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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유행의 최첨단’ 가로수길에 펼쳐진 100년 전 풍경

등록 2021-04-01 04:59수정 2021-04-01 07:52

[가로수길서 열리는 ‘洄(회) 지키고 싶은 것들’전]
1921년 최초 근대미술가 단체 ‘서화협회’ 창립전
당시 발기인·제자들 그린 서화 등 38점 전시
구한말 대가 소림 조석진의 비단 그림 <팔준도>. 소나무 아래 혈기 왕성한 8마리의 말이 갖가지 자태로 등장하는 1910년대 추정 작품이다. 정교한 윤곽선으로 준마의 생동하는 움직임을 포착하면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절벽·소나무와 절묘한 조화 속에 화면을 구성했다. 소림은 물고기 그림으로 유명했지만, 말 등 다른 동물화에도 능숙한 기량을 발휘했다.
구한말 대가 소림 조석진의 비단 그림 <팔준도>. 소나무 아래 혈기 왕성한 8마리의 말이 갖가지 자태로 등장하는 1910년대 추정 작품이다. 정교한 윤곽선으로 준마의 생동하는 움직임을 포착하면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절벽·소나무와 절묘한 조화 속에 화면을 구성했다. 소림은 물고기 그림으로 유명했지만, 말 등 다른 동물화에도 능숙한 기량을 발휘했다.

‘유행에 민감한 강남 젊은이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화랑가 사람들의 이런 궁금증을 자아내는 전시가 나타났다. 무대는 서울에서도 첨단 유행을 선도하는 지역 중 하나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미국 스포츠용품 매장에서 신제품을 사려고 줄을 선 젊은이들과 디자인센터와 팬시한 가게, 각종 맛집 등이 즐비한 가로수길 한켠 예화랑 건물에서 29일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그림과 글씨가 내걸렸다. ‘洄(회) 지키고 싶은 것들’이란 제목의 전시는 100년 전의 기념비적인 전시를 기억하기 위해 기획됐다. 바로 1918년 결성한 국내 최초 근대 미술가 단체인 ‘서화협회’가 1921년 4월1일 서울 북촌 중앙중학교 강당에 마련한 사상 최초의 대중 전시회인 ‘1회 서화협회전’이다.

심전 안중식이 1910년대 중엽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청록 산수화 &lt;염계애련&gt;(부분). 비단에 채색한 작품이다. 바위와 산야에 특유의 녹청빛 점을 찍어 봄날의 화사하고 아련한 산수 경치를 표현했다.
심전 안중식이 1910년대 중엽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청록 산수화 <염계애련>(부분). 비단에 채색한 작품이다. 바위와 산야에 특유의 녹청빛 점을 찍어 봄날의 화사하고 아련한 산수 경치를 표현했다.

전시장에는 1918년 창립한 서화협회 발기인인 심전 안중식, 소림 조석진, 위창 오세창, 청운 강진희, 해강 김규진 등의 작품과 협회 스승들한테서 필력을 익힌 이당 김은호, 소정 변관식 등이 188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그린 서화 38점이 내걸렸다. 1921년 첫 서화협회전 당시 출품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당대 내걸렸던 작품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협회를 주도했던 당대 근대미술 선각자들이 관념성을 벗고 시대정신에 맞게 실경과 자유로운 표현 기법을 고민하면서 그린 산수, 정물, 도석인물화(신선이나 불교 고승 등의 인물을 그린 그림) 등을 사실상 처음 대중 앞에 선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들은 1회 전시 당시 겸재 정선, 추가 김정희 등 조선 후기 작가의 작품에 자신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했고, 3회부터는 자신들이 가르친 김은호, 변관식 등 후학의 작품들을 함께 내보이면서 1936년 15회까지 전시를 지속했다. 조선총독부가 1922년부터 해방 때까지 주도한 조선미술전람회(선전)와 대비되는 당대 조선 미술의 주축이었다.

심전 안중식의 대표작 중 하나인 &lt;성재수간&gt;.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부는 어느 날 초당의 미닫이문 창에 비친 선비의 모습과 그의 명을 받고 바람 소리가 나는 데를 알아내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자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1910년대 중엽 작품으로 추정된다.
심전 안중식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성재수간>.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부는 어느 날 초당의 미닫이문 창에 비친 선비의 모습과 그의 명을 받고 바람 소리가 나는 데를 알아내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자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1910년대 중엽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품된 작품들은 김방은 예화랑 대표의 증조부이자 서화협회 회원으로 선대 화가들로부터 지도를 받은 규당 김재관의 컬렉션이 주축이다. 여기에 개인 소장품을 일부 추가했다. 들머리에서 관객을 맞는 최고의 주목작은 소림 조석진의 비단 그림 <팔준도>. 소나무 아래 혈기 왕성한 8마리의 말이 갖가지 자태로 등장하는 1910년대 추정 작품이다. 정교한 윤곽선으로 준마의 생동하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배경의 절벽과 소나무 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소림은 물고기 그림으로 유명했지만, 말 등 다른 동물화에도 능숙한 기량을 발휘했다. 소림과 쌍벽을 이룬 심전 안중식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성재수간>도 반갑다.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부는 날, 초당 미닫이문 창에 비친 선비의 모습과 바람 소리가 나는 곳을 알아내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자의 뒷모습,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 등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예화랑 1층 전시장. 소림 조석진의 &lt;팔준도&gt;와 청록산수 부채 그림이 내걸려 있고, 그 뒤로 구한말 봄날 장터 사진을 복사꽃 이미지와 합성한 이상현 작가의 디지털 프린트 투사 작품 &lt;조선의 봄&gt;이 보인다.
예화랑 1층 전시장. 소림 조석진의 <팔준도>와 청록산수 부채 그림이 내걸려 있고, 그 뒤로 구한말 봄날 장터 사진을 복사꽃 이미지와 합성한 이상현 작가의 디지털 프린트 투사 작품 <조선의 봄>이 보인다.

심전의 청록 산수화 <염계애련>은 바위와 산야에 특유의 녹청빛 점을 찍어 봄날의 화사하고 아련한 산수 경치를 표현해 흥취를 더해준다. 조석진, 안중식, 김응원, 김규진, 이도영 다섯 작가가 국화꽃, 대나무 화로 등 각자의 개성을 살려 합작한 10곡 병풍은 당대 협업 그림의 전통을 보여준다. 더불어 현대 작가 이상현씨가 구한말 이 땅의 사람과 풍경을 담은 사진에 꽃 등의 이미지를 합성해 만든 디지털 프린트 작품도 색다른 볼거리다. 구한말, 근대, 현대를 시각적으로 오가는 듯한 역사적 착시감을 안긴다. 24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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