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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사제로 맺어준 인연의 끈 ‘진정성’이 한국음악의 힘이죠”

등록 2021-05-03 23:57수정 2021-05-04 02:42

[짬]풍류 아티스트’ 임동창-피아니스트 에드윈 킴

예명 ‘바하랑’으로 첫 솔로음반을 낸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이 지난 4월27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는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는 부모에게 첫 음반 발매와 매니지먼트사 전속계약 소식을 전하고자 5월초 출국했다. 김경애 기자
예명 ‘바하랑’으로 첫 솔로음반을 낸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이 지난 4월27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는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는 부모에게 첫 음반 발매와 매니지먼트사 전속계약 소식을 전하고자 5월초 출국했다. 김경애 기자

“한마디로 ‘진정성’이죠. 맨 처음 초등 5학년 때 나를 찾아온 순간부터, 5년 뒤 미국 이민을 앞두고 왔을 때, 그 뒤 10여년 만에 박사 논문을 준비하러 다시 찾아왔을 때, 그리고 이번에 내가 만든 곡으로 첫 솔로 음반을 내기까지, ‘우리’를 사제로 맺어준 인연의 끈이 바로 그것 같아요.”

‘풍류 아티스트’ 임동창씨가 얘기하는 ‘우리’의 상대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33·본명 김성필)이다. 그는 ‘바하랑’이란 예명으로 지난 3월 첫 피아노 솔로 앨범 <아리랑 변주곡>을 발매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10여년간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그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서양 유명 작곡가의 곡이 아닌 창작음악 ‘아리랑 변주곡’을 선택한 것 자체가 클래식 음악 생태계에서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바하랑’ 예명도 ‘바름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랑(싱그러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스승 임씨가 지어준 것이다.

20여년을 두고 끈질기게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을 지난달 27일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한 그에게 들어봤다.

김씨 초등5학년 때 처음 ‘사제의 연’
2003년 미국 유학…12년 만에 재회
스승 ‘허튼가락’으로 박사학위 논문

3월 예명 ‘바하랑’ 첫 솔로앨범 발표
임동창 창작곡 ‘아리랑 변주곡’ 초연
세계적 매니지먼트 ‘IMG’ 전속계약

지난해말 완주에서 ‘아리랑 변주곡’ 음반 녹음을 앞둔 에드윈 킴(오른쪽)에게 스승 임동창이 직접 연주 지도를 하고 있다. 우락 제공
지난해말 완주에서 ‘아리랑 변주곡’ 음반 녹음을 앞둔 에드윈 킴(오른쪽)에게 스승 임동창이 직접 연주 지도를 하고 있다. 우락 제공

“개판이여~!” 1999년 경기도 안성에 있던 임씨를 처음 찾아간 그가 쇼팽의 왈츠를 연주했을 때 첫 반응이었다. 임씨는 제자를 가르칠 여력이 없다며 냉정히 뿌리쳤다. 그런 그의 마음을 돌린 건 김씨 어머니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선생님, 아이가요, 피아노를 작게 만들 수 있으면 끌어안고 자고 싶대요.” 아이는 5살 때 친척집에서 피아노를 처음 보더니 티브이에서는 흘러나오는 소리를 따라서 건반을 눌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피아노를 사주니 방문을 잠근 채 혼자 온종일 연습했단다. 동네 학원 원장이 ‘감당을 못하겠다’며 임씨를 수소문해줘 찾아온 길이었다.

임씨는 그날부터 두달 남짓 지도를 해주었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주법을 바꾼 김씨는 이듬해 6개 콩쿠르에서 상위 입상을 한 끝에 목표했던 예원학교에 당당히 입학했다.

“그새 때가 너무 묻어부렀어!” 그가 스승을 두번째 찾아온 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앞둔 때였다. 임씨는 ‘칩거’에 방해가 된다며 세번이나 거절을 했다. 이번에는 김씨 아버지의 고집이 그를 무너뜨렸다. “하나뿐인 아이의 재능을 묵힐 수가 없어 이민을 결정했어요. 뉴욕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지 ‘감수’ 부탁드립니다.” 아버지는 아들만 대문 앞에 내려둔 채 차를 돌려 가버렸다.

김씨는 그날부터 2003년 봄 출국할 때까지 3개월간 합숙하며 ‘때 씻어내기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서양 악기인 피아노를 제대로 다루려면 서양에 가서 배워야겠지만 너는 어디까지나 ‘한국놈’이니 우리 음악의 뿌리와 정신부터 알아야 한다며 장구도 배우게 했고, 전국의 산천 유람도 같이했어요.” 마지막날 국악 명인들을 초대해 줄리아드 입시곡을 시연하게 해준 스승은 “너만의 음악을 찾아라” 당부하며 자신이 작곡할 때 쓰던 펜도 물려줬다.

