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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공기처럼 누구나 이용가능한 ‘지식 공유 플랫폼’ 필요해요”

등록 2022-06-01 18:54수정 2022-06-02 02:31

[짬] 내달 두돌 ‘지식공유연대’ 천정환 공동의장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지금 연구자들이 경쟁과 시장주의 교육 정책 탓으로 파편화한 삶을 살고 있잖아요. 자기 분야를 조금만 벗어나도 교류가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논문 작성이나 유통과 같은 ‘공통의 문제’로 여러 분야 연구자들이 만났다는 데 우선 의미 부여를 하고 싶어요.”

오는 7월 17일 창립 2돌을 맞는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 및 연구자 연대’(약칭 지식공유연대)의 산파 노릇을 하고, 공동의장도 맡아온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의 말이다. 박배균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정경희 한성대 크리에이티브 인문학부 교수도 그의 함께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천 교수가 3년 전 주선해, 민간 논문서비스 업체와의 계약 조건에 의문을 가진 국문학 분야 학회 회원들이 모였고 이는 그해 8월 문헌정보학과 국문학, 철학, 사회과학 분야 등 학회 30여 곳이 참여한 ‘지식공유 선언’으로 이어졌다. 앞서 2018년 문헌정보학 분야 학회 7곳이 선도적으로 오픈 액세스(무료 공개)를 선언한 데 이어 2020년 지식공유연대 창립식에선 18개 학회가 추가로 학회지의 오픈 액세스 뜻을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아직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공계 쪽 학회를 빼고 문헌정보학 분야 학회 6곳과 <상허학보>, <대중서사연구>, <여성문학연구> 등 국문학 쪽 학술지가 오픈 액세스 전환을 마쳤다.

국내 인문·사회과학 학회들은 대부분 1990년대 들어 영리 목적의 논문서비스 업체에 논문 저작권을 넘기고 그 대가로 연 100~300만원을 받아 학회 운영에 충당해왔다. 오픈 액세스로 전환하면 이 수익을 포기해야 하고, 또 검색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을 찾아 직접 논문을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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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공유하라> 표지.

지식공유연대 학회들은 왜 이런 수고로움을 자청하는 걸까. 지난 30일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천 교수를 만나 그 답을 들었다. 지식공유연대는 최근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와 공동 기획으로 지식공유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살피고 오픈 액세스 전환 매뉴얼 등을 담은 책 <지식을 공유하라>(박서현·정경희 엮음)를 펴냈다.

“지식은 공기나 산, 바다와 같은 커먼즈(공유자원)입니다. 한 연구자의 독창적인 연구 밑바탕에는 선학과 해당 학계가 오래 축적한 지식과, 동료 연구자들과의 대화·토론에서 얻은 깨달음이 자리하고 있어요. 특정 논문을 오롯이 연구자 개인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이죠. 지적재산권 보호는 자본주의 발달과도 궤를 같이해요.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연구자들이 가져야죠.”

지식공유 운동은 지금의 논문 유통 구조에서는 대학 바깥의 독립연구자와 일반 시민의 논문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논문을 쓴 연구자도 논문서비스 업체와 계약을 맺은 대학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으면, 자신의 논문을 보기 위해 비용을 들여야 하는 실정이죠.” 대중서사학회 박숙자 학회장은 이번 책에서 “국회도서관도 논문 검색만 가능하고 내려받기는 불가능해 인쇄 비용이 따로 들어간다”고 밝혔다.

근대 한국의 출판과 독서문화로 박사 학위를 받은 천 교수는 저서 <대중지성의 시대>(2013) 등을 통해 “지식 민주주의는 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과정이며 민주주의 진전과 궤를 같이한다”는 생각을 펼쳐왔다. 그가 ‘지식공유 운동’에 관심을 쏟는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2년의 활동에도 지식공유연대의 외형적 확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역사학이나 사회과학 쪽 학회 참여도 더디다. 어려움이 뭘까?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으로 인문사회 쪽 학술 생태계가 망가져 학회들이 많이 위축된 상태입니다. 회원도 충원되지 않고요. 이 때문에 논문저작권료로 받는 수익마저도 아쉬운 거죠. 업체가 학회 누리집도 만들어주고 다른 서비스도 해주거든요. 또 업체와 거래하면 겉보기에 논문 검색도 잘 되는 것 같으니 별 생각 없이 계약을 유지하는 거죠. 장기적으로는 독인데도요.”

오픈 액세스 운동의 대의에는 국가기관도 동조하고 있다. 오픈 액세스를 위한 논문 데이터베이스 작업은 국립중앙도서관이 지원하고, 한국연구재단이나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은 논문 공개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연구재단 등은 국내 학술지의 오픈 액세스 출판 독려를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한다며 ‘국가 오픈 액세스 정책 포럼 2021’도 열었다.

