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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조국 사태’ 이후 386 담론 일베화…‘386’ 용어 쓰지 말아야”

등록 2019-12-20 05:00수정 2019-12-20 09:50

80년대 학생운동가 출신 정치인 지칭 용어, 보수언론이 세대담론 입혀 공격
민주화·평등·진보 조롱 ‘일베’ 담론 유사 “세대담론, 인종주의·성차별 닮은꼴”
언론에서 86세대에 대한 언급은 2000년, 2010년, 2019년 세 번의 높은 꼭지점을 찍는다. 이 시기 빅카인즈에 조중동이 참여하지 않아 통계에서 빠졌지만, 다른 자료를 활용하면 이 통계와 일치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신진욱 교수는 밝혔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조국 사태’를 계기로 ‘386세대 비판’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가운데, 이른바 ‘386 담론’이 언제 어느 때 누구에 의해 생겨났고 변질했는지, 그 연원과 계보 및 정치적 의미를 파헤친 논문이 나왔다. 애초 80년대 학생운동 출신의 정치인을 지칭하던 ‘386’이라는 용어에 위선과 무능, 청년착취 등 부정적 가치를 연결해 세대 대결 담론의 기본 틀로 완성한 것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우익 언론에 의한 ‘외부적 작업’이었는데, ‘조국 사태’ 이후 이런 ‘386 담론의 일베화’가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전방위로 번졌다는 비판적 평가를 담고 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열리는 한국사회학회 2019년 정기사회학대회에서 논문 <‘386’ 담론의 계보와 정치적 의미론, 1990-2019>를 발표한다. 신 교수는 먼저 세대 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부터 시작한다. 그는 “사회문제와 부정의를 세대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세대주의 담론은 어떤 면에서 인종주의나 섹시즘(성차별)과 닮았다. 피부색, 생물학적 성별, 나이라는, 즉각적으로 인지 가능한 말초적 지표가 복잡한 사회현실에 관해 설명을 해줄 뿐 아니라, 누가 ‘우리’고 누가 ‘그들’인지에 대해 안전한 확신을 제공해주는 것처럼 믿게 한다”고 비판한다. 이어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논문을 인용해 “세대와 별 상관없는 사안을 세대들이 서로 다툰 결과로 보도록 프레임을 짜서 어떤 전략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활동은 세대 간 대립을 강조하고, 그것을 부정의에 연결하고, 그런 부정의의 감정이 도덕적 분노를 일으키게끔 도발한다”고 성토한다. 신 교수의 비판은 2019년 7월 나온 <386 세대유감>(김정훈·심나리·김항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과 8월 출간된 <불평등의 세대>(이철승 지음, 문학과지성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386세대는 꿀 빨아 먹고 헬조선 만든 세대, 사다리 걷어찬 세대, 무능한 꼰대 집단”(<386 세대유감>)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는 선행 연구성과를 근거로 반박한다. 예를 들어 1997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서 소득불평등의 급격한 악화는 세대 간 불평등이 아니라 세대 내 계급불평등의 증가에 따른 것이며, 더구나 장년층과 노년층으로 갈수록 세대 내 계급불평등이 더 악화하였고(신광영 중앙대 교수, 2009년), 1960년대생을 포함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80년대 고도성장 덕에 생애 주직장에 가장 일찍 안착한 세대였지만, 또한 97년 금융위기 뒤 이미 40대 후반에 생애 주직장 생존율이 급락한 세대였다.(신동균, 2013) 복지 부담과 수혜 측면에서도, 국민연금 보험료율 대비 급여 수준으로 측정한 수익성은 노인층이 가장 높았고, 가입률·가입연수를 반영한 순혜택은 1970년대 중후반생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최기홍, 2016) 동일 연령기의 소득수준은 60년대생에서 정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70년대생까지 꾸준히 높아졌고 소득분배 지표의 연령 프로파일은 70년대생까지 40대 연령에 들어서면 악화하는 경향을 보였다.(윤종인, 2018) ‘386’이 모든 사회적 기득권을 독차지하는 세대가 아니라는 증거들이다.