하지만 막상 줄리아드 예비학교 시절 김씨는 사춘기의 혼란과 언어 장벽 등으로 방황을 겪어야 했다. “한국에서 경쟁했던 또래 친구들이 국제 콩쿠르에 줄줄이 입상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좌절했어요. 그러다 유학 초기 뉴저지 공립고교 시절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특활 때 소질을 인정받았던, 뮤지컬 가수를 꿈꾸기도 했죠.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하면 부모님도 허락해주실 것 같아 열심히 하긴 했는데….”

그는 존스홉킨스대학 피보디 컨서버토리의 한국계 문용희 교수의 권유로 다시 피아노로 돌아와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2010년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4위, 2011년 제퍼슨 심포니오케스트라 국제아티스트 콩쿠르 1위를 하며 자신감도 회복했다.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져 뉴욕을 오가며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어, 내가 잘 아는 녀석인데!” 그가 세번째로 스승을 찾아온 것은 뜻밖의 인연 덕분이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앞에 있는 야마하 피아노 공식대리점(그랜드 1번지) 대표님과 스승님이 친구 사이였대요. 어느 날 스승님이 그곳에 들렀다가 제 연주회 포스터를 보신 거예요.”

2014년 피보디 컨서버토리 박사과정에 진학한 그는 전북 완주에 정착한 스승의 풍류학교를 찾아갔다. 12년 만의 상봉이었다. “그동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했던 내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고 했어요. 내 음악을 서양에 알리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 정악을 재창작한 ‘허튼 가락’(자유로운 음악의 의미)의 악보를 건네줬죠.”

제자는 ‘허튼 가락’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써서 2020년 학위를 받았다. “모든 시험을 최고 성적으로 통과했고, 심사 때도 교수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됐어요.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구나!’ 하고요.”

이때 깨친 ‘국악과 음양의 원리’는 그가 이번에 <아리랑 변주곡> 전 7곡(50분)을 음반으로 낼 수 있는 기반이 된 셈이다.

“어릴 적 들었던 내 말을 내내 끌어안고 자신만의 음악을 키워온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임씨가 2008~2009년 남원 시절 작곡을 시작한 뒤 미완으로 묵혀뒀던 대곡인 ‘아리랑 변주곡’을 제자에게 선물한 이유였다.

지난달 중순 경남 남해에서 열린 문학기행에 동행해 ‘아리랑 변주곡’의 마지막 7번곡을 즉석 연주한 제자 에드윈 킴(왼쪽)을 스승 임동창(오른쪽)이 소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지난달 중순 경남 남해에서 열린 문학기행에 동행해 ‘아리랑 변주곡’의 마지막 7번곡을 즉석 연주한 제자 에드윈 킴(왼쪽)을 스승 임동창(오른쪽)이 소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김씨는 최근 세계적인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아이엠지 아티스트(IMG Artist Seoul)와 정식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17년 오스트레일리아 국제 쇼팽 피아노콩쿠르 1위 수상을 계기로 맺어진 행운의 인맥 덕분이기도 하단다.

“호주 콩쿠르 때 숙소를 제공해준 현지인 노 부부가 2018년 발리 여행 때 우연히 호텔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 여성에게 ‘한국 출신 피아니스트를 안다’며 제 자랑을 했대요. 그런데 서울에서 온 그 여성의 동행이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 낙소스(NAXOS) 관계자여서 제 연주 실황을 함께 봤대요. 그해 가을 서울에서 한 제 독주회도 와줘서 서로 친구가 됐죠. 그가 아이엠지 쪽에 저를 추천해줬어요.”

‘아이엠지’는 피아니스트 이브게니 키신·머레이 페라히아,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힐러리 한·사라 장(장영주) 등 400여명의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관리하고 있는 대표적인 다국적 공연예술 매니지먼트 법인이다. 김씨는 오는 12월10일 예술의전당 아이비케이(IBK) 챔버홀에서 독주회를 열고, 연내에 대중적인 클래식 곡들로 엮은 음반도 하나 더 낼 계획이다.

본격적인 국제 무대 활약을 앞둔 제자에게 임씨는 축원과 격려를 잊지 않았다. “케이(K)-클래식도 팬데믹 이후 뉴노멀이 될 것이라고들 하죠. ‘한국적 정서’의 정수를 알고 있는 ‘바하랑’이 지구를 돌고 돌아 다시 ‘우리 것’을 찾았으니, 그 선두에 서기를 기대합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우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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