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해진 대규모 집회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홍콩의 두 차례 집회(2014년, 2019년)를 비롯해 레바논과 리비아 등 수많은 중동 국가 시민들이 참여한 ‘아랍의 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네 차례(2002, 2004, 2004, 2016)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평균 5개월에 한 번씩 47차례 이상의 대규모 시민집회가 열렸다.(조희정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네트워크 시민권력과 민주주의: 아이티(IT)와 세계의 시민집회’) 최근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대형 집회가 이렇게 자주 열릴 수 있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스마트폰과 각종 소셜미디어(SNS)의 등장이라는 기술적 계기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26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2019 비판사회학대회’는 ‘디지털 자본주의로의 대전환: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디지털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전방위로 살핀다. 노동과 젠더 같은 보편적인 항목부터 ‘로봇 연극’, 비트코인 등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를 13개 기획 세션과 7개 일반 세션에 걸쳐 펼쳐놓을 예정이다. 국내와 국외, 교수와 대학원생, 노동 및 시민단체까지 참여하는 방대한 행사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SNS) 등장 이후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집회가 훨씬 자주 열리고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 연합뉴스
가장 눈길이 가는 주제는 디지털과 포퓰리즘의 관계를 해명하려는 시도다. 2016년 영국 브렉시트 국민 투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 프랑스 국민전선부터 폴란드 법과 정의당까지 서구 여러나라가 포퓰리즘의 파도에 휩싸여 있다.
안효상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은 ‘디지털 전환: 포퓰리즘의 최신 계기’라는 발제문에서 디지털 전환의 효과를 △자동화와 노동의 대체 △플랫폼 기업의 부상과 데이터 독점 △공론장의 디지털화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이 가운데 공론장의 디지털화 현상이 ‘정서적 전환’과 결합하면서 합리적 의사소통과 공적 견해의 형성을 가로막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안 부소장은 “공론장의 디지털화는 공론장의 파편화와 파괴를 낳았고, 이는 정치 스타일로서의 포퓰리즘과 포퓰리즘적 정치 스타일이 작동하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며 “과거의 포퓰리즘이 (자유)민주주의의 유아기 질환이었다면 오늘날의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노인성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포퓰리즘은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단 발제문만으로 보면, “합리적이고 숙의적인 민주주의의 회복과 실현” 전망도 어두운 편이다. 다만, 그는 “민주주의 2.0 전망은 새로운 사회 협약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며 “중도좌파가 과거에 누렸던 것과 같은 광범위한 진보-민주 동맹을 형성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데, “과거처럼 일자리와 소득에 강조점을 둔다면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도리어 기술 발전으로 인한 풍요한 사회에 대한 전망 속에서건,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탈성장의 전망 속에서건 정치의 탈경제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녹색 뉴딜’ 또는 ‘디지털 뉴딜’이라는 구호로 표현되는 대안을 말하는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 지지자들. AFP/연합뉴스
정수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가짜뉴스와 혐오적 발언이 범람하는 현상을 분석하면서 ‘정치의 감정화’에 주목한다. ‘디지털 미디어 기반 탈진실 시대의 감정 정치’라는 발표문에서 그는 “최첨단 정보기술매체가 더욱 합리화시켜주리라 믿었던 민주주의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 소통의 과잉으로 인해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며 “이러한 파국적인 정치적 공간에서 시민은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집단을 ‘악’으로 규정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행위를 가벼운 쾌락 거리로 여기고 말 ‘쾌락주의적 무심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이날 발표를 통해 “플랫폼 정치가 ‘탈진실’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면서 포퓰리즘 및 반지성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필” 예정이다. “탈진실에 숨겨진 감정의 논리를 분석하면서 포퓰리즘과 반지성주의가 표출하는 특유의 감정 동학을 밝혀 (…) 왜 많은 사람이 허구적 사실에 더 열광하고 추종하는지” 설명해보겠다는 것이다.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영국 시민들. 런던/DPA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선 디지털 정치의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 효과를 압도하고 있다고 여전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밀실에서 벌어지던 권력 엘리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연대할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쥔 시민들은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시민 손으로 끌어내렸다는 효능감을 여전히 기억한다. 다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개혁이 따라주지 않는 한 이 효능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건 시간 문제일지도 모른다. 특히 최근 급격히 나타난 20대의 정치적 표류 현상을 보면, 우파 포퓰리즘의 토양은 이미 조성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포퓰리즘은 기성 제도가 만들어내는 결과가 불공정하고, 이 제도를 합의한 정치세력이 신뢰할 수 없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사회적 경험과 인식이 퍼질 때 출현 가능하”기 때문이다.(이승원 서울대 아시아도시센터 선임연구원 ‘디지털 플랫폼 기반 도시 커먼즈 운동과 포퓰리즘 정치의 가능성’)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비판사회학회는 1984년 한국산업사회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했으며, 1996년 한국산업사회학회로 개칭한 데 이어 2007년 비판사회학회로 이름을 바꾼 진보적 학술단체다. 1988년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진보적 학술단체 연합체인 학술단체협의회 창립에 산파 구실을 하기도 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