‘진보꼰대’라는 비난은 어떤가? 올해 교육부 우수 학술연구로 선정된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의 ‘세대 연구’를 보면, 86세대는 70년대생 이후의 젊은 세대보다 여러 측면에서 더 보수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보수적인 진보꼰대라는 형용모순이 발생한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20대가 ‘세대별로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연령대’로 50대와 60대를 꼽았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부모 세대의 삶의 고난에 대해 가장 큰 연민을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청년들의 분노와 환멸은 특정 세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갑질’을 하는 특정한 권력위치의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386 담론을 만들고 변질시켰을까? 신 교수는 1990년 1월1일부터 2019년 10월31일까지 30년 동안 19개 신문에 실린 기사와 사설, 칼럼 등을 빅카인즈(한국언론재단 기사 데이터베이스)와 아이서퍼(신문스크랩 서비스), 텍스톰(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등의 빅데이터와 기술을 빌어 양적, 질적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386 담론의 압도적 다수는 <한겨레> <경향>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5개 매체가 생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담론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는 2000년과 2010년, 2019년 등 약 10년에 한 번씩 모두 세 번 있었는데, 2000년과 2010년의 경우 총선과 지방선거 등 정치 일정과 맞물려 있었던 데 반해, 2019년에는 정치 일정과 무관하게 ‘조국 사태’라는 단일 이슈에 의해 촉발된 점이 달랐다.

특히 2018년까지 대부분의 386 담론은 80년대 민주화운동 출신 정치인 그룹에 대한 관심, 기대, 견제, 비판이 주된 내용이었으나 2019년에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거나 진보적 가치를 추구해온 사회세력 전체를 문제시하는 의미론적 전환이 보수·진보 언론 가릴 것 없이 확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386과 함께 ‘불평등’ ‘꼰대’ ‘청년’ ‘분노’라는 언어가 매우 빈번히 등장했고, 나아가 좌파와 진보에 대한 이념적 공격의 성격이 강해졌다. 한국사회의 제반 구조적 문제를 만들어낸 책임을 ‘진보좌파 386’에게 물으며 청년들에게 분노하라고 촉구하는 담론이, 9년간의 보수정권이 종료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하는 현상이다.” 누적된 구조적 문제를 만든 책임이 민주화 세력에도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마치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할 기득권 세력으로 매도하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이를 ‘386 담론의 일베화’라고 규정했다. “민주화·평등·진보의 가치를 조롱하고 공격하는 ‘일베’의 담론과 유사한 상징구조로 전환”됐다는 의미다.

주목할 점은 “이 모든 공격적 ‘386’ 담론은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이 이미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기에 그 기본적 상징요소와 설득전략을 거의 완성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2019년에 ‘조국’이라는 도덕적 충격으로 마치 대단히 새로운 통찰과 인식을 얻은 듯이 과장한 ‘386의 서사’는 실은 지난 10여 년 동안 부단히 탄생하고 퍼져온 담론의 제반 요소들이 단지 고도로 응집되고 증폭된 것뿐이다. 2019년에 새로운 것은 없었다.”

결론으로 신 교수는 ‘386 말하지 않기’를 제안한다. “그것은 어떤 사회적 실재도 의미할 수 없으면서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는 듯이 화자와 청자 모두를 기만하기 때문이며, 그러면서도 특정한 가치와 세력을 공격하는 메시지를 강력히 시사함으로써 투명한 논변을 피해 가는 암시적 담론정치의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이 논문을 통해 진보진영조차 담론의 일베화에 휩쓸리고 있는 현상에 대해 경각심을 주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진보진영의 86세대 비판에는 더 잘해야 한다는 ‘자성’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이 동시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온 진보적 가치에 상처입히지 않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386’을 말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언어들은 충분히 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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