하지만 천 교수는 공공 기관의 이런 노력에 점수를 높이 주지 않았다. “교육부, 과학기술부, 문화부 등 부처별로 나뉜 각 기관이 분산적으로 찔끔찔끔 지원책을 내놓아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한 곳에서 전체를 아울러 오픈 액세스 학술지 디비화와 이 논문들이 쉽게 검색될 수 있는 플랫폼 지원을 챙겼으면 합니다.”

2020년 ‘지식공유연대’ 산파 노릇

박배균·정경희 교수와 공동의장

연구자 중심 ‘오픈 액세스’ 운동

‘오픈 액세스 매뉴얼’ 등 담은 책도

‘오픈 액세스 독자 플랫폼’ 만들기로

“자기 논문도 돈내고 봐야해 문제”

지식공유연대가 지난 4월 정기총회에서 ‘연구자 중심의 오픈 액세스 플랫폼’을 만들기로 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이 작용했단다. “오픈 액세스 논문을 모아 공개하고 연구자들이 학술 활동에서 가지는 여러 문제도 토론하는 장으로 활용하려고 해요.”

그가 애초 지식공유연대를 제안한 이유는 이 활동이 대학과 학계가 당면한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오픈 액세스 운동은 고용불안에 시달리느라 자기 권리를 지키기 어려운 비정규 연구자들이 논문 생산과 학회 운영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죠. 저는 여기서 ‘연구자 주체화’의 가능성을 봤어요. 이는 대학과 학계의 문제와 맞설 수 있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죠.”

그는 2013년 창립한 ‘인문학협동조합’ 이사장이자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성균관대 분회장이기도 하다. 40대 후반 뒤늦게 가입한 민교협에서 지난해 말까지 교육학술위원장과 사무처장으로 4년 활동했다. 신문 칼럼 등을 통해서도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이 부른 학술생태계 붕괴와 비정규직 차별과 같은 대학 내 불평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조합원이 80여명으로 그가 창립 때부터 참여한 인문학협동조합도 지자체나 도서관에서 강의를 수주해 비정규 연구자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한 의도가 컸다.

대학 내 불평등에 문제의식이 많은, 보기 드문 정규직 교수인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운이 좋아 정규직이지만 제 제자나 후배, 동료들이 비정규직이니까요. 그들이 차별을 받으며 모욕감을 느끼는 것을 자주 봅니다. 사실 지금 대학은 비정규직 차별과 과도한 성과주의 등으로 대학에 자리를 잡은 이나 그렇지 못한 이나 모두 행복하지 못해요. 가르치는 보람도 느끼기 어렵고요.”

그렇다면 답이 뭐냐고 묻자 그는 “민교협이나 교수 노조 등에서 그동안 고민을 많이 해 대학 공공성 증진 방안으로, 인문사회 학술 정책과 신진 연구자 지원을 위한 학술진흥원 설립이나 국가 박사제도 등의 대안을 마련하고 제시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무관심으로 제도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천정환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천정환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대학이나 학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뭐냐는 질문에는 자신의 공부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답했다. “저는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연구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문학에서 출발해 문화사와 문화론으로 공부 주제가 넓어진 것도 그 때문이죠. 문학도 그렇지만 문화론을 가르치려면 마르크시즘이나 페미니즘, 미디어도 공부해야 합니다. 이런 공부가 학자로서 저의 실천 할동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의 저술 목록 중 눈에 띄는 두 권이 있다. 바로 자살을 다룬 책이다. 2013년 <자살론>에 이어 지난해 ‘자살과 한국의 죽음정치에 대한 7편의 하드보일드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숭배 애도 적대>를 출간했다. 2003년 대북송금 문제로 수사를 받던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을 접하고 본격적으로 자살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는 “자살 통계가 나온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었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사람들이 일상을 만들어 가는 공간인 학교나 직장, 가정에서 힘들기 때문이죠. 10대부터 70대까지 모두, 경쟁하는 삶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어렵지만 특히 학교나 직장, 가정에서의 관계가 엉망진창입니다. 여성들은 연령대별로 자살률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남자들은 중년 이후 가파르게 치솟아요. 한국 남자 노인들은 세계적인 자살 고위험군입니다. 50대 이상 한국 남자들은 타인을 공격해서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또 자기 자신도 많이 공격하죠.”

인터뷰를 마치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책이 뭔지 묻자 그는 소설 <난쏘공>과 마르크스 <자본론>, 고 김윤식 서울대 교수의 책을 꼽았다. “국문학과 대학 시절이나 또 문학에서 문화사로 공부 영역을 확장하는 단계에서 저한테 영향을 많이 미친 책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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