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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한국에 윤동주 문학 가치 알려준 ‘거대한 아시아인’”

등록 2023-01-19 19:01수정 2023-01-23 11:27

[가신이의 발자취] 오무라 마스오 교수를 추모하며

지난해 11월 용재상을 수상한 오무라 마스오 교수(앞줄 가운데)가 김응교 교수(뒷줄 가운데)를 비롯한 지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응교 제공
지난해 11월 용재상을 수상한 오무라 마스오 교수(앞줄 가운데)가 김응교 교수(뒷줄 가운데)를 비롯한 지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응교 제공
롱징 변두리 윤동주 묘 찾아내고

임종국 친일문학 연구 일본 알려

“윤동주·김학철 노벨상 이상” 평가

“한국 공부하는 게 진정한 사과” 뜻도

소장 도서 모두 한국문학관 기증

“글쎄, 장례식 같은 건 절대 하지 말래요. 죽으면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말라 하셨어요. 그럼 나는 나쁜 아내, 자식들은 불효자가 되잖아요. 그래도 연락하지 말래요.”

연전에 하신 사모님 말씀대로, 며칠 전 15일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18일에야 들었다. 전화 걸었는데, 충격이 크셨는지 사모님은 말을 못 이으셨다.

1992년 부여 신동엽 문학기행 때 고려대 교환교수로 오신 오무라 마스오 교수님은 그날 저녁 중국어로 뱃노래를 부르셨다. 이분이 1974년 이호철, 장을병, 김우종, 임헌영 등이 억울하게 잡혀간 ‘문인간첩단 조작 사건’ 때 구명운동을 했고, 1985년 5월 중국 롱징시 변두리 언덕에 자리한 윤동주 묘를 찾아내고, 임종국의 친일문학 연구를 일본에도 알린 분이라는 사실을 한참 후에 알았다.

“평양에서도 윤동주에 관한 평이 나왔어요.”

느릿느릿 말하며 복사한 종이 한 장을 주셨던 1999년 겨울날, 해맑은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소복히 쌓인 흰 눈보다 눈 아리게 살짝 벌린 입으로 소리 없이 밝게 기뻐하셨다. 당시 윤동주를 우습게 보던 무지한 나는 기뻐하는 선생을 이해하지 못했다.

통일을 이루려면 북한문학도 미리 연구해야 한다며, 신뢰하는 학자들에게 북한문학 자료 등을 건네셨다. 특히 윤동주 자료는 일본인인 자기 이름으로 나가면 절대 안 된다며, 준비가 된 이들에게 슬쩍 자료를 건네셨다. 간간이 한국 신문에 모 교수가 발굴한 자료라고 나온 기사를 보면 오무라 교수님께서 얼마 전 전한 자료였다.

“시인 윤동주와 소설가 김학철은 노벨문학상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어느날 지나가듯 말하셨다. 자주 윤동주 자료를 주셨고, 연전 마지막으로 댁에 방문했을 때도 새 자료를 주셨다. 심원섭 교수 등과 내신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 전집>(1999), 가장 친한 문우 김윤식・임헌영 선생의 추천사를 실은 <윤동주와 한국문학>(2001)을 내시며 윤동주 연구의 뿌리를 심으셨다.

오무라 교수님이 불러주셔서 와세다대학에 임용됐던 1998년, 와세다대학에는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고생하신 김원중 선생, 총련 조선대학의 김학렬 교수, 엔에이치케이(NHK) 아나운서 김유홍 선생 등이 한국어를 가르치셨다. 학교에 가면 통일된 나라를 보는 듯했다. 선생님은 학자 이전에 인간을 보셨다. 학계에 업적이 높아도 덜된 인간이라면 반기지 않으셨다.

2018년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한 오무라 마스오 교수(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김응교 교수(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등 축하객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응교 제공
2018년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한 오무라 마스오 교수(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김응교 교수(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등 축하객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응교 제공
한국에서 학자가 오면 반드시 도서관과 관심 있을 만한 지역을 안내해주셨다. 며칠간 니가타, 교토 등 먼 지역으로 가는 여행에 과분하게 동행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선생께서 차비나 숙박비를 모두 내셔서, 돌아오자마자 경비를 보내면 많이 섭섭해 하셨다.

