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68혁명 당시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기자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68혁명이 지금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미를 찾고자 했을 때 좋은 방법의 하나는 당시를 살아간 프랑스 철학자들의 시야를 빌리는 것이 아닐까. 68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거리를 두거나, 침묵했던 다양한 철학자들의 섞이고 엇갈리는 사상의 궤적을 그리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프랑스철학회는 지난 18~19일 양일간 연세대학교에서 ‘1968년 50주년 철학, 혁명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봄 학술대회를 열었다. 120명 정원의 강의실에 양일간 각각 130명, 160명의 청중이 모여들어 프랑스철학과 68혁명에 대한 연구자들 사이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번 학회에서 인상적인 것은 청중만이 아니라 발제를 맡은 연구자들이 나서서 서로의 발표의 빈 곳을 지적하는 등 열띤 질의와 토론이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학회 회장인 황수영 홍익대 교양학부 교수는 “학회에 순수한 지적 욕구가 넘치는 40대에서 50대 초반의 젊은 학자들이 모여 있어 자유로운 분위기다. 2, 3년 전 열린 학회에선 거친 표현이 오가는 일도 있었을 정도”라고 전했다.
정대성 부산대 강사는 68혁명은 1789년 프랑스혁명과 1917년 러시아혁명 같은 ‘고전적인 혁명’이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혁명’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혁명이란 개념을 정치적 전복이나 체제의 전환과 긴밀히 연결하려는 발상법에서 한발 물러서면, 68년 5월의 격변은 일상을 포함하는 사회 전 영역의 위계와 권위에 도전해 새로운 삶의 편재를 꿈꾼 혁명이되, 결코 끝나지 않은 ‘미완의 혁명’”이라고 정의했다.
1962년부터 시작된 구조주의 철학의 대유행으로 “구세대” “한물간 사람”으로 여겨지던 63살의 마르크스주의적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68혁명으로 지적 생명을 연장했다. 그는 시위대의 폭력 사용을 옹호하는 성명을 내며 학생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파리 소르본대학을 점거한 학생들에게 초청받아 발언할 기회가 주어진 유일한 지식인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학자들은 68혁명을 구조주의에 대한 “사르트르의 복수”(프랑수아 도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변광배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조교수는 1960년에 출간돼 ‘68혁명의 예언서’라는 평가를 받는 <변증법적 이성비판>에서 나오는 융화집단, 서약집단, 조직화 또는 제도화된 집단이란 개념을 사용해 68혁명을 분석하며 “혁명을 실패로 몰고 간 요인 중 하나는 강력한 ‘서약’의 부재”라고 평가했다.
1968년 5월 파리에서 벌어진 혁명 와중에 “현실적이 되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고 쓰인 포스터. 출처 위키미디어
68혁명으로 “사망진단서”를 받았다는 평까지 나온 구조주의는 그러나 내적 쇄신에 나서며 포스트구조주의로 발전해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라캉 또는 알튀세르>의 저자 최원 단국대 철학과 강사는 “구조는 거리로 나가지 않는다”라는 뤼시앙 골드망의 비판에 자크 라캉이 응수한 “구조가 거리로 나간다”고 한 말을 발표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최원은 라캉이 분류한 지배자들의 담론인 ‘주인 담론’과 ‘대학 담론’, 지배를 전복시키려는 ‘히스테리 담론’과 ‘분석가 담론’을 중심으로 라캉의 응수를 해명한다. 그는 라캉이 분열된 주체가 주인 기표를 심문하고 지배하는 ‘히스테리 담론’이 바로 68혁명의 담론이나, 이 담론은 “또 다른 주인”을 원하는 주인 담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를 분석가 담론으로 한 번 더 회전시켜야 진정한 전복이 달성될 수 있었지만, 이런 담론의 전환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원은 “지도자 숭배 등 자기 자신의 고유한 위험과 대결하는 혁명적 정치만이 자신의 혁명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알튀세르가 추구한 중국의 문화혁명과 같은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의 한계를 지적하고, 계급·성·인종·국민 등 갈등하는 복수의 주체화 작업의 필요성을 제안하는 논문으로 관심을 모았다. 철학자 김재인은 혁명이 좌절된 원인으로 ‘인간의 자기 예속 욕망’을 탐구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1972)를 중심으로 ‘무의식을 생산하는 삶’을 살아갈 방법을 풀어냈다. 도승연 광운대 인제니움학부대학 부교수는 68혁명의 가장 큰 혜택을 받은 학자로 꼽히는 미셸 푸코가 도모한 ‘정복당한 지식의 반란’의 모습을 그려냈다.
한국프랑스철학회가 18일 연세대학교 외솔관에서 주최한 ‘1968년 50주년 철학, 혁명을 말하다’ 학술대회 종합 토론 시간에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가 청중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주재형 연세대 철학과 강사는 자크 데리다가 ‘비제도적인 혁명’인 68혁명과 거리를 두고 국제 철학 학교 창립 등 ‘탈-제도적 실천’을 추구한 이유에 대해 철학적으로 해명했다. 강초롱 서울대 불문과 강사는 68혁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여성해방운동이 내부의 갈등과 미국 학계를 거치면서 ‘차이의 이론’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으로 왜곡된 과정을 되짚었다.
학회장을 역임했던 1세대 프랑스철학자인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다양한 발표를 들으며 68혁명이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다중혁명이 아닌가 생각했다. 서양철학사상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이루는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아테네, 18세기 말 독일 예나처럼 68혁명 또한 이후 사상사를 결정할 철학혁명이기도 함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학술대회에 발표된 글들은 수정·보완을 거쳐 오는 10월 이학사에서 책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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