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학술

“한말 일본 간첩들은 신변보호까지 받으며 조선 정탐했죠”

등록 2022-09-06 18:30수정 2022-09-07 02:03

[짬] 한일관계 연구가 박해순씨

한일관계 연구가인 박해순씨가 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인터뷰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일관계 연구가인 박해순씨가 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인터뷰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선을 넘는 일본 간첩대-그 기막힌 교활함>(나녹).

일본어 전문번역가이자 한일관계 연구가인 박해순(58)씨가 3년 전에 생애 첫 책 <1894 일본조선침략>(나녹)을 출간하고 최근 두 번째로 낸 저술이다. 첫 책에서 일본 군부와 외무성 자료를 토대로 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에 일본이 무력으로 조선 국정을 장악한 과정을 보여줬다면 최근작은 일본이 메이지 원년인 1868년부터 1894년까지 조선에 첩보원을 보내 정탐을 한 과정을 역시 일본 쪽 당시 자료나 간첩 행위를 한 인물들의 회고록을 통해 세밀히 드러냈다.

지난 2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자를 만났다.

&lt;선을 넘는 일본 간첩대&gt; 표지.
<선을 넘는 일본 간첩대> 표지.

“일본은 1882년 임오군란 뒤 조선과 맺은 제물포조약에서 자국 외교관과 그 가족들도 조선 내륙을 여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 호조(내륙 여행 허가증) 신청권을 따냅니다. 제가 당시 호조를 발급한 60여 건을 기록한 국내 자료를 일본 자료와 대조해 보니 발급자 대부분 일본군 정보장교 즉 간첩이었어요. 조선 정부가 신변 보호까지 해 주며 일본 간첩 행위에 편의를 봐준 거죠.” 저자에게 이번 책의 학술적 의미를 자평해달라고 하자 나온 답이다.

1986년 단국대 일문과에 들어가 석사까지 마친 저자는 30년 가까이 일본어 번역을 하다 6년 전부터 일제의 조선 침략 연구에 오롯이 매달리고 있다. 대학 때 만나 사제의 연을 맺은 민속학자 고 심우성 선생 소개로 일제강점기에 나온 조선 민속과 무속 주제 책을 주로 번역했고 행안부와 노동부 등 정부 관련 번역 일도 많이 했단다. “일본어 번역 쪽에서 수입이 상위 1%라는 말도 들었죠. 25년 넘게 번역에 파묻혀 살았으니 남은 삶은 새로운 사명을 위해 살고 싶었죠.”

<선을 넘는 간첩대>는 메이지 원년 이후 일본의 조선 정탐이 얼마나 집요하고 체계적이었는지를 1875년 운요호 사건과 1882년 임오군란 등 조선과 일본 사이 굵직한 정치적 변동을 따라 보여준다. 일본 군국주의의 핵심 기관인 일왕 직속 참모본부는 조선에 파견한 첩보원들에게 정탐 지역을 구체적으로 지정해주고 그 보고서를 바탕으로 조선 팔도 지리와 군비 태세 등의 정보를 완성해갔다. “참모본부는 조선 무력 침략에 6년 앞서 1888년에 이미 조선 팔도지리서인 <조선지지략>(8권)을 완성합니다. 이 책자는 일본에서도 ‘알려지면 정말 안 되는 책’이어서 태평양 전쟁 이후에도 소재가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극비리에 관리됩니다.” 그는 이어 “1894년 2차 봉기한 동학 농민군이 일본군에 몰려 고비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일본이 간첩 활동으로 조선의 모든 정보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25년 넘게 일본어 번역가로 살다

지난 6년 ‘일본의 조선 침략’ 연구

당시 일본 군부·외교 자료 토대로

3년 전 ‘1894 일본조선침략’ 이어

최근 ‘선을 넘는 일본 간첩대’ 펴내

“일본의 문화재 약탈도 살필 터”