“한국에서 내리사랑이라고 하나요? 김 선생님이 내게 갚으면 내리사랑이 아니죠. 내게 갚지 말고, 한국에 일본인 학생이 오면 그 경비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게 내리사랑이지요.”

이때부터일까. 이분이 일본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동양의 군자 혹은 거대한 아시아인으로 보였다. 다만 하냥 너그러운 분은 아니었다. 저서 <시로 배우는 조선의 마음>(1998)에 내가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도 친일시 쓴 서정주를 넣지 않으셨다. 표절한 어느 교수가 찾아왔을 때 시간 없어 실례한다며 싸늘하게 만나지 않으셨다. ‘천황’이 베푼 모임에 다녀왔을 때 “김 선생도 그런 델 갑니까”라며 섭섭해 하셨다. 한국의 부패한 정권이 주는 상이나, 떨떠름한 문학상은 모두 거부하셨다.

학위를 받은 뒤, 논문을 써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은 회의에 잠긴 나는 공부보다 우에노 등지에서 홈리스나 불법체류자와 함께하는 활동 등에 참여했다. 연구하지 않고 헤매는 서생을 이해하셨는지, 어느날 선생은 관동대진재(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있었던 장소에 가보자고 하셨다.

“조선인 학살과 문학 이야기 한번 써보세요.”

봉고차를 타고 지바 지역의 조선인 학살 지역, 조선인이 격리된 낙하산 부대 지역, 학살된 조선인을 모시는 절, 조선인학살을 기억하자는 활동가들을 만나게 하셨다. 연구에서 떠난 지 3년 만에 나는 ‘관동대진재 조선인 학살과 한일문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학계로 돌아왔다.

2000년부터 매년 9월 첫주에 와세다대학 학생들과 한국문화기행을 했다. 전국 각지 의미 있는 곳을 열흘 정도 버스 타고 다니며 한국 역사며 종교며 문학을 공부하는 서머스쿨이었다. 선생님은 이 기행을 무척 반가워하셨다.

한번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사는 광주 ‘나눔의 집’에 갔다. 전시실을 보고 놀란 학생들은 친절하게 맞아주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일본어로 대화하고 한번 더 놀랐다. 그날 밤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충격이 컸는지 학생들은 말을 못했다. 바위 덩어리를 실었는지 버스는 무거웠다. 그때 선생님은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쉽게 한국에 사과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정치가처럼 혀로 사과한다고 하지 말고, 그 시간이 있으면 한국을 공부하세요. 한국을 공부하는 것이 사과하는 태도입니다.”

2004년 퇴직 후, 선생은 더 많은 활동을 하고, 더 많은 저작을 내셨다. 여섯 권의 <오무라 마스오 저작집>을 2018년에 완간하셨다. 남은 시간이 없다며 잠도 안 자고 목숨 걸듯 글을 쓴다고 사모님은 교수님을 걱정하셨다. 한일관계에 멈추지 않고 한국, 중국, 만주, 대만, 일본 등 아시아 문학을 교류하는 국제심포지엄을 김재용 교수 등과 개최하셨다. 서재에 남아 있던 그 많은 책들을 모두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하기로 하셨다.

선생님, 인격과 학자의 품격을 보여주신 선생님과 지내온 세월은 분에 겹고 행복했습니다. 작년 11월 용재학술상 시상식 때 선생님을 사랑하는 후학들이 가장 많이 모였지요. 선생님도 환희 웃으시는 마지막 사진을 보고 또 봐요. 가르쳐주신 대로 국가 구별하지 않고 내리사랑 하겠습니다. 후학들 모두 목숨 걸듯 공부하겠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계시는 한, 선생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는 겁니다. 새로이 가신 그곳에서 친하던 윤동주 시인, 김학철 선생과 밀린 대화하시고, 김윤식 교수님, 남정현 선생님과 좋아하던 커피도 드시고 바둑도 두세요. 터질 듯 짧게 울고 ‘거대한 아시아인’을 배웅하지 않고 계속 모시기로 했어요. 선생님, 영원히 고맙습니다.

김응교 시인, 숙명여대 교수, 전 와세다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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