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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정육점 점원 된 비틀즈, 그들은 왜 고깃덩어리를 둘렀나

등록 2021-05-03 04:59수정 2021-05-03 08:12

[‘로버트 휘태커의 비틀즈’ 사진전]
1964~66년 비틀즈 전속 사진작가
일상의 낯선 모습까지 포착한 120여점
성수동 갤러리아포레에서 8월 말까지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노형석 기자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노형석 기자

세계 대중음악사를 뒤흔든 혁명가들은 검붉고 허연 고깃덩어리를 안거나 들고 있었다. 50여년 전 한 청년작가의 사진들 속에서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는 흰 가운을 걸친 정육점 점원이 됐다. 그렇게 고깃덩어리를 두름으로써 그들은 스스로를 신격화된 존재가 아니라 피와 살로 이뤄진 동물이자 인간임을 증명했다.

‘정육점 컷’이란 별명이 붙은 이 사진 연작은 세계적인 밴드 비틀즈(비틀스)의 1964~66년 월드투어와 앨범 활동 현장을 따라다니며 촬영했던 당시 전속사진가 로버트 휘태커(1939~2011)의 작품이다. 비틀즈 하면 흔히들 바가지 스타일 머리 모양에 슈트를 차려입은 미소년들, 혹은 장발과 수염을 기른 히피 스타일의 반항아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만이 전부는 아니며, 생생한 인간의 존재 증명이 먼저라는 것을, 휘태커는 그들을 찍은 사진에서 이야기하려 했다. 붉은 고기를 든 멤버들의 사진은 결국 1966년 앨범 <예스터데이 앤드 투데이> 표지로 채택되진 못했지만, 휘태커가 비틀즈를 오브제로 찍은 또 다른 인간 존재 증명 실험으로 사진사에 남게 됐다.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한겨레>와 전시기획사 엑스시아이(XCI)가 공동 주최하는 사진전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이 지난 30일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지하 2층(G층) 3관에서 막을 올렸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로버트 휘태커가 포착한 사진을 통해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밴드 비틀즈의 과거 모습을 새롭게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1965년 영국 런던 근교 클리브덴 하우스 호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네 사람의 모습을 담은 익살스러운 사진으로 문을 여는 전시는 대중음악계 거장과 사진계 거장의 만남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비틀즈의 잘 알려진 앨범 표지를 포함한 120여점의 사진을 통해 열정적인 공연 모습뿐 아니라 스튜디오에서도 치열하고 진지하게 연습한 장면, 일상 속 재치 넘치는 일거수일투족까지 살펴볼 수 있다. 애초 지난해 비틀즈 명반 <렛 잇 비>(1970) 발매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연말에 개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방역지침 격상으로 넉달 이상 연기된 끝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휘태커는 국내에는 비교적 낯설고 덜 알려졌지만,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 에릭 클랩턴 등 유명 뮤지션, 살바도르 달리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작업하며 역사적인 작품들을 남긴 사진작가다. 특히 1964~66년 비틀즈가 활발하게 활동한 약 2년간 전속 사진작가로 동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농촌에 낙향한 그의 헛간 속 필름 프린트가 1980년대 말 발굴돼 재조명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유명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담은 그의 사진은 최고의 초상화 컬렉션을 갖고 있는 런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 전시되기도 했다.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일본·독일 등 월드투어, 영화 촬영 등 공식 석상의 모습 말고도 재치 있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들을 담고 있다. 전시는 ‘렌즈를 통해’ ‘꿈을 노래하다’ ‘몽상가의 뒷모습’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겟 백’이란 다섯개의 섹션으로 이뤄진다.

‘정육점 컷’에서 보이듯 휘태커 사진의 특징은 스타의 클로즈업에 머물지 않고 초현실적이고 전위적인 연출 구도를 종종 사용한다는 점에 있다. 유명한 <헬프!>(1965), <러버 솔>(1965), <리볼버>(1966) 앨범 표지 등으로 친숙한 사진들도 있지만, 가상의 동화적 배경이나 건축물의 조형성이 부각된 공간 얼개 속에 네 멤버의 몸짓과 동선을 펼친 작품들도 꽤 많다. 1966년 일본 도쿄 부도칸 공연 당시 사진들이 그렇다. 현대건축 특유의 격자와 마름모꼴 평면 천장 아래서 공연을 준비하는 멤버들의 실루엣과, 호텔 홀의 넓은 공간에서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멤버들이 널브러져 잡담하는 모습 등이 이들의 좋았던 한 시절을 대변한다.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사진들에 담긴 네 멤버의 숨결과 땀방울, 숱한 감정들이 5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생생하게 전해진다.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이 가운데 ‘꿈을 노래하다’ 섹션은 음악을 향한 애정과 우정으로 경이로운 성과를 이룬 비틀즈의 전성기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에 진출하며 세계를 석권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고 꿈을 노래하던 풋풋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소년 같은 앳된 얼굴로 선글라스를 낀 채 아래를 보거나 영국 국기를 들고 귀까지 덮은 수건 모자를 쓰고 정면을 바라보는 존 레넌, 베이스 기타를 들고 연습에 몰두하는 폴 매카트니, 비틀즈 특집 잡지를 보는 링고 스타 등이 묵은 필름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1965년 개장 1년 만에 역사적인 대형 스타디움 무대를 펼치며 전설을 만든 미국 뉴욕 셰이 스타디움 투어의 기념비적 장면들도 빼놓을 수 없다. 스튜디오에서 치열하게 토론하며 초창기 아이돌 밴드에서 벗어나 사회성과 실험성 가득한 <헬프!> <러버 솔> <리볼버> 앨범을 준비하는 내밀한 연습 장면도 원없이 감상할 수 있다.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작품. 전시기획사 XCI 제공

전시장의 구조가 특이하다. 편안한 느낌을 주는 힐링 테마의 숲속 정원을 얼개로 삼아 넝쿨이 늘어진 벽에 작품들을 내걸었다. 전시실 중간에 존 레넌이 첫번째 부인 신시아, 어린 아들 줄리언과 함께 찍은 사진, 존 레넌이 눈 한쪽을 꽃으로 가린 초현실적인 사진들이 다가온다. 흔히 두번째 부인 오노 요코와의 사진으로 알려진 존 레넌의 고정적 이미지를 깨뜨리는 사진이다. 머리 위 모자에 꽃송이를 한가득 올리고 앉은 채 망원경을 든 존 레넌의 모습과,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와 만나는 장면도 있다.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장 내부. 노형석 기자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장 내부. 노형석 기자

작가는 독특한 각도의 근접 촬영과 초현실주의적인 시선으로 네 멤버를 바라보았다. 이런 구도와 시점이 담긴 비틀즈 사진들을 통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1960년대의 감성과 시대정신을 추체험하게 된다. 주최 쪽은 “사진과 더불어 비틀즈 명곡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 단순 사진전을 넘어 오감을 만족시키는 풍성한 체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8월29일까지. 월요일은 휴관. 문의 070-7717-3106.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포스터. 전시기획사 XCI 제공
‘더 비틀즈 바이 로버트 휘태커: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 전시 포스터. 전시기획사 XC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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