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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군자도 이익 추구해야”…조선시대 재테크 서적 발견

등록 2019-07-04 13:45수정 2019-07-04 19:23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이재운의 ‘해동화식전’ 발굴
물욕 금기시한 조선시대 통념에 ‘반기’
“재물 모으기보다 앞세울 일 없다”
이재운의 <해동화식전> 표지. 안대회 제공
이재운의 <해동화식전> 표지. 안대회 제공
군자는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조선시대 통념을 거부하고 부는 미덕이며 가난은 악덕이라고 주장한 18세기 ‘재테크’ 서적이 발굴됐다. 농사를 중시한 농본주의 국가 조선에서 상업의 필요성은 물론 재산 불리는 법과 부자 유형까지 기술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저작으로 평가된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한국실학학회가 펴내는 학술지 ‘한국실학연구’ 최신호에 실은 ‘이재운의 <해동화식전>과 거부열전’이란 논문에서, 조선 영조 때 문인 식니당(食泥堂) 이재운(1721∼1782)이 조선시대 일반적 경제관념과 상업관을 뒤집는 이론과 사례를 정리한 책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을 찾았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논문에서 “조선 시대의 일반적 경제관념과 상인관을 뒤집는 이론을 전개하고, 자신의 경영이론을 뒷받침하는 상인의 전기를 9편이나 수록한 사실만으로도 그 독창적 가치는 인정할 만하였다. 18세기 지성사에서 크게 주목해야 할 경제사상서로 자리매김할 만하고, 조선 후기 사회와 사상, 문학사상의 측면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 저술로 평가된다”고 썼다.

해동화식전은 일몽(一夢) 이규상(1727∼1799)이 쓴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 명칭이 등장하지만, 실물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병세재언록에서 이규상은 “그가 지은 <해동화식전>은 참으로 용문(사마천)의 솜씨이다. 문장은 기세가 왕성하고 문체가 용솟음치며, 식견이 넓고 빼어나다. (…) 변화가 무궁하며 붓끝이 굉장하고 빛이 나서 근세 백년 사이에 이런 작품이 없다”고 극찬했다. 이규상은 사마천이 부자가 된 사람들 이야기를 엮은 책 <화식전>(貨殖傳)과 <해동화식전>을 비교하면서 이재운의 문장이 미수 허목이나 연암 박지원보다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이재운의 <해동화식전>. 안대회 제공
이재운의 <해동화식전>. 안대회 제공
이재운은 명문가 한산이씨 서자였다. 5대조가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이고, 조부는 이인빈이었으며, 부친은 이인빈 서자 이식근이었다. 본래는 북인 핵심 가문이었으나, 인조반정 이후 남인으로 행세했다. 안 교수는 “이재운 집안은 이산해 이래 경제사상과 상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며 “이재운이 해동화식전을 저술한 것은 평지에서 돌출한 것이라기보다는 집안 학풍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밝혔다.

안 교수가 최근 입수한 해동화식전은 경진년(1820) 필사기가 있는 책과 <택리지>(擇里志)와 함께 수록된 이규상 수택본이다. 그는 “두 서적 가운데 이규상 수택본은 서문과 끝부분 일부가 누락돼 경진본이 상태가 더 좋다”며 “저술 시기는 명확한 근거가 없어 단정하기 힘들지만, 174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재운은 해동화식전 첫머리부터 청빈(淸貧)이나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따르는 삶은 옳지 않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이재운은 “군자는 재물을 이용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소인은 재물을 얻으려고 자신을 희생한다”며 “군자가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군자가 세 곱절의 이윤을 남기며 장사하는 상인의 수완을 잘 안다고 하여 잘못이라 책망할 이유가 없다”고 적었다.

이어 인간이 지닌 이익 추구 본능에 대해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면 바로 울음을 그치고, 늙은이도 자손들이 고기와 죽을 내어오면 웃음을 보이며 기쁜 표정을 짓는다”며 “나면서부터 잘 아는 사람이든 아니면 배워서 잘 아는 사람이든 부유하기를 구하고 재물을 모으기보다 앞세우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역설했다. 안 교수는 “이재운은 양반들에게도 생업 전선에 뛰어들라는 취지로 말했다”며 “그는 대놓고 돈을 벌라고 했고, 될 수 있으면 많이 벌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사대부가 보기에는 속물적 경제관을 강조한 이재운은 해동화식전에서 재산을 관리하는 이재(理材) 방법과 부자 유형을 스스럼없이 서술했다. 안 교수는 “이재운은 부의 획득이 횡재가 아니라 경영계획 수립을 통해 얻어질 수밖에 없다고 봤으며, 스스로 노력을 통해 부를 얻은 자수성가형 부자를 경영론에 가장 잘 부합하는 부자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재운은 화동화식전에 부자 9명에 대한 일종의 열전을 실었는데, 그중 5명을 통해 부자가 되는 5가지 길을 제시했고 4명은 자수성가형 부자로 소개했다. 그는 가장 나은 경영법으로 치산(治産)을 잘해 재물을 불리는 것을 꼽았다. 이어 아끼고 절약하는 방법, 변화를 일으켜 형통하는 방법, 고생을 참고 근면하게 일하는 방법, 수완이 없어 거지로 사는 방법을 나열했다. 특히 흥미로운 이재 방법이 절약인데, 구두쇠 자린고비 사연을 담았다. 안 교수는 “주인공은 자린급(煮吝給)으로 충주의 유명한 구두쇠인데, 극단적으로 절약해 부를 일궜다”며 “이재운은 인색하게 재물을 축적하는 것을 조금도 비판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 일부 사본에 자린고비 이야기가 전하는데, 그에 관한 최초 문헌이 <해동화식전>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재운의 <해동화식전>. 안대회 제공
이재운의 <해동화식전>. 안대회 제공
이재운은 자수성가형 부자 사례로 부부가 합심해 부를 일구는 방법, 맨몸으로 거부가 되는 방법, 대가족을 만들어 큰 부를 일구는 방법, 흉년에 기민을 구제하고 큰 부를 일구는 방법을 들었다. 안 교수는 이재운이 이재 방법 중 가장 우수한 사례로 뽑은 이진욱 열전을 보면 자수성가형 부자, 국제무역 종사, 매점매석, 상단 경영, 화류계 장악과 권력 소유라는 특징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그는 “<해동화식전>이 경제사상서라는 점에서 9편의 거부열전에 나타난 사실은 허구가 아닌 현실에 가깝다”며 “18세기 중엽 이후 야담집에는 치산담이 질적 양적으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거부열전이 치산담 성격과 발달 과정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오는 8월 <해동화식전> 번역본과 함께 허목, 이웅징, 이익 세 사람의 유사한 내용의 글을 덧붙여 단행본으로 낼 예정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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