그는 책에서 “일본 간첩 행위의 집요함과 교활함”을 보여주는 예를 여럿 들었다. “참모본부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조선 정탐도 지휘한 이가 바로 가와카미 소로쿠 참모차장인데요. 그 역시 1893년에 이름을 바꾸고 신분도 기사로 위장해 호조를 발급받아 극비리에 조선을 정탐하고 고종까지 만났더군요. 1877년 대리공사로 임명돼 조선에 온 하나부사 요시모토는 진도 근방에 배를 정박하고 3일에 걸쳐 소증기선을 띄워놓고 열심히 목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요. 조선 정부에는 강화도 조약에 따른 개항장을 찾는다고 했지만 실제는 세밀하게 조선 정탐을 한 거죠. 1892년에는 전쟁 대비 목적으로 조선에 철도를 깔기 위해 철도 예정선을 몰래 측량하려고 조선에 거짓 신고까지 했더군요. ‘미국 박물관에 선물로 줄 새 사냥을 위해 답사단을 파견한다’고요.”

이번 책에는 일본 군인과 외교관이 조선을 정탐하며 그린 지도들은 물론 정탐 예산과 수칙 등 일본 간첩 활동의 실태를 보여주는 자료들도 많이 담겼다. 저자에게 일본 간첩 활동의 특징 하나를 꼽아달라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간첩 수칙을 철저히 매뉴얼화하고 첩보원들은 그 명령과 지령을 철저히 따른다는 점이죠. 첩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정보화하거나 간첩 활동에 예산 지원을 많이 한 점도 눈에 띄더군요. 1876년에 베이징 주재 일본 공사가 간첩 활동을 지휘하는 무관이 자기보다 더 돈을 쓴다고 항의할 정도였죠.”

일본의 이런 정탐에 조선 정부가 대체로 보인 반응은 “저들의 속셈을 알 수가 없다”였단다. “조선 정부가 호조를 내준 일본 정보장교의 정탐 행위에 대해 의심하고 살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죠.”

그가 한일관계 저술가가 된 데는 2015년 국방부 해외전쟁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게 직접적인 계기였단다. “그때 국방부에서 번역하라고 준 자료에 ‘일본 국립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라는 이름이 나오더군요. 이 사이트에서 검색을 하니 일본 참모본부와 육군성, 해군성, 외무성이 작성한 방대한 일제강점기 자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죠. 처음엔 제가 대학 때부터 관심이 많아 자료를 모은 아유카이 후사노신(1864~1946) 정보를 검색했어요. 그렇게 하다 결국 <1894 일본조선침략>까지 쓰게 되었죠. 조선 지명과 한국어 연구가인 아유카이는 명성왕후 살육에도 관여했죠.” 그는 “센터와 일본 국회도서관 등에서 찾은 자료들이 백 년도 더 된 일본어 고문이지만 오랜 기간 일제 강점기 책을 많이 번역해 해독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박해순 저자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박해순 저자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번 책도 애초 일본이 조선에 철도를 깐 역사를 다루려다 주제가 바뀌었단다. “조선에 철도를 깔려고 한반도 전역을 처음 답사한 마쓰다 유키조라는 민간인이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다 참모본부 공식 조직인 간첩대에도 마쓰다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를 계기로 정보장교 자료를 집중적으로 찾아 결국 책까지 썼죠. 마쓰다는 1885년 조선에 들어와 4년 동안 팔도를 걸으며 정보를 수집해 일본에서 책까지 냈더군요.”

계획을 묻자 그는 앞서 낸 책들처럼 주제가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일본이 을사늑약 뒤 설치한 통감부 시기 이전에 어떻게 조선 문화재를 약탈했는지 살피고 싶다고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1.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정부 대변인’ 유인촌 “계엄 전부터 탄핵 탓 국정 어려워”…계엄 합리화 2.

‘정부 대변인’ 유인촌 “계엄 전부터 탄핵 탓 국정 어려워”…계엄 합리화

중립 기어 밟는 시대, 가수 이채연의 ‘소신’을 질투하다 3.

중립 기어 밟는 시대, 가수 이채연의 ‘소신’을 질투하다

환갑의 데미 무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폭력적으로 갈망하다 4.

환갑의 데미 무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폭력적으로 갈망하다

“내가 정치인이냐? 내가 왜?”… 임영웅 소속사는 아직 침묵 중 5.

“내가 정치인이냐? 내가 왜?”… 임영웅 소속사는 아직 침묵 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