온다는 게 화이트헤드 생각이었죠. 2008년 위기가 그런 경우였죠. 화이트헤드는 근대의 개인 경쟁 중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죠.”(김영진) 공동연구는 경영학계에선 흔하지만 철학 쪽은 매우 드물단다. “경영 현상은 너무 복합적이어서 공동 연구로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거든요. 경영 쪽은 혼자 쓴 논문이 오히려 드물어요.”(김상표)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김상표(오른쪽) 교수와 김영진 교수. 뒤로 보이는 인물화는 김상표 교수 작품이다. 김영진 교수는 작년부터 학교에서 ‘빅 컨셉(Big Concepts)’이라는 과목을 개설해 가르치고 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과학을 통합해 가르칩니다. 작년에는 저 혼자 했고 올해는 대학 필수 교양과목으로 지정돼 40개 이상 강좌를 개설했어요.”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경영철학> 표지
철학자 화이트헤드·들뢰즈 사유로
기업과 공동체 가야 할 방향 짚어
“이익극대화 목적에도 질문 던져야” 김영진 교수는 철학·경영학 박사
김상표 교수는 대학 명퇴 뒤 전업화가로 “대체로 철학자들이 시장에 부정적인데 화이트헤드는 시장의 사람들도 가치가 있으며 중요한 것은 가치의 전환이라고 했죠. 경쟁에서 조화로 가야 한다고 했죠. 화이트헤드 주저 <관념의 모험> 6장 ‘예견’은 저자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김영진 교수는 말을 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이론을 보면 형상은 능동적, 질료는 수동적 존재죠. 이런 이분법이 근대교육에도 그대로 수용됐어요. 자본가는 능동적이고 노동자는 수동적이라고 본 것도 그 반영이죠. 요즘 갑질 문화도 그렇고요. 과정철학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자율적이고 창조성을 가지고 있어요. 협동조합이나 자주관리 기업, 공유 기업 등에 과정철학의 조직관이 반영되어 있죠.”(김영진)
김상표 교수가 그린 ‘혁명가의 초상-무위당’.
김상표 교수가 새달 여는 5회 전시회 포스터. “100호짜리 대작 100점을 전시합니다. 그림에 전념하려고 집 근처에 화실도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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