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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성별 나이 따지는 한국 대학선 ‘학문적 대화’ 불가능”

등록 2017-08-09 19:13수정 2017-08-09 22:33

[짬] 첫 에세이집 펴낸 강남순 교수
지난달 서울대 인권센터가 연 인권강좌에서 강의하는 강남순 교수. 그는 “지식의 정치학이 서구 기독교 세계 안과 밖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피는 내용의 책을 곧 미국에서 출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서울대 인권센터가 연 인권강좌에서 강의하는 강남순 교수. 그는 “지식의 정치학이 서구 기독교 세계 안과 밖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피는 내용의 책을 곧 미국에서 출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남순 교수는 올해로 12년째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2006년 부교수로 임용된 뒤 다음해 종신교수(테뉴어)가 됐다. 6년 전엔 정교수로 승진했다. 대학에서 코즈모폴리터니즘(세계시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과 같은 철학적, 신학적 담론을 가르치고 있다.

출판과 강연, 언론 기고를 통한 국내 활동도 활발하다. 그가 최근 첫 에세이집 <배움에 관하여-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동녘)를 펴냈다. 미 텍사스주 포트워스 자택에 머물고 있는 강 교수를 지난 8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미국에서 교수가 되기 전 2년 동안 한국 대학과 맞서 싸웠다. 상대는 모교인 감리교신학대다. 이 대학은 ‘부부 교수 불가 원칙’을 내세워 계약직 초빙교수로 있던 그를 재임용에서 떨어뜨렸다. 강 교수는 자신을 독립된 주체로 보지 않고 한 남자 교수의 아내로 보는 인식을 수용할 수 없었다.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과 함께 투쟁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 결정을 끌어냈다. 그 뒤 강 교수는 소송 대신 미국행을 택했다. “소송이 몇 년이 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더이상 삶의 에너지를 낭비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지금의 교수직 채용 때 인터뷰 대상자만 50명이 넘었다고 한다. “제가 국제기구에서 활동했던 경험과, 세계가 직면한 문제에 포괄적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 점수를 준 것 같아요. 대학의 정신과 맞다고 생각한 거죠.”

그는 미국에서 가르치는 일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미국 대학에 와서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있고, 가르치는 것도 제대로 경험하고 있어요. 한국 대학이 나를 부를 리도 없지만 혹 부른다 해도 돌아가는 결정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가지를 이야기했다. “한국에선 가르치고 싶은 걸 가르칠 자유가 없었어요. 학자로서 다양하게 관심을 표출해서 가르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어요. 학문적 자유를 느끼기 어려웠어요.” 또 하나는 위계의 문제다. 지금의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동료 교수들 사이에 학문적 대화가 가능했다고 한다. “한국 대학은 나이·성별·직책 등으로 규정되는 관계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료를 찾기 힘들었어요. 관계가 굉장히 위계적이죠. 학회를 가도 마찬가지예요.”

이번에 펴낸 책은 우리 일상에 스며든 차별과 배제를 도마 위에 올리고 있다.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를 통해 성별, 나이, 계층, 인종, 성 정체성, 학력, 외모, 종교, 출신 지역 등에 따른 차별과 배제를 예민하게 감별해내자고 말한다. 그럴 때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감신대 ‘부부교수 불가’ 내세워
재임용 탈락시키자 2006년 미국행
텍사스크리스천대 ‘종신교수’에

일상 스민 차별과 배제 느끼는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 강조
“종교계 여성 차별 여전하다”

그는 한국신학대를 다니다 감신대로 편입해 졸업한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책상 앞 세계와 책상 뒤 세계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죠.” 이런 당혹감의 실체를 미국 유학 때 알게 됐다. 그는 미국 드루대에서 철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드루대 첫 학기 때 들었던 페미니즘 강좌가 자신에겐 ‘지적 회심의 경험’이었다고 했다. “지도 교수가 강좌 수강을 권했을 때 처음엔 순수학문이 아니라 안 들으려 했어요. 그땐 내가 열심히 하면 차별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죠.” 당시 강 교수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니체 등의 실존 사상을 치열하게 탐구하던 철학도였다. “페미니즘 강좌를 들으면서 내가 보는 세계가 실제 세계가 아니란 걸 깨달았죠. (세계 안에) 얼마나 많은 차별과 억압 구조가 있는지, 그리고 그게 나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리고 일상적 삶이 학문적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글쓰기가 바로 사회변혁운동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최근 학문적 관심을 묻자 ‘우리가 어떻게 사회를 보다 나은 세계로 만들 것인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대표 강좌는 ‘데리다와 신학정치적 이슈’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이다. 대학원에 제안해 프랑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의 사유를 테마로 한 세미나를 정규코스로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 “어느 날 데리다가 쓴 자신의 조사를 보고 강하게 끌렸어요. ‘내가 어디에 있든 당신들을 향해 언제나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당신들을 사랑한다’고 썼어요. 그는 얼굴과 미소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강 교수는 데리다를 두고 “우정이나 환대 등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손으로 잡은 뒤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 사상가라고 평했다.

왜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인가? “한나 아렌트는 악을 ‘비판적 사유의 부재’라고 봤어요. 누구나 인식론의 사각지대가 있어요. 촛불을 든 사람들도 삶의 다른 지점에선 무수한 차별과 억압의 구조 속에 있죠. 촛불이 이걸 무화시키는 건 아닙니다. 비판적 성찰이 있어야 민주주의의 성숙도 가능합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집단적 패거리 문화가 심각한 질병의 수준”이라며 “개별자의 주체적 존엄성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평등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 부모들은 자식을 고유한 생각을 지닌 인격체로 보지 않아요. 공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없도록 하는 거죠.”

그는 1998년 <페미니즘과 기독교>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의 개정판이 곧 나온다. “사회적 변화보다 더 변하지 않은 게 바로 종교입니다. 교단 감독이나 총회장은 거의 100% 남성입니다. 미국 감리교는 감독이 평생직임에도 여성이 많아요. 한국은 신학대 총장도 여성이 없어요.” 그는 “한국 교회가 대형 교회의 득세로 ‘구원클럽’이 되고 있다”며 다시 데리다를 인용했다. “데리다는 종교는 책임성이며, 불가능성에 대한 열정이라고 했어요. 예수를 보면 이 두가지 개념이 다 들어갑니다. 그는 타자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연대했고, 원수처럼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들도 사랑하라고 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강남